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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오늘날의 사회는 이질성과 타자성의 소멸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한다. 이질성이란 면역학의 근본 범주로 모든 면역 반응은 이질성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에 이질성은 오늘날 아무런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차이로 대체되었다. 면역학적 차원에서 차이란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피로사회 中>
투명사회는 저자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논의하던 주제인 ‘긍정성’에 대해서 좀 더 심도있게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실패란 없는 과잉긍정된 사회이고, 그렇기 때문에 개인들이 소진, 우울증 같은 병에 걸린다고 주장한다. 이 점을 숙지하고 투명사회를 읽어야 한다.
1. 긍정사회
“그 누구도 어떤 말 속에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작을지언정 어떤 차이가 마치 물속의 동심원처럼 언어 전체에 파동을 일으킨다. 따라서 모든 이해는 언제나 몰이해이기도 하며 생각과 감정의 모든 일치는 동시에 분열이기도 한 것이다.” - 홈볼트
오직 정보로만 이루어진 세계, 정보의 원활한 유통이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불리는 세계는 기계와 유사할 것이다. 투명성에 대한 강박은 인간마저 평준화하여 시스템의 기능적 요소로 만든다. 이런점에서 투명성은 폭력이다. …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투명하지 않다. 자아는 무의식이 긍정하고 갈망하는 것을 부정한다. ‘이드’는 자아에게 거의 감추어져 있다. 그러니까 인간 정신은 균열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자아가 자신과의 일치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 투명성의 강제에는 섬세함, 즉 결코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다름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다. … 투명사회는 정보의 공백도 시각의 공백도 용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유도 영감도 어떤 빈자리를 필요로 한다. …빈틈의 부정성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행복이 없는 사회이다. 시각의 빈틈이 없는 사랑은 포르노이다. 그리고 지식의 빈틈이 없다면 사유는 계산으로 전락한다.
긍정사회는 부정적 감정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괴로움과 고통을 대하는 법, 그러한 감정을 형식에 담는 법을 잊어버린다. …긍정사회는 인간영혼을 완전히 새로 조직화 하려는 참이다. 영혼의 긍정화 흐름 속에서 사랑 역시 안락한 감정들 복잡하지 않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흥분들의 평면적인 배합으로 전락한다. …사랑은 길들여지고 긍정화되어 소비와 안락의 상투형이 된다.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아야 한다. 고뇌와 정열은 부정성의 형상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부정성 없는 향락에 밀려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진, 피로, 우울과 같이 긍정성의 과잉에서 생격나는 심리적 장애에 의해 대체된다.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역시 부정성의 현상이다. 이론은 무엇이 여기 속하는지 않는지를 결정하는 결단이다. 이론은 고도로 선택적인 이야기로서 구별의 경계선을 만든다. 이러한 부정성으로 인해 이론은 폭력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론의 사명은 “사물들이 서로 접촉하는 것을 막고” “뒤섞인 것을 다시 분리”하는 일이다. 구별의 부정성이 없다면 사물들은 온통 제멋대로 증식하며 난교 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론은 입회자와 외부자를 분리하는 의식과 유사하다. 오늘날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고 있는 실증적 데이터와 정보의 더미가 이론을 불필요하게 만들고, 데이터의 비교가 이론적 모델을 대체할 것이라는 가정은 틀렸다. …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실증과학은 임박한 이론의 종말을 초래한 원인이 아니라 그것의 결과일 뿐이다. 이론은 실증과학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증과학에는 무엇이 존재하는지, 무엇이 존재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결단의 부정성이 없다. 부정성으로서의 이론은 언제나 현실 자체를 현격히 다른 모습으로, 다른 빛 속에서 나타나게 한다.
저자는 부정성이 없는 긍정사회이기 때문에 부정성의 현상인 이론은 사라지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실증과학이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즉, 이론의 부정성이 우리가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새로운 시각을 준다고 주장한다.
투명성은 색깔이 없다. 디지털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에서 색깔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몰이데올로기적인 의견인 한에서만 허용된다. 의견은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못한다. 의견은 이데올로기처럼 전체를 장악하고 전체를 꿰뚫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의견에는 뒤집어 엎어버리는 부정성이 없다. 그리하여 오늘의 의견사회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건드리지 않은 채로 놓아둔다. … 정치는 기존의 사회경제적 관계를 건드리지 않은 채 그 속에 틀어박혀서 그저 다양한 사회적 욕구를 관리하는 역할로 위축된다. 의견만을 제시하는 정당은 정치적 의지를 천명하고 새로운 사회적 좌표를 정립할 능력이 없다.
저자는 투명성의 극대화로 거대한 이념은 없어지고 의견만이 남는다고 주장한다. 정치인은 기밀없이 거대이념의 부작용을 책임지지 못하고 정치는 파파게노들의 관람석이 되어버렸다고 주장한다.
❈파파게노: 아무것도 모르지만 다 아는척하는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극중 인물
투명성과 진리는 같은 것이 아니다. 진리는 다른 모든 것을 거짓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립하고 관철한다. 그 점에서 진리는 부정성이다. 정보의 증가와 축적만으로 진리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에는 방향, 즉 의미가 없다. 진리의 부정성이 결여됨으로 인해 긍정적인 것이 마구 증식하고 다량화된다. 과다 정보와 과다 커뮤니케이션은 바로 진리의 결핍, 존재의 결핍을 드러낼 뿐이다.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은 전체의 근본적은 불명료함을 제거하지 못한다. 더 많은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불명료함은 오히려 더욱 첨예화된다.
저자는 ‘부정성’이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내놓는다고 주장한다. 너무나도 과도한 커뮤니케이션은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의 장애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정보의 부족을 걱정하지 않는다. 온갖 쓰레기같은 정보들 사이에서 필요한 정보를 탐색할 뿐이다. (구글의 검색엔진이 유명한건 그런 ‘부정성’때문이 아닌가?)
제 부족한 실력으로 책을 요약하는게 부족해서 장마다 요약해서 올리겠습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79535&search_pos=-81230&s_type=search_name&s_keyword=%ED%9D%90%EB%A6%B0+%EB%B0%A4&page=1
피로사회 감상문입니다. 요걸 보시면 그나마 읽기 편하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