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전쟁은 못 하지만, 사실 단테 하나만으로 다른 나라 문학들은 그냥 씹어먹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단테...그는 신이야!!! 신곡 펀치 신곡 펀치!!
실로 단테는 이탈리아 문학의 신이자 아버지이자 모든 것이었으며, 사실 단테만한 업적딸을 친 작가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신곡을 피렌체 속어로 썼으니까 이탈리아 표준어를 가장 시적인 피렌체 속어로 정하자! 는 약빤 소리를 실현시켰다.
꼬우시면..... 신곡 쓰든가?
버질은 어따 팔아먹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베르길리우스는 로마, 라틴어 작가입니다. 이탈리아가 아니에요.
트루 롬은 오스만이니, 버질은 터키 문학의 시조라고 합시다.
아무튼 단테의 등장으로 이탈리아 문학은 사실 한 몇 백년 동안은 아무 것도 안 해도 충분할 정도로 대문호 파밍을 끝내놨다.
실제로도 국내 번역된, 그리고 독붕이들이 생각하는 이탈리아 문학은 대충 중세 단테와 현대 이탈로 칼비노, 에코 등의 작가들일 것이다.
대체 그 중간의 수백 년은 어따 팔아치웠을까?
물론 단테 이후로도, 타소나 아리오스토 같은 대가들도 나왔고, 사실 이탈리아 문학은 꾸준히 대가들을 배출하고 있었다. 국내 소개가 거의 안 되서 그렇지.
오늘은 모더니즘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20세기 사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무엇보다 단테의 자리를 위협하는, 단테 이후로 이탈리아가 낳은 최대의 시인이자 작가를 알아보자.
'태어난 생물에게 있어
생일 날은 한탄해야하는 날이다.'
- <아시아의 방랑하는 양치기의 밤 노래>
바로 자코모 레오파르디.
인용된 시부터 굉장히 우울해보이는 자코모 레오파르디는 1798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백작이자 반-혁명을 지지하는 사상가이자 정치 작가였다. 거기에 레오파르디가 태어난 곳은 보수적인 이탈리아 깡촌이었다.
다만, 레오파르디의 아버지는 자식 교육을 신경 쓴다. 그에겐 천 권이 넘는 장서들로 이루어진 개인 도서관도 있었다. 요즘에도 그럭저럭 많지만, 당시 기준으론 열라게 많았다.
어린 레오파르디를 성직자로 키우려는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신부님들을 고용하여 아들 교육을 시킨다. 그러나 곧 신부들은 레오파르디의 교육을 포기한다.
레오파르디가 어릴 적엔 조금 모자르게 보였거나, 공부할 능력이 없었던 걸까?
그 반대였다. 너무 뛰어나다고 사실상 정규 교육 과정을 받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후 레오파르디는 정규교육 과정과는 먼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아버지의 도서관의 있는 여러 언어들로 쓰인 고전들을 읽으며 대충 10대 초반에 이미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등 수 여개의 언어를 마스터하며 천재란 걸 보여준다.
이러한 방대한 독서와 수많은 언어 습득은 훗날 레오파르디가 자신의 글들에서 끝없이 고전들을 인용하거나 분석하고, 또한 언어학적으로 여러 언어들을 비교하는 등의 모습에 영향을 준다.
이런 어린 천재는 대체 앞서 인용한 것처럼 음울한 시를 썼던 것일까?
<즐거움은 언제나 과거나 미래 속에 있다, 현재엔 결코 없다.>
-지발도네 중
현대 미디어에서 표현하는 레오파르드의 모습이다.
한눈에 봐도 알겠지만, 어릴 적부터 레오파르디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끝내 곱추가 된다.
원래 타고난 면도 있지만, 이렇게 신체적으로 계속 고통받으며 자신이 젊음을 누리지 못했다고 여겼기에 레오파르디는 점점 음울하고 비관적인 인간으로 변모한다.
그는 성직자로 키우려는 아버지를 거부하고, 혁명과 계몽 사상에 반대하던 아버지에게 대항하여 오히려 이러한 사상과 책들을 즐겨 읽는 등 반항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시인이자 작가로서 길을 걷기 시작한다.
<삶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이탈리아 남편이 자신의 아내를 대하는 태도와 같다: 사실이 아닌 것을 알고 있더라도, 그는 부인이 자신에게 충실하다고 믿어야만 한다.>
- <지발도네>
평생을 고통받으며 괴롭게 살아온 레오파르디는 1837년, 38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지만, 그는 짧은 삶동안 수많은 글을 남긴다.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을 끼치는 그의 시집 <칸티>를 비롯하여, 여러 산문집들, 그리고 자신의 철학이나 경구, 평론 등을 끄적인 수 천 쪽 분량의 노트, 일명 <지발도네>라 불리는 저서를 남긴다.
지발도네가 뭔 뜻이냐고? 별 뜻 없다. 그냥 이탈리아어로 대충 노트 모음 정도 뜻인데 레오파르드의 <지발도네>는 레오파르디의 노트들 정도로 번역될 수 있지만
그런 거 없이, 그냥 <지발도네> 하면 오늘날은 레오파르디의 책을 말하는 고유명사처럼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대로 믿지 않을 사실 두 개: 하나는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이다.
세번째를 더하자면, 두번째 사실에 근거하여, 죽음 이후에 희망할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이다.>
- <지발도네>
그의 인용구들을 봐도 알겠지만, 레오파르디는 일명 비관주의로 유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사상적인 면모는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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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철학은 그저 인간혐오에 기여하기 위해 있지 않다, 물론 얄팍한 독자들에게 그렇게 보여지고, 많은 이들이 이와 같은 이유로 나를 비난하곤 하지만 말이다.
이건 본질적으로 인간혐오를 배제시키며 치유하고자 있다.>
- <지발도네>
그의 비관주의에 영향을 받은 쇼펜하우어나 니체는 레오파르디를 찬양하며 자신의 것으로 레오파르디를 변형시키기도 하였다.
물론 시인이었던 만큼, 레오파르디는 후배 문학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
무엇보다 모더니즘에도. 레오파르디에게 큰 영향을 받은 모더니스트론 대표적으로 사뮈엘 베케트가 있다.
<모든 것은 죄악이다. 내 말은, 모든 것이 그러하며, 사악하다는 뜻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죄악이다. 모든 것은 사악한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존재는 사악함이며 사악함을 위한 사제로 임명받았다. 죄악은 그 목적이며 마지막 목적이며 우주다... 유일하게 좋은 것은 비존재 뿐이다.>
- <지발도네>
몇몇 베케트의 소설은 레오파르디의 경구나 시를 근간으로 베케트가 다시 썼다는 평을 듣기도 하며,
<불행보다 우수운 것은 없다>, 혹은 <나의 고통보다 더 고귀한 고통이 있을까?> 와 같은 베케트의 작품을 상징하는 부조리극의 대사들은 레오파르디의 영향을 받아 쓰여졌다.
자신의 선배 레오파르디가 그러했듯, 베케트 또한 비관적으로, 그리고 그러한 비관과 비존재를 향해 웃는 것으로 선배의 길을 넓혔다.
그리고 단테 이후 등장한 이탈리아의 최대 시인 레오파르디의 존재로, 단테, 타소, 아리오스토 같은 대가들로 이어졌던 이탈리아 시문학이 레오파르디 이후 주세페 웅가레티나 살바토레 콰시모도, 움베르토 사바, 그리고 에우제니오 몬탈레 같은 대가들로 계승되며 이탈리아는 언제나 전쟁은 지지만, 시는 잘 쓰는 국가로 남게 해주었다.
안타깝게도 이탈리아 문학 번역은 시궁창이므로 아직 레오파르디를 읽을 순 없지만,
그에게 너무나도 큰 영향을 받고, 다시 쓴 광팬 베케트를 대신 읽는 것으로 대체하면 되지 않을까?
베케트 워크룸 선집 사자~
<무한함>
- 자코모 레오파르디
언제나 이 외로운 언덕과 머나먼 지평선
풍경을 가리는 울타리는
내가 가장 사랑하던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앉아, 바라보고 있자면,
내 마음이 이 너머 끝없는 공간과
너무나 깊은 정적 너머를 응시하다
끝내 두려움에 떠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휘날리는 게 들려오고,
나는 이 소음과 끝없는 고요함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영원이 내 마음에 찾아오고,
죽은 계절들과, 현재 살아있는 것들, 그리고 그 소리들이 찾아온다.
그러자 내 마음은 이 방대함 속에 가라앉는다.
이 바다 속에 침몰하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달콤하다.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토끼공듀의 삶
- 만델스탐의 노래
- 악어들의 거리
- 독일인이 오리라
모더니스트의 선조들
레오파르디 자주나오네 밑에도 누가 레오파르디 얘기 하던데 근데 번역없지않음?
레오파르지 번역 내놓으라고 빼애애ㅐ액
제발 번역 좀 ㅠㅠ 근데 오페레테 모랄리는 어떰? 니체가 이거 보고 금세기 최고의 산문가라고 치켜세웠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