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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나가다가 모비딕으로 급회전해서 망했다는 건 사실 신화적 과장임."



물론 <모비딕>이 작가 허먼 멜빌의 몰락을 시작하게 만든 전설적인 작품인 것은 맞다.


다만, 그렇다고 이전까지 잘 팔리는 글만 쓰던 멜빌이 갑자기 예술혼을 발휘하며 급회전을 하면서 망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고래박이 멜붕이는 사실 본질적으로 언젠가는 망할 각이 있는 작가였고, 공교롭게도 그게 <모비딕>이 된 것에 가까웠다.


두 편의 장편 소설의 성공으로 독붕이들과 달리, 연애와 결혼까지 성공한 우리의 멜붕이!


그대로 3번째 작품인 <마르디>에서 본색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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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타이피>나 <오무>의 경우, 오늘날에야 멜빌의 근본이 되는, 말 그대로 숨은 시한폭탄이라는 분석으로 재평가받지만, 일단 소재적인 면에서 멜빌의 자서전에 가까웠다. 배 타고 이곳저곳 항해하며 멜빌 자신이 본 항해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당시 독자들 입장에서야 배 타고 선원 생활 그럭저럭 한 베테랑 선원이 들려주는 이국의 여행기처럼 느껴졌으므로 그 속에 잠든 흉악한 본성을 눈치채지 못하고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마르디>는 멜빌 본인이 그저 자전적인 여행담을 쓰는 것과 달리, 처음으로 하는 순수창작물이었다.


그렇게 멜빌은 스위프트와 라블레를 뒤섞은, 배 타고 다니는 여행기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철학적인 대화와 소재들로 가득한 작품으로 당시 평범한 여행기를 기대하던 이들의 뒤통수를 친다.


당연히 망했다. 평도 망했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방대한 소재를 다루려는 포부는 좋았으나 너무 산만하다고 욕먹었다.



이에 화들짝 놀란 우리의 멜붕이는 이어지는 4번째, 5번째 장편에선 다시 평범하게 보이는 여행 소설들을 출판하며 다시 그럭저럭 팔리는 작가의 위상을 유지한다.


이것만 봐도 알겠지만, 멜붕이는 이미 노답이었다.


하지만 <마르디>의 실패의 트라우마는 멜붕이에게도 뼈아팠던 모양인지, 실제로 <모비딕>의 저술을 시작했을 때, 멜빌은 출판사에게 대충 내년 쯤에 원고를 보내줄 것이며 이전 같은 항해 소설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가 택한 소재는 자신이 바다 여행 중 볼 수 있었던 향유고래에게 침돌당한 에섹스호의 생존자가 남긴 수기와 모카딕 등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다. 우선 생각 외로 집필이 잘 안 되었다. 멜붕이는 마지못해 쓰는 자신의 모습에 작가로서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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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1850년, 멜빌은 평소 존경하던 선배 작가 호손과 만난다.


호손은 그 동안 멜빌의 작품들에 긍정적인 평을 하기도 했던 터라, 둘은 친구가 되었고,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멜붕이의 눈에 볼 때 호손은 자기가 쓰고 싶은 것만 쓰고 사는 멋진 대가였고, 자신은 한낱 고래박이 멜붕이에 불과했다.


그때, 고래가 멜붕이에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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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가?"



그날로 멜붕이는 숨겨왔던 흉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것을 더는 숨기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자신이 누구보다도 고래를 사랑하는 고래박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기로 결정한다.



그는 호손에게 반쯤 자조적으로 자신이 '사악한 어떤 책'을 쓰고 있다고 말하였다. 주변에서도 우려를 표하기 시작했다.


멜빌이 다시 써내려가는, 고래잡이의 탈을 쓴 무언가가 그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멜붕이는 마침내 자신의 사악한 피조물을 세상에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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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뚫고 가는 것 외에 죄수가 어찌 자유로워질 수 있겠는가? 

내겐 그 흰 고래가 바로 날 뭉개는 벽이야, 어떨 때엔 그 너머에 아무 것도 없지 않을까 싶지. 

하지만 됐어. 그가 나를 고되게 만들어, 그가 나를 짇밟고 있어. 

난 그놈 속에서 알 수 없는 악의가 온 힘을 다하고 있는 터무니없는 힘을 볼 수 있어. 

그 알 수 없을 것이야말로 내가 증오하는 것이야. 

그 흰 고래가 그것의 대리인이든 그 자체든 난 그놈에게 내 증오를 퍼부울 거야.>

- <모비딕, 혹은 고래>



<모비딕, 혹은 고래>라는 거대한 작품이 마침내 1851년 영국과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당대 독자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마르디>에서 배신당한 것보다도 더욱 쎄게, 단순히 고래를 잡으려는 이들의 항해 소설을 예상했던 이들에게 이 사악한 책은 너무나도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다가왔다.


마치 전통적인 비극처럼 3부로 나뉘는 듯보이면서도 수많은 독백이나 때론 소설이 아닌 희곡 속 독백을 보여주는 기괴한 장면들.

황야를 방황하는 리어의 절규처럼, 항해소설에서 예상하기 힘든, 수많은 셰익스피어와 같은 고전적인 대가들의 패러디나 오마쥬들.

수많은 고래에 관한 당시 저서들의 인용이나 설명 등, 차라리 고래 백과사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방대하게 설명하면서도, 정작 제목이 되는 모비딕이라는 알 수 없는 고래.

당시 미국의 주 숫자와 같은 숫자의 선원들처럼 무언가 상징처럼 보일 법하면서도, 정작 작중 작가의 입으로 직접 모든 걸 부정하는 기괴한 형상.

거기에 신성모독적으로 보이는, 청교도적인 미국인의 시선으로 볼 때 너무나도 부도덕하고 기묘하며 괴팍한 인물들.....



오늘날 <모비딕>은 인간이자 작가로서 멜빌의 모든 고뇌를 담기 시작하는 전설적인 작품으로 평가하며, 그때의 미국을 형성하고 잡으려는 대작으로 평가한다.


(1)에서도 말했지만, 멜빌은 청교도적인 색채가 강한 집안에서 자라났고, 이제 막 독립하여 새로운 종류의, 이제까지 없었던 나라를 만들어야하는 미국의 청년세대였고, 또한 바다와 고래를 좋아했다.


청교도적인 집안에서 자라난 것은 멜붕이에게 무엇보다 비극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비딕>을 비롯한 후대 작품에서도 강하게 나타나지만, 사실 멜붕이는 신실하게 종교를 믿기엔 너무나도 '이성적'이었다. 당대엔 진화론 등의 발표로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흔들리던 세계였고, 멜붕이 본인부터가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했다.


멜붕이는 한 마디로 신앙을 가지고 싶은 불신자에 가까웠다. 따라서, <모비딕>에서 모순적으로 보이듯, 수많은 고래에 관한 당대의 사실들을 적으면서 알고자 했고, 그와 동시에 정작 그 중심이 되는, 혹은 마분지 가면을 쓴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스스로도 알 지 못하였다.


미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는 멜붕이 뿐만 아니라, 멜붕이와 동시에 활동한 미국시와 현대시의 아버지 월트 휘트먼이 그러하듯, 당시 미국 작가들의 작가적 사명이었다. 그들은 전통이 없는 '미국'의 전통을 대신 만들어야했고, 미국을 찾아야만 했다.


물론 본질적인 문제는 멜붕이가 고뇌하며 방황하는 패배자였다는 점이지만.



고래박이는 언급할 필요도 없이 당연하 거였다.




오늘날에야 미국 문학이 낳은 19세기 최대 걸작으로 평가받지만, 당시엔 그가 존경하던 선배 호손마저도 멜붕이가 출판한 사악한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으니, 멜붕이는 고래를 붙잡고 울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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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니임....그런 거 쓰지....말자고 했잖아요....그래도 <마르디>처럼, 다시 팔릴 만한 걸 몇 차례 더 쓰면 이번 손해도 만회할 수 있을 겁니다."




출판사는 이를 악물고 괜찮다고 애써 자기최면을 걸었을 것이다.


실제로 <마르디>의 실패 이후로 멜붕이는 다시 평범한 글을 썼으니까.


멜붕이도 이어지는 자신의 책은 잘 될 것이라 자신만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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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세요. 다음 작품은 그냥...안전하게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작품이 될 겁니다. 연애소설은 다들 좋아하잖아요?"


"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연애소설이라면 잘 팔리겠네요. 하지만 조금 식상해서 독자들이 지루할 법도 한데, 그건 어떻게 할 건가요?"


"걱정마세요. 이 설정이면 독자들도 좋아 죽을 겁니다."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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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 남매인 거죠. 한 마디로 근친상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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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부도덕의 '부'만 보여도 난리가 나는 기독교 MAX 청교도 미국 사회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모비딕>은 고래박이 멜붕이의 몰락의 서막이다.


이제부터 장대한 멜붕이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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