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지리멸렬하게 몇 년간 붙잡고 있는 책이 있었는데, 간만에 쉬어가는 기분으로 짧은 분량의 책을 골랐다.
최근에 한병철 센세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기사를 접했고, 또 그의 전작인 '피로사회'를 인상깊게 읽은 탓이다.
그렇다고 이 책은 짧다고 해서 가벼운 것도, 최신 저서도 아니다. 우리네 도서관은 늘 시류에 뒤쳐지므로...
이 책은 그 제목처럼, 어떻게 개인이 자발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의 덕목을 '내면화'해나가는지를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시대정신이라고 볼 수 있는 '자유', (친절한)'권력', '감정', '빅데이터' 등의 개념들을 성찰하고,
오늘날의 체제가 이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책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많이는 쓰이지만 쉽게 다가오지 않는' 표현을, 일상적 차원에서 쉽게 조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평범한' 경험들과 책에 등장한 내용을 비교해가면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긴다.
둘째로는, 한병철 센세 특유의 문장이다.
특히 개념의 유래를 든다거나 고전을 차용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그의 언어의 '고고학'적 지식들은 아주 멋지게 다가온다.
물론 내가 철학책을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반면 아쉬운 점도 있다. 전작 '피로사회'에서도 똑같이 느꼈던 점인데,
그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벗어나는 탈출구로 각자가 이방인이자 일탈자가 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은, 그가 앞서서 비판했던 신자유주의적 자유, 즉 '타자가 배제된 고독한 자유'라는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편, 신자유주의 체제는 70년대(한국은 90년대) 이후의 정치경제적인 조건들의 분명한 변화를 빼놓고는 결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는다는 것은 마찬가지로 그러한 조건들에 대해 반드시 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미 이에 대한 양질의 책들은 이미 포화상황이지만.)
그러나 병철 센세는 어디까지나 '개인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체제에 순응하는가'에 집중하기 때문에,
몇몇 최신 '기술' 사례를 들고 있기 하나 중요한 알맹이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
또, 신자유주의로 인한 일상, 사고의 변화라는 주제가 그렇게 새롭지도 않다.
당장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는 훨씬 직관적이고 쉽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책은 이 책만큼 엄격한 서술을 보여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좋은 책이란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일상을 당연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면, 이 책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은 개인적으로 감명깊게 읽은 단락..
우리는 정말로 자유롭고자 하는 것일까? 우리는 자유롭지 않아도 되려고 신을 발명하지 않았던가? 신 앞에서 우리는 모두 빚을 진 존재다. 그런데 빚은 자유를 파괴한다. 오늘날 정치가들은 거액의 부채 탓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빚이 없다면, 즉 완전히 자유롭다면, 우리는 정말로 행동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행동하지 않아도 되려고, 즉 자유롭지 않아도 되려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영우너히 채무자로 머무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액의 부채는 우리가 자유로울 능력이 없다는 증거가 아닐까? 자본은 우리를 다시 채무자로 만드는 새로운 신이 아닐까? 발터 벤야민은 자본주의를 종교로 파악한다. "자본주의는 죄를 씻기는 커녕 오히려 빚을 제우는 제의를 벌이는 최초의 사례"다. 죄를 씻을 길을 알지 못하는 엄청난 부채의식은 빚을 갚기 위해서가 아니라 빚을 보편화하기 위해서 제의에 의존한다.

피로사회 좋았는데 오
ㅊㅊ
좋아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