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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읽어본 치누아 아체베의 글이자 아프리카 3부작(<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신의 화살>) 중 두 번째이다. 첫 번째 글인 <모든>의 주인공 오콩코의 손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걸 보니 아마도 <신의>도 이 계보의 연장선상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일단 <신의>를 읽지는 않았으니 읽은 두 권에 대해서만 평해보면, 이 둘을 합쳐서 보았을 때 묘하게 염상섭의 <삼대>가 떠오른다. 식민 지배를 관통하는 삼대의 인물이 서로 어울리기도 하고, 그 과정도 유사하기 때문에 그런 유사점이 잘 보이는 걸 수도 있겠다.
할아버지 오콩코는 식민 지배가 이뤄지기 전 시대의 지도자격 인물이었고, <모든>의 끝에서 초라한 자살로 퇴장한다. 아버지 이삭 오콩코는 오콩코가 관습의 명령을 따라 자신의 형제와도 같았던 이를 죽인 것을 원망하며 기독교로 개종하고, 오콩코의 죽음을 듣고 "남을 칼로 살해하는 자는 칼에 맞아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들 오비 오콩코는 마을 사람들의 후원금으로 출세한 후 돌아와 고향의 낙후된 도덕성과 부패에 절망한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의 인물들을 뽑아놓은 <삼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이다. 세부적인 요소들과 문화 자체는 다르지만, 탈식민주의 문학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이렇게 서로 통하는 점이 있는 셈이다.
다만 글의 흐름은 <삼대>와는 달리 손자 오비 오콩코를 명확한 중심에 두고 있다. 상술했듯 오비는 부패한 고향을 보며 절망하며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데, 이런 성격이 나오기도 전에, 맨 처음 나오는 장면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오비 오콩코가 뇌물죄로 재판을 받는 장면이다. 곧, 글의 나머지 부분들은 이 오비라는 인물을 현실이 어떻게 몰아가서 결국 자신이 혐오하던 부패한 고위직 중 한 명으로 만들었는지에 온전히 투자된다고 보면 된다. 이 과정들에 대해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위로 인해 늘어난 지출, 자존심, 관습과의 충돌, 그리고 그 관습을 품고 있는 지인―가족을 포함한―들과의 갈등 등. 그는 아버지 이삭만큼이나 애매한 시대에 끼인 인물이다. 그리고 동시에, 막 독립한 나이지리아의 중산계급―"장래성" 높은 젊은이―의 한계를 드러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기독교로 개종하며 전통적 종교와 관습을 따르는 다른 이들을 이교도라고 부르던 아버지 이삭의 기묘한 이중성인데, 말했듯 그런 배타적 태도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전통적으로 천민 취급을 받던 "오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전통의 수호자와 순간적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큰 소리로 웃었다. 때때로 가면을 쓴 조상의 영혼들에게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그런 웃음이었다. 그는 개별적으로 당신에게 인사를 하면서 혹시 자신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어볼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겸손하게 한 손으로 땅을 짚으며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잘 알지 못하며 당신은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는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러면 그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목구멍을 통해 나오는 것 같은 웃음을 웃어 댈 것이다. 그 웃음의 의미는 아주 분명하다. "사실 네가 어떻게 그런 걸 알겠니. 이 벌레 같은 가련한 인간아!"" p.192) 이 가면을 쓴 조상의 영혼들 역할을 일전 할아버지 오콩코가 하곤 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 이중성이 더욱 묘하다. 할아버지에 대한 반발 하나 때문에 전통을 등진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그 할아버지와의 연결을 본능적 차원에 새겨진 전통을 통해 더 공고히 하는 것 같으니.
이 전통이라는 아이러니가 책의 내용과 별개로 메타적인 의미에서, 즉 책의 제목에서 다시 등장한다. <모든Things Fall Apart>의 제목이 예이츠의 시 <재림The Second Coming>에서 따온 것이듯, <더 이상No Longer at Ease> 역시 엘리엇의 시 <동방 박사들의 여행Journey of the Magi>에서 따온 것이다. 의도를 곡해한다면 결국 아프리카인들의 글쓰기는 영문학을 등에 업지 않고선 쓸 수 없을 정도로 언어에 있어 일천하다고 할 수도 있다. 허나 그런 의도는 아니라는 것을 앞의 두 권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우무오피아인들의 다양한 속담과 이야기들, 그리고 노래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나 풍부한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다루는 소설의 제목에 왜 굳이 영문학에서 따온 이름을 붙인 것일까?
곧, 아체베는 이삭이 전통에 대해 갖고 있는 이중적인 태도와 같은 태도를 암시하고 있다. 자신들을 식민 지배한 국가의 문화가 싫은 것은 당연하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소중히 하고 싶은 것은 맞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자신들은 그들에게 너무나 큰 영향을 받았기에, 그 영향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들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듯 내숭을 피우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웃긴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자신들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도 보았을 때, 그들은 이미 그들의 언어로 우리들에 대한 오해를 충분히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와 전통을 통하여 반박을 해내야 한다는 것까지 포함된다. 일전 <모든>의 감상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소위 "다시 쓰기" 말이다.
올렸던거 아님? 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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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연히 남의 나라의 일이니 거울 삼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한국의 모습이 많이 비쳐보이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모든 식민 국가의 굴레인가 싶기도 하고.
저는 그렇게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게 한국은 식민 상태에서 너무 빨리 빠져나오면서 자신들도 그 중 일원이었다는 사실을 너무 잊고 있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