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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비록 내가 이런 점을 근거로 소설을 칭찬하는 데에 인색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종류의 역사와 경험과 생각에 대해 알려준다는 점이다. 남베트남에서 미국으로 망명온, 남베트남 군인이자 북베트남의 첩자로서 활동 중인 프랑스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를 둔 사생아 주인공. 대충 이런 배경을 들었을 때 예상했던 것은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과 첩보전의 긴장과 그리고 기타 등등......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허나 <동조자>는 그 이후부터 시작한다.
탈식민주의 문학이 대체로 취하는 전략과 비슷한 방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들은 미국인을 어떻게 보는가? 미국인은 그들을 보며 무엇을 보고자 하고, 그것이 그들을 어떻게 억압하는가? 남베트남 난민 군인들은 미국에서 하위 계층의 삶을 살아가며, 긍지도 의지도 점차 잃어가고, 비웃음 섞인 냉대 속에서 썩어간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알고 있듯, 미국이 그들에게 그래선 안 됐다. 미국이 먼저 그들에게 지원을 하며 공산당과 맞서 싸우라고 요구했고, 그러다 밀리니까 모든 것들을 물리기만 한 채, 거기서 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자기들 땅의 주변부에서 살 수 있도록 허락해준 것 하나만으로 자신들이 큰 호의를 베풀었다고 여겨선 안 된다는 거다.
기묘한 점은 한국 역시 이런 대리전을 치른 적이 있는 국가고, 우리 역시 수많은 난민들이 비슷한 이유로 미국에 흘러들어왔다는 것이다. 작가가 <뉴욕 타임즈> 선데이 리뷰 오피니언 란에 올린 글에서 한국인 난민들을 언급한 건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조금 묘한 점은 베트남 전쟁에 있어서 한국군이 그리 떳떳한 편은 아니었다는 점이지만, 일단 이에 대해서는 뒤에 얘기할 "베트남인들 스스로가 스스로를 학대"하는 이야기를 할 때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러니 내게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예상 독자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던 셈이다.
허나 솔직히 말해 내게 한국 전쟁 시절의 한국은 베트남 전쟁 시절의 베트남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결국 주로 눈이 갔던 부분은 처음부터 제시되던 미국인들이 "동양인"들을 보는 눈이다. 베트남인이 아니라 동양인으로 크게 묶은 것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관심 자체보다는 오리엔탈리즘이 그 눈에서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탓이다. 동양학과 교수 해머가 키플링의 말을 인용하며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어라, 결코 둘은 만나지 못하리라."(1권 p.109) - 동양과 서양의 발라드) 혼혈 주인공에게 자신의 동양적인 측면과 서양적인 측면을 적어보라고 하는 장면은 정말 고소를 머금지 않기가 힘들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동양"에 관심 있을 동양학과 교수가!
다른 웃음 포인트는 베트남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다. 첫 구상에서 어떻게 베트남인들이 사실과는 전혀 맞지 않게 왜곡되어 있고, 이를 지적하는 주인공의 말에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는지. 그리고 주인공이 이를 고치고자 영화 제작 과정에 참여하지만, 결국 전체적인 영화의 구조를 고치는 데에, 그리고 주변화로 밀려난 베트남인들에게 조명을 주는 데에 실패하는지. "착한 황인종들을 나쁜 황인종들로부터 지키는 백인 남자들에 관한 서사시적 작품의 소재"로 쓰이는 것을 관망하면서.
나는 한 나라를 착취하기 위해 그 나라를 직접 찾아가야 한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프랑스인들의 순진함에 연민함을 느꼈습니다. 할리우드는 착취하고 싶은 나라들을 상상으로 그려내기 때문에 훨씬 더 능률적이었습니다.
1권 p.221
사실 꼭 그렇게 "서양"만을 탓할 순 없다. 우리는 언제나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이야기하려고 하고, 두 문화권의 차이를 대조하는 프로그램이나 책들을 보고, 서양의 권위나 평가를 통해 자신의 것을 평가하려고 하니까. 굳이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같은 너무나 들먹여져 이제는 거의 고전이 된 책을 인용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아마 이 부분은 책의 후반부에서 주로 나오는, 베트남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학대하느냐에 대한 이야기와도 결이 맞을 것 같다. 절반만 맞지만. 나머지 절반은 주인공의 사상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혁명, 독립과 자유에 있다.
Nothing is more precious than independence and freedom.
2권 p.291
위 인용은 불가피하게 영어로 했는데, 원 번역서에서도 주석으로 영어 원문을 함께 올렸으니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독립과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다르게 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독립과 자유보다도 중요하다. 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그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모욕당했을 때 다른 때보다도 격한 분노를 드러낸다. 이 빈 것은 사상의 중심에 있고, 결국 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뭐냐는 일련의 질문 끝에 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공허하게.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품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리 없다. 품은 이들 중에서 자신이 품은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를 비웃는 사람들을 용납할 수 없다. 결국 그것을 위해 행동하며 독립과 자유를 부여한 혁명군들이, 이제는 그것을 위해 독립과 자유를 다시 사람들로부터 빼앗는 것이다. 이것이 주인공이 그의 의형제와 함께 베트남에 잠입한 이후, 다른 의형제로부터 듣는 "베트남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학대하느냐"이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가 제시한 "아무 것도 아닌 것" 외의 권력에 대한 비판에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체제가 권력을 갖게 되면 결국 그것이 개인을 억압하는 방식은, 체제의 성격과는 무관하고 체제의 권력 구조에만 좌우될 뿐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북베트남에서 억류된 주인공이 고문당하는 방식이나, 남베트남에서 북베트남 첩자를 고문하는 방식이나, 미국 난민이 된 주인공이 장군으로부터 살인을 교사당한 방식이나, 크게 보면 그리 달라질 것은 없다. 피가 어떤 식으로 튀느냐의 차이일 뿐.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어쩌면 드 퀸시 같은 사람들은 그 차이에서 또 미학적 관심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겠지만, 그런 이야기는 요즘 말로 너무 "쿨찐" 같다고 느껴진다.......)
차처하고, 이 글은 일종의 고백록 형식으로 적혀 있다. 그렇지만 분명하게 누군가를 위해 쓰인 고백록으로. 이 고백록을 읽는 "소장"은 누구일까? 조금 더 읽어나가다가, "소장"이라는 인물이 고백록 밖의 인물이 아니라 그 안의 인물로 처음 등장하게 되는 순간에서야 이를 깨닫게 된다. 주인공은 포로 수용소에서 공산주의 사상을 재교육 받기 위해 자아비판을 하고 있는 중이다. 평생을 공산주의의 이중첩자로 살아왔는데도 말이다. 그 점이 참 우스운 점이고, 이 형식과 더불어 <동조자>가 참 미국적인 글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동조자>는 보니것을 연상시키는 유머 감각이 살아 있는 글이다.
그래서 책 말미에 실린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이 책이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베트남인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고 했을 때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생각해도 미국적인 독자들이 좋아할 법한 방식으로 쓰인 책인 탓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미국적인 소설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이 소설을 좋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이유로 <동조자>를 꽤나 재밌게 읽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P.S. 책을 빌렸을 때 겉표지가 벗겨진 채로 빌렸기 때문에, 이 속표지의 디자인이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의 국기라는 걸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겉표지와 속표지의 국기가 심지어 다르다! 색까지 다른 것을 보면, 첩자이자 양쪽에 발을 걸친 주인공을 상징하는 걸까?) 감상문을 쓰면서 새로 깨달은 부분 하나. 이런 의도된 주의에서 알게 되는 사소한 것들이 또 감상문을 쓰는 재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 사람이 동남아 작가 중에 제일 유명하댔나
그건 딱히... 애초에 베네딕트 앤더슨 같은 양반들이 인용하던 동남아 유명작도 많고 (나는 모르지만)
리뷰 깔끔하고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