그 동안 이 시리즈에서 다룬 상당수의 모더니스트들은 유럽에서 활동하였다. 미국 등 다른 곳 출신이라도 결국 유럽에서 중심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이야기할 소재는 미국에서 활동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프롤로그라고 봐도 좋다.
영미 모더니즘, 특히 영미 모더니즘 시에서 나타난 운동으로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이미지즘>이다.
이 '이미지즘'이 정확히 무엇인가? 위키 켜라~ 오늘은 간단하게만 설명하는 날이야~
물론 헤밍웨이 같은 간결한 문체에도 영향을 끼친 만큼, <이미지즘>이 단순히 시에만 국한된 모더니즘 운동은 아니었으나,
아무리 길게 봐줘야, 1910년대에 시작되어, 1920년대엔 이미 사실상 파토가 나버린 짧은 운동이었다. 그럼에도 영문학에선 중요한 운동 중 하나이고
당장 국문학 시간에도 정지용 이미지즘! 김광균 이미지즘! 하며 외웠을 틀딱들이 많은 만큼, 어쨌든 중요하다.
모든 예술의 사조들이 그러하듯, 당연히 이미지즘도 훨씬 과거에서부터 뿌리를 찾을 수 있으나, 흔히 이미지즘의 시초로 불리는 사람이 있긴 하다.
T.E. 흄.
오늘날 이미지즘의 시작이라 불리는 시인이자 미학자인데, 사실 말 그대로 '시초'에 불과하다.
물론 흄이 이미지즘의 간결함이나 이미지의 탐닉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은 맞으나, 1차 대전에 참전한 흄은 전장에서 어린 나이에 죽었고, 시도 몇 편 못 남겼다.
하지만 그는 어쨌뜬 시초로 불린다. 왜냐?
영미 모더니즘에서 이쯤 되면 안 나오면 섭섭하지만 막상 나오면 추하기 그지 없는 '그새끼'
친목의 왕 에즈라 파운드가 T.E. 흄과 친분이 있었고, 그와 함께 일하기도 하면서, 흄이 죽고 난 후엔 <이미지즘>을 왕초처럼 이끌면서, 흄을 이미지즘의 아버지로 만들었으니까.
물론 이게 단순히 파운드의 왜곡인 것은 아니다.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T.E. 흄이나 에즈라 파운드나 성향을 비슷했고, 좋아하는 것도 비슷했고, 영향받은 것도 비슷했다.
우선 <이미지즘>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프랑스 상징주의와 이른바 '자유시'라 불리는 새로운 시였다.
특히 '자유시'가 중요했다.
알다시피 한국시들은 대개 내재율에 치중하지만, 언어 자체가 다른 서구 시들은 이른바 정형화된 '운율'과 '라임'으로 시를 써왔다.
그러나 베를렌 등의 시인들이 그런 거 조까라며 내재율을 강조하기 시작하며 이른바 '자유시'라 불리는 것을 시작하였고, 그리하여 이미지즘 또한 이러한 프랑스 상징주의와 자유시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다.
일단 파운드는 물론, T.S. 엘리엇도 빨았으니까 어쩔 수 없다.
왜 하필 '이미지'가 강조되었는가? 란 의문엔 사실 역사적인 발견도 한 몫을 했다.
20세기 초, 이른바 '옥시린쿠스 파피루스'라는 대규모 고고학적 발견들이 있었다.
수많은 파피루스 파편과 두루마기들이 발견되어 연구자들을 갈아넣기 시작한 사건인데, 문학적으론 고대 그리스의 킹왕짱제네럴 서정시인 사포 등의 서정시인들의 그 동안 전해지지 않았던 새로운 시들이 발견되었다.
물론 전부 '파편'이라 온전한 형태는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파편'들만으로도 후세 사람들이 느끼기엔 너무나도 완벽하였고, 심할 경우 단어들의 나열에 불과했지만, 거기에서도 '이미지'가 느껴졌기에, 여기에 영향을 받은 시인들이 이미지즘을 외치며 이미지즘의 발달에 영향을 끼친다.
친목의 왕 에즈라 파운드는 파리에서 자신의 대학 시절 애인이자 미국의 대표 시인 중 하나인 힐다 두리틀 (필명; H.D.), 그리고 리처드 앨딩턴 등을 부르며 이미지즘 팸을 형성할 것을 결의한다.
공교롭게도 파운드가 부른 두 사람 모두 희랍 문학에 정통하였고, 새로 발견된 파피루스 더미에도 환장을 하였다.
이 외에도 파운드는 자신의 인맥을 총 동원하여, 자신이 보기에 '이미지즘'이 걸맞는 이들을 선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14년, 에즈라 파운드가 편집하고, 에즈라 파운드, H.D., 리처드 앨딩턴, D.H. 로렌스, 포드 매덕스 포드, 에이미 로웰, 제임스 조이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등 파운드 친목-이미지즘 시인 라인이 총 동원된 <이미지스트> 앤솔로지가 발행된다.
오늘날 <이미지즘>의 시작을 알리는 시 모음집이었다.
하지만 이제 분란은 시작된다.
"파운드야 그렇다고 편집자인 네 마음대로 하기 있기 없기?"
작가들이 모이면 언제나 분란이 일어난다.
파운드의 이미지즘 팸에서도 그 직후 분란은 일어났다. 몇몇 멤버들과 의견 차이로 분쟁이 일어나던 도중,
에즈라 파운드의 선배 시인 중 하나였던 에이미 로웰이 에즈라 파운드에게 반기를 든다.
에이미 로웰 또한 파운드가 이미지즘 시인으로 규명했을 만큼, 이미 이전부터 그렇게 보일 만한 작품을 써왔고, 또한 자유시에도 관심을 기울이던 선배였다.
거기에 이미지즘에 대한 의견 차이도 있었고, 무엇보다 파운드는 미래의 파시스트 답게, 편집자란 명목으로 독단적으로 <이미지스트> 앤솔로지를 편찬했던 것이다.
파운드의 시선으로 마음대로 작가들의 작품 중 꼴리는 걸 수록하는 등의 강압적인 면모에 참지 못한 에이미 로웰이 반기를 든다.
에이미 로웰은 다른 이미지스트들, 주로 미국의 로웰 팸들과 함께 새로운 이미지즘 앤솔로지를 출판하게 된다.
"저건 이미지즘이 아니라 에이미즘이다. 암튼 이미지즘 아님."
물론 이러한 불화 속에서 에즈라 파운드와 그 팸은 에이미 로웰의 이미지즘팸을 '니세모노'로 규정하며, '에이미지즘'이라 비난하였다.
다만, 골초였던 에이미 로웰이 여러 건강상의 이유로 그 직후 급사하였기에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는 듯싶었따.
덧붙여, 에즈라 파운드 본인이 <이미지즘>에서 윈덤 루이스와 함께하는 <보티시즘>-소용돌이파-로 갈아탔기에 이미지즘은 짧은 순간 동안 불꽃을 태웠다.
하지만 이는 어쩌면, 유럽과 연관되지 않은, 미국 독자적인 움직임을 나타내려는 시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에이미 로웰과 협력했던 미국 시인들은 물론, 심지어 파운드팸이었던 일부 작가들마저,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으니까.
"께속"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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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스트의 선조들
와! 샌즈! 파피루스!
와!
진짜 너무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