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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잘 듣게. 오늘 자네 입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말이 뭔가?"
치과의사가 대답했다.
"반반씩."
"맞아. 그 비슷한 말도 모두 금지야. 매표소에 가면 뭘 해야 하지?"
"입장권을 사야지."
"그리고?"
"여자 것도 사줘야지."
"맞아. 상대방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치과 치료와 관련된 말도 모두 금물이라네. 다음으로 넘어가서, 여자가 입고 나온 옷을 칭찬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
"칭찬을 해놓으면 나중에 벗기기가 쉬우니까?"
"저런, 틀렸어! 여자들은 옷 한 벌을 사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쇼핑을 하고, 그 옷을 입고 거울 앞에 몇 시간 동안 서 있다가, 다른 옷을 살 걸 그랬다고 몇 시간 동안 후회하기 때문이지."
-p.300
치과의사는 기욤 라두세트에게 유감이 많았지만 오랫동안 참아왔다. 어린 시절 기욤 라두세트는 학교 선생의 그로스 팡에 구멍을 뚫고 두꺼비를 집어넣은 후 이브 레베크에게 덮어씌웠다.
치과의사는 대유행이라는 말에 혹해서 평생 쓰지 않을 인조 구레나룻 한 쌍을 사고는 이발소 문을 나서는 순간 정신을 차린 적도 있었다.
기욤 라두세트는 1987년에 치료받은 보철 값을 아직 치르지 않았다. 게다가 마을 인구조사 때 빌렸다가 돌려준 가발들이 많이 상했다며 투덜거리고 다녔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꼬마 오이 기르는 법에 대한 충고를 늘어놓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매쟁이는 그를 혐오스러운 생선 노점상 조수와 맺어주려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이제는 밉살스러운 식료품점 주인과 데이트를 주선한단 말인가?
이브 레베크는 똑같이 충격받은 표정을 짓고 있는 데니즈 비지에와 인사를 나눈 다음 그녀가 입고 있는 파란색과 자주색 줄무늬 옷을 칭찬했다. 사실은 그 옷을 보니 몸서리가 쳐졌지만.
"다른 옷보다 그게 훨씬 나아요."
그가 한 마디 덧붙이자 데니즈 비지에가 되물었다.
"다른 옷이라니요?"
'당신이 사려던 다른 옷 말이오."
데니즈 비지에는 어리둥절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른 옷을 사려고 한 적 없는데요."
이브 레베크는 속으로 기욤 라두세트에게 욕을 퍼부었다.
-p.302
작년에 어느 갤러의 책장 인증을 구경하던 중에 우연히 알게 되어 그길로 중고서점에 가서 샀던 책이다.
사실 사놓고 곧장 읽지는 않았다. 예전에 비해 책 읽는 속도가 부쩍 처진 것도 있고 책의 내용이 내가 미리 상상한 것보다 재미없으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 때문도 있다.
그러다 추석이 됐을 쯤 시간때울 요량으로 집어갔다가 쏠쏠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소설 형식임에도 마치 희곡을 보는듯한 유쾌한 느낌이었다.
작가는 본래 영국에서 신문 기자로서 생업이 있었던 사람으로, 어느 날 프랑스의 페리고르 지방으로 휴가를 갔다가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된 것이라 한다. 34명도 채 안되는 인구를 가지고 2000년대에 들어서기 직전에 놓인 작은 마을이 배경이다. 그마저도 미니 토네이도에 한 명이 날라가서 32명인 마을이다.
앞자리가 2로 바뀌는 세상에서 페리고르 촌구석도 조금씩 변화의 물결을 맞고 있었다. 그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이발사 기욤 라두세트가 제일 뼈저리게 맞는다. 그의 밥줄이자 특기였던 이발 기술이 유행이 지나서 아무도 찾지 않게된 것이었다.
새로 생긴 이발소에 손님들을 다 뺏기고 그나마 남은 단골손님들은 대머리가 돼서 손질할 머리가 없었다. 기욤 라두세트에게 이발사로서 절망적인 상황을 표현한 거지만, 이 대목에선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나왔다. 대머리는.
최신 미용실에 밀려서 이발소가 문을 닫는 상황은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이고 내 친척분 중 한 분도 이런 상황에 처했던 일이 있어 마냥 남일같지 않은 얘기긴 했다. 날때부터 타고나서 평생 끼고 살아온 천직에서 한물 갔다는 이유로 물러나는 건 어떤 기분일지 감히 상상이 안 간다.
하지만 기욤 라두세트는 이발소를 그만두고 금방 새로운 일을 모색한다. 가뜩이나 34명도 안 되는데 최근에 미니 토네이도로 한 명 더 날려보내서 협소해진 이 마을에 싱글로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중매쟁이 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이발소였던 자리에 '마음의 욕망'이라는 중매소를 차린다. 중매소 이름이 살짝 구린 탓인지 오픈 첫날부터 썰렁하게 먼지만 날리지만 차즘 자신의 반쪽이 그리워 찾아오는 고객들이 하나 둘 생긴다.
환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길고 파리한 손가락을 가진 치과의사,
생선 노점상에서 조수로 일하고 있지만 맛있는 버섯을 혼자 독차지하려고 일부러 독버섯을 알려줬다는 심증이 마을에서 암암리에 떠도는 '버섯 독살범' (이름 놔두고 그냥 버섯 독살범이라고 자주 가리킨다.)
통조림 하나도 그냥 안 주는 치사한 성깔에 촌스러운 옷과 거대한 가슴을 가진 식료품점 주인
기욤 라두세트의 절친이자 마을에서 한 명뿐인 빵집 주인
남편이 사고로 죽어 혼자 사는 아름다운 미망인
등등
그리고 기욤 라두세트의 동갑내기 첫사랑.
남들이 원하는 짝은 다 찾아주면서 정작 자신의 첫사랑과는 엇갈려서 얼떨결에 첫사랑의 중매도 서주는 이발사의 웃픈 이야기였다.
33명도 안 되는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때문인지 상당히 많은 인물의 시점과 교차하는 소설이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산만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인물을 하나씩 짚을 때마다 묻어나는 애정과 유머러스함은 내용을 막힘없이 술술 읽어나가게 해 주는 매력이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뒤쪽 책날개를 봤는데 낯익은 이름이 보여서 놀랐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초콜릿>의 조앤 해리스가 이 작품에 찬사를 보낸 코멘트가 있었음..
거의 충동적으로 산 책이었는데 이렇게 또 뜻밖의 연결고리를 발견해서 엄청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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