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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재미는 있었지만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책이다. 우드하우스를 읽으며 느꼈던 감상을 비슷하게 받았다. 너무나 쾌활한 글이다. 역자 후기에서도 제이디 스미스를 살만 루슈디와 비교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며, 전자는 후자에 비해 훨씬 더 편안하고 쾌활한 세계를 그린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살만 루슈디보다 훨씬 더 좋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어떤 식으로 쾌활한 세계느냐. 소설에서는 영국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말 그대로 다양하게 나온다. 두 중심 가정인 아치볼트-클라라, 사마드-알사나에서 뻗어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아치볼트는 가난하고 우유부단한 영국 백인이고, 클라라는 여호와의 증인 자메이카-영국인 혼혈 어머니를 둔 사람이고, 사마드는 세포이 항쟁의 주역 중 하나인 망갈 판디의 후손이고, 알사나는 벵골(현 방글라데시) 귀족가 출신의 여인이다. 클라라의 어머니는 지금도 여호와의 증인교도로서 클라라의 전 남자친구와 함께 지구 최후의 날을 위하여 기도하고, 사마드의 쌍둥이 자식은 한 명은 현대적 지성인이 되고 한 명은 마약중독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된다. 두 가정의 자식들이 얽힌 또 하나의 가정은 이들과는 전혀 다르게 부유하고 명석한 (그러나 좀 엘리트적인 방식으로 차별적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렇게나 많고 다양하고 서로 견딜 수 없어 할 사람들이 섞여 있고 파국까지 다다르는데도, 결국 아무도 죽지 않는다. (엄밀하게는 아무도는 아니다. 작중에서 아치볼트와 사마드가 전우이던 시절에 같은 부대 사람들이 전부 죽으니.) 마지막에서 "결말"을 말해주는 부분은 화룡점정이다. 목격자들이 쌍둥이 중 누가 범인인지를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모두 약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클라라의 딸은 명석한 가정의 자식(위에서 언급한)과 결혼했습니다. 금녀의 구역이었던 아치와 사마드의 단골 식당에 여자가 들어올 수 있게 되었고 두 사람은 클라라와 알사나를 초대했습니다. 모두들 문제는 많았고 우여곡절이 길었지만, 아무튼 끝에 와서는 다들 잘 살았답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낙관주의는 이런 식이다. 영국은 이렇게나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은 서로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 그건 맞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그건 큰 오산이다. 우리는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딱히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독자인 나까지 이 인물들과 마음 속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후반부에 나오는 방의 묘사에서 영국인들이 원하는 현대적인 것에 대한 설명이 그 마음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아무 것도 없었으면. 그냥, 아무 것도 없었으면!"


https://newrepublic.com/article/61361/human-inhuman



잠시 인터넷을 찾아보니 <하얀 이빨>을 비롯한 요즘의(사실 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 중반 정도까지의 요즘이었지만) "명작"들을 비판하는 글이 있었다. 해부대에 올라온 소설들은 살만 루슈디의 <그녀가 딛고 있는 땅The Ground Beneath Her Feet>, 토마스 핀천의 <메이슨과 딕슨Mason & Dixon>, 돈 드릴로의 <언더월드Underworld>,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무한한 재미Infinite Jest>, 그리고 당연하게도,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하얀 이빨>이다. 거기서 평론가는 이러한 "디킨스"스럽다고 이름 붙여지는 글들이 너무나 장르화되었다고, 매 순간마다 어떻게든 사람들의 눈을 끄는 활력을 넣으려 한다고, 이름들과 특징들이 너무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세균에 집착하는 존 에드거 후버(FBI 초대 국장이자 FBI의 우악스러움의 상징)의 환생체 수녀 에드가 - 돈 드릴로 <언더월드>) 글에서 등장한다고. 그런 방식으로 어떻게 해도 현실적이지 못하지만, 현실적인 '척'을 하는 은폐적인 글이라고.



문제는 <무한한 재미> 역시 이와 비슷한 이유로 비난받을 만한 글이라는 점이라, 나는 <하얀 이빨>에서 내가 느낀 불쾌함과 <무한한 재미>에서 느낀 호감을 해석할 만한 척도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가 디킨스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그리 좋은 설명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