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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의 대표작 《장미의 이름》도 그 명성과 친구의 칭찬만 들었을 뿐이지 그다지 관심가져본 적은 없고 애초에 이름부터 움베르'트' 에코로 잘못 알고 있을 정도니 유명세에 비해 내가 가진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것이다.

그래서 작년 이 책을 선물받았을 때 약간 곤란한 감정도 있었다. 그래도 한 번 접해본 작가면 모를까 에코는 흠.... 그렇게 묵혀둔지 약 두 달 정도 지난 후 그래도 선물 준 사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한 번 들춰는 봐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몇 페이지 읽어 보았고, 생각보다 유쾌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쭉 읽게 되었다.



난 유머의 정신을 좋아한다. 정확히 삶의 가장 내밀하고 본질적인 부분이 바로 유머라고 생각한다. 세르반테스나 디드로와 같은 상당한 고전 소설들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혀 진지하지 않고 자유로운 가벼움으로 무장했으나 오히려 다른 엄숙함에 비해 많은 핵심을 함축한 유머의 존재가 그 이유이다. 진지함와 엄숙함이 대상을 신성화하고 떠받드는 반면 유머는 이를 우리와 동일한 수준으로 낮춤으로서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반면, 이는 풍자와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풍자는 부정의 엄숙함이다. 풍자는 대상을 우리보다 더 낮춤으로서 조롱하는 것이다. 풍자에서 대상은 언제나 어긋나 있고 우리는 언제나 옳다. 그렇기에 풍자는 은연 중에 대상보다 우리가 더 낫다는 우월감을 함축한다. 유머는 이런 태도와는 무관하다. 대상과 우리는 본질적으로 동일하고 그 미묘함에서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이나. 간혹 유머스럽다는 글들이 생각만큼 웃기지 않은 이유는 이에 속한다. 대상과 동일하다는 시각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유머로 가득찬 사람이다. 그는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편함에도 악의를 담은 채 비방하고 풍자하지않는다. 오히려 이에 가볍게 웃으며 유머로서 승화시킨다. 대상을 자신과 동일한 위치에 두고 에코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현대 사회의 병폐와 모순을 우스꽝스럽고 가볍게 만든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는데 제목에 충실한 글들은 1장에 해당하고 2, 3, 4장은 각각 픽션, 연구서, 고향에 관한 에세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어느 글이든 이 책에서 에코가 유머를 잃는 일은 없다. 2장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픽션은 가벼운 sf 코미디이고 3장은 보르헤스를 떠오르게 하는 텍스트적 연구를 담은 보고서이다. 4장은 에코 자신의 고향에 대한 짧은 글인데 특색 없는 고향에 대한 애정이 잘 드러난다.

움베르토 에코는 흔히 다양한 영역에 통달한 만능인이자 이런 방대한 영역을 쏟아내는 우수한 소설을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드러나는 그런 유머스러움은 명성에 비해 유명하지 않은 듯 하다. 움베르토 에코의 팬이든 팬이 아니든 그의 독특하고 새로운 면모를 알고 싶다면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