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읽다가 잠깐 들은 생각인데 주절주절 적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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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밀란 쿤데라를 내리 열 권 정도를 읽었음.
기본적으로 문학을 읽을 때 참신함을 본다던지 감정적으로 애무해주는 그런거를 좋아하긴하지만 쿤데라를 그런 기대로 집어들진 않았음.
에세이에서 쿤데라는 문학사조에 이론적으로 빠삭하다는걸 누구나 느낄거야. 그런데 나는 거의 멈추지 않는 물레방아 수준의 전개를 보면서 자기 취향을 끝없게도 평생 반복했구나, 하는 우스움이 아니 들 수 없더라고.
내 개인적으로 에세이는 정말 유익하게 읽었는데도 이렇게 가시를 들이미는 이유는 소설가로서의 쿤데라는 단지 자기가 평생 배운 이론이 있다면 그걸 예시해줄 단문마냥 소설을 써놨기 때문임.
쿤데라는 자기 시대에서 수십년 이전에 풍미했던 작품들을 수십 년이 지나서 따라하는 거 같음.
한결같이 굳힌 취향의 추구에서 더도 덜도 벗어나지 않게 쓴 소설들이었다. 그 너머로 벗어나는 지점이 잘 안보임. 있기야 할텐데 내가 못보는거겠지. 아니면 정말 그따위 변화는 줄 생각이 아주 미미했거나 ㅇㅇ
호평하는 해외독자 리뷰에서 문장이 아름답다니 작가의 사색은 지금 읽어도 참신하다느니 했던 거 같은데 내겐 그다지..
흔히 쓰는 모티프 설정이나 말장난 같은 암시는 작위적으로밖에 안보였음. 쿤데라만의 소설 구성이 가지는 미학이 있다면 언젠가 꼭 좀 알게됐으면 좋겠음. 솔직히 거품낀게 맞는거같애. 그래도 쩌는 작품은 쩔음 ㅇㅇ
가장 최근에 쭉 읽었던 게 쿤데라라서 이렇게 생각은 들었는데, 반대로 쿤데라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니 쿤데라라면 요즘의 창작자들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해줄수있을지 궁금해졌음.
창작을 키워드로 생각하다보니 약간 갤 관심사랑 핀트 안맞나싶은데 우리는 소비자잖아. 생산자의 창작물, 창작환경에 쌩까지말고 한 번쯤 생각해볼만 한거같음.
포스터가 ‘인류 역사에서 보면 400년은 아무 것도 아니고, 그 동안 계측할 만하게 달라진 것이라곤 없다’라고 말한 점에서 일면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떻든 간에 우리가 ‘본질’이라고 부르는 무언가겠지. 본질이 있든 없든 단순히 언어로 풀어서 '~가 ~이게 하는 것'처럼 언어로 풀어서 이해해도 됨.
아예 포괄적으로 삶의 본질이든, 작가 본인이 되내이는 본질이든, 작품 내에 나타내고자 하는 본질이든 본질은 사실 별게 없음. 애초에 작가들 자신이 생각하는 본질이 존재하는지도 증명할 수 없고, 언어로 풀어서 '~~라고 생각됨' 으로 정의할 수밖에 없어. 그래서 유일하게 변화하고 있는 건 방식이지. 설명하고 풀이하는 방식이 달라질 뿐이지. 작가들 열 명이 모여서 본질을 다룰때 크게 3개의 파로 나뉜다면, 본질은 3개로 나뉠만큼 실체가 없는거라고 생각함. 미안, 철알못인데 잠깐 철학으로 빠졋네.
나는 여러 예술 사조를 두루 배운 작가들이 어떤 예술이론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대중취향에 등돌리고 생활고로 자승자박하는 일이 모르긴 몰라도 비일비재할거라고 생각함.
작가의 사색이 시대 경험에서 나온다면 그 경험을 자기가 유별나게 좋아하는 예술사조랑 조화시켜서 참신한걸 보여줬으면 좋겠어.
하는 생각들이 똑같으니까 사색은 맛을 잃고 경험위주로 나오는 게 아닐까함.
뛰어나게 전복적인 시도는 원치도 않고, 최소한 ‘나 여기서 새롭게 써보고 있소~’하는 티라도 낼 수 있는 작가가 보이면 팬심이 벌써부터 생기는 이유야
내가 느끼기에 완고한 문학 독자들은 왕왕 이런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문학적인) 문학은 문화 주류 반열에 오르지 않을꺼임’ 그 완고한 취향은 문학의 본질 운운하며 문학을 옹호하지만 내가 볼 때 그 취향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대부분 오래전꺼고 식상해.
새로움이랄게 비춰질 가능성이 적지. 그만큼 문학은 도태될거란 게 지금의 내 생각임.
낭만주의 끝물에서 문학과 회화보다 음악이 치고나갔던 것처럼 그렇게 문학도 바뀔 수 있어야대.
유행처럼 어떤 사조를 문학의 종착점마냥 생각하는 완고한 작가나 독자가 두터워지고, 이런 반복 또는 세뇌적 취향은 대다수의 창작에는 악적일만큼 방해요소이고, 대중들에게는 예술을 접할 때의 교란 요소로밖에 안남을거임.
태클 환영이야. 암튼 독붕이들 불금인데 즐-독해!
소설들이 대체로 비슷하게 흘러가긴 함. 다만 쿤데라는 그 비슷한 상황들 간에서 집중하는 테마가 달라지고 그 테마들이 소설의 큰 부분을 이루는거거든. 전에도 관련 글에서 얘기한건데 쿤데라 소설들은 전부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얘기하지만 어떤 상황에 대해 가벼움이 느껴지는지가 차가 나는거지.
작가 스스로도 말했다시피 자기 소설들의 제목을 서로 바꿔도 큰 차이 없을거고 전부 한 작품으로 봐도 상관없을 거임. 어찌보면 자기 미학에 충실한 작가지. "소설은 삶의 아이러니한 실존을 드러내야한다"에 맞춰서 소설의 부분들을 아예 붕괴시켜버리기도 하니까. 이 주장에 공감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작가에 빠져드는데 가장 큰 요소라고 생각함.
여담으로 아직 안 읽은 쿤데라 소설 뭐 있음??
자기 미학에 충실하지만 그 미학이 활동 시기 수십년 전꺼에서 고대로 빌려온게 아닌가하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엇어 - dc App
자크까지 나온거맞나? 그러면 우스운 사랑,배반의 어쩌고, 자크랑 만남 이 네개 안읽어봄 - dc App
흠 소설들 거의 다 읽었다면 에세이말고는 그 이상 읽어도 큰 감흥 없겠네. 난 딱히 빌려온 걸 그대로 쓰는건 아니라고 생각함. 오히려 수십년 전 문학계는 쿤데라 스스로가 호불호 갈린다고 얘기한 시대라서 작가별로 평가가 극과극임. 미학에 충실한 나머지 소설이 좀 투박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거 같다. 18세기 소설들 좋아하는 양반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