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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개 아래로 잉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어느새 한낮이었다.

성하(盛夏)의 태양 아래 연못은 접시물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1997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중 추천 우수작 중 하나이다. 우선 이 단편을 읽은 뒤 내게 남은 것은 찝찝함이다. 아무리 내용을 상기하고 글을 쓰고 하려 해봐도 기분 나쁜 울렁임이 밀려온다. 이 소설이 40세 남성과 16세 소녀의 육체적 끌림을 담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감정이다.



(아래는 책의 대략적 줄거리입니다.)






남자는 여행 중 사고로 척추에 손상이 가 의자차(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지식인이다. 그 사고 이후 인생의 일부이던 여행은 고사하고 몇 년째 집에서 칩거 중이다. 멀어진 아내와 딸은 미국으로 떠났다. 남은 것은 휑한 집과, 서재와, 아내가 '원예 치료' 목적으로 만든 연못이다.



책을 읽던 중 정원에 볼품없는 고양이가 들어온다. 연못에 관심을 보이는 듯하더니 물고기 한 마리 없는 곰팡내 나는 늪과 다름없다는 걸 알고 흥미를 잃는다. 갑자기 대문으로 소녀가 들어온다. 고양이를 따라왔나 보다. 그런데 고양이는 안 찾고 연못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연못을 이렇게 비워두는 건 미안한 일'이라며, 아이는 별별 물고기들의 이름을 댄다. 남자가 무관심으로 일관하자 "바퀴 달린 괴물"이라고 놀리며 홀연히 사라진다. 참 고양이 같은 여자애다.



봉사자의 도움으로 번화가에 들른 남자는 수족관을 발견하고 자기도 모르게 홀린 듯 들어간다. 그러고 나서 아이가 말한 온갖 물고기들을 전부 주문한다.



물고기들이 오기 전까지 남자와 아이는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가 허락 없이 담장 위에 올라가 발장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아이의 심장이 좋지 않다는 것, 그녀의 어머니 때문에 피아노도 수족관도 모두 포기했다는 것, 우는 바람에 떨리는 어깨와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칼이 조숙한 표정을 만든다는 것, 셔츠 위 목덜미가 성숙한 곡선을 그린다는 걸 알게 된다.



늪 같던 연못을 청소하고 그 안이 금색, 은색, 백색, 흑색 잉어들로 채워지던 날. 남자와 아이는 나란히 엎드려 물에 양손을 집어넣고 잉어들에게 먹이를 준다. 뻣뻣한 냉동이나 흐물거리는 죽은 고기가 아니었다.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의 느낌, 손으로 만져보는 자유의 알몸, 그 자체로서 충일한 원초적 생명......', '미끄러운 점액질의 느낌, 금속처럼 차가운 비늘의 감각, 몸 전체를 실어 오는 튼실한 부피감,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게 "살아 있다"라는 감각을 뒤흔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바보." 아이는 그의 손을 찰싹 때린 뒤 재빨리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한여름 태양 아래 연못은 접시물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아이가 빈대떡을 가지고 남자의 집에 찾아온다. 남자가 책을 읽고 있었다 하자 아이는 관심을 보인다. 엄마가 치워버렸기에 아이의 집에는 책이 없다. 서재로 가 책을 고르고 있는데 아이가 명기(明器)를 구경하고 있다. 세상을 뜰 때 무덤에 같이 묻는 그릇들. "갖고 싶으면...," 아픈 아이에게 부장품을 주겠다고 하는 꼴이라니, 남자는 아차 한다. 아이의 당돌한 눈빛은 사라지고 속 깊고 파리한 표정만이 남았다.



남자는 아이의 입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입술은 아이의 입술에 있었다.



아이가 다시 나타난 건 며칠이 지난 뒤였다. 크게 앓고 입원했던 모양이다. 아프고 난 직후라서 그런지 아이는 '너무 단시간에 성숙해 버린, 속은 설고 겉은 쇠버린 과실'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몇 마디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이는 남자를 마주 보고 그의 얼굴을 잡았다. 와락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어두운 화염에 휩쌓인, 고뇌와 욕망에 일그러진, 열여섯 노파의 눈이다.



남자는 배수 밸브를 힘차게 비틀었다. 못의 바닥이 드러난다. "8월 땡볕이 무수한 황금, 백금 틈바구니에서 숨가쁘게 할딱거렸다."





막연한 고독은 사람에게 그다지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인 외로움은 사람의 내장을 상케 할 만큼의 맹독을 품고 있다.



외로움이 너무나도 구체적이어서 내장이 아니라 뇌를 상케했나 보다. 남자와 소녀가 너무나도 유사하고 그래서 서로 동질감을 느낀 것은 알겠다. 둘 다 몸이 성치 않고, 둘 다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고 있고, 둘 다 욕망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남자는 그러면 안 됐자너,,,



마지막에 연못의 배수 밸브를 비튼 연유는 뭘까?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더니, 연못은 남자의 욕망을 나타낸다 하더라.

차갑게 가라앉아있던 그의 욕망이, 소녀로 인해 채워지고 뜨거워지고... 결국에는 물을 빼버림으로써 그 밑바닥을 완전히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적절하게 소설 속 사물과 배경을 해석해내는 능력이 나는 부럽다. 비평가들은 작가의 의도를 포착해낼 수 있고(그게 진짜 작가의 의도이든 아니든) 그래서 작품을 다른 사람들보다 곱절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내가 소설과 비슷한 상황이었다면, 상대를 정말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외로운데 자신과 비슷한 존재가 눈에 보여서 마구잡이로 끌리는 상황이었다면, 이 작품을 읽고 무지 슬퍼지긴 했을 것이다. 좀 슬픈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저 지경까지 외로워지지는 않길 간절히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