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와 가족

-하노이-서울 시편11


아흔이 가까운 소설가 쒼쿼렝, 그는 유명작가로 활

동하다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펜 대신 총을 든 베트

남 문학 제1세대다. 꼭 삼십몇 년 전 돌아가신 외할아

버지를 다시 만난 듯해. 마포 건어물 장사를 세우느라

대꼬챙이 청천벽력이셨겠지만 손주들에게는 그지없이

자상하던. 그 외할아버지가 저승에서 한 삼십 년 더 부

하고 너그러워지신 듯한ㆍㆍㆍㆍㆍㆍ


일흔을 훌쩍 넘긴 여성 수필가 콴랑예. 그녀는 기대

주로 각광받다가 프랑스 제국주의에 맞서 펜 대신 총

을 든 베트남 문학 제2세대. 이십 년 전 그 나이로 돌

아가신 외할머니를 다시 만난 듯했다. 마지막 궁궐 나

인 출신으로 성질 급한 남편을 만나 인고 평생의 인자

한 주름살과 속이 비치는 살갗, 천년의 미소를 지닌 채

돌아가셨던 그때 그 모습으로. 마치 죽음은 정지일 뿐,

무색무취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듯이.


이 혼동은 혼란스럽지 않고, 풍성하고

육체가 분명하다

역사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다.


아, 도대체 어떻게 얼마만큼, 어느 정도로 싸웠길

래ㆍㆍㆍㆍㆍㆍ 일상보다 더 일상적으로 될 수 있었을까.


모처럼, 주눅이 편안하다.


일흔을 바라보는 시인 츠뤼종은 미국 제국주의에 맞

선 베트남 문학 제3세대다. 그는 정식 회의석상에서도

코가 술중독으로 새빨갛다. 주정도 곧잘 하고, 울화도

있어 보인다. 남한의 작가회의 술자리에 와 있는 듯하

군ㆍㆍㆍㆍㆍㆍ 이, 착각은, 왜?ㆍㆍㆍㆍㆍㆍ


마흔을 갓 넘긴 탕샹롱은 다재다능한 신세대. 제4세

대다.


이름들은 정확한가?

아직도 베트남어 발음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겠다.

환각은 아니다.

발음은 무거운 생이, 환호작약하듯 명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