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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는 프리모 레비가 1945년 12월부터 다다음해 1월까지 아우슈비츠에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해놓은 책이다. 맨처음엔 ‘이것이 인간인가’ 라는 질문이 독일군에게 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수용소의 포로들에게도 접목시킬 수 있었다. 마치 바벨탑의 건설현장처럼 언어가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레비는 기계로 전락해버린 수용소 사람들을 봤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서 악을 발견한다. “우리 시대의 모든 악을 하나의 이미지로 형상화할 수 있다면, 나는 내게 친근한 이 이미지를 고를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린, 뼈만 앙상한 한 남자의 이미지다. 그의 얼굴과 눈에서는 생각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136p). 히틀러나 아이히만에게서가 아닌, 고통받고 지치다 못해 의지 자체가 사라져버린 자에게서 악을 건져올렸다는 게 내게는 독특하게 다가왔다.
곰곰 생각해보니 이 악은 아이히만의 것과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 듯 싶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받은 임무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실행했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 역시 수용소의 포로들과 다를 게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생각’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그를 비롯한 수용소의 군인 및 반장 들이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었다. 물론 아이히만과 비슷하다고 해서 무기력, 무의지 상태의 포로들이 비난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레비 역시 인간을 가축 혹은 기계로 바꿔버리는 시스템 자체를 말하기 위해 악을 말한 것이지, 절대 포로들이 답답했다거나 하는 맥락이 아니었다. 그는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일반적인 사람들, 아무런 의문 없이 믿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술자들”이 “훨씬 더 위험하다”고 분명하게 가해자를 분리시켰다.
이처럼 생각치 못했던 곳에서 악의 얼굴을 마주했다는 대목 말고도 인상깊게 남은 게 있다. 레비가 미래 대신 사용한 ‘고래(古來)’라는 단어였다. 보자마자 단번에 그 당시의 레비가 얼마나 절망적이었을지 느껴졌을 정도로 적절한 단어 교체라고 생각한다. 고통만이, 너무나도 잘 아는 그 고통만이 그를 찾아올 거라는 확신. 이것은 곧 ‘기억은 고통이다’는 그의 생각과 맞물린다. 그에게 있어 기억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잔인하고 오래된 고통”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재하는 미래의 자리를 대신 채우기 때문이다. 밤마다 꿈을 통해 변용된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기억들은 이렇게 또다른 의미의 아직 오지 않은 것, 즉 미래가 된다.
책은 덮어졌지만 레비가 겪었던 일은 형태와 이름을 바꿔가며 계속되고 있다. 나는 그것들 중 하나라도 멈출 능력이 당연히 안 된다. 게다가 대립하고 있는, 혹은 일방적일 수도 있는 그 관계들에서 각자의 의견이 내게는 다 그럴 듯하게 다가올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두 번쯤은 의심하고 ‘생각’해 봐야겠다고 느꼈다. 이것이 인간이라면.


가독성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