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변신에 대해서 불현듯 한 생각이 떠올랐다.

카프카의 변신은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많이들 읽는 작품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변신을 읽은 후 머리가 띵한 충격이나 허탈함과 같은 감정들을 느낀다고 한다. 개고생하며 일하는 자기자신이나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탱하던 아버지. 그런 일꾼들과 잠자가 겹쳐지며 피폐한 삶의 회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의 존재, 가정의 버림에서 오는 두려움 등등

하지만 잠깐 개인적인 체험은 내려놓고 소설만 두고 생각해보자. 물론 개인의 경험이 감상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것은 맞지만 이는 소설이 갖는 의미를 특정 영역에만 한정시키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돈 걱정 없는 갑부나 1인 가정은 변신에 공감 못한다는 것인가? 설마 그럴리는 없다. 소설에서 감상을 이끌어내는건 개인의 노력이지 그 사회적 위치가 아니니까.

아까 전 갤에서 나왔던 얘기는 내 생각의 시작에 큰 도움이 되었다. 만약 잠자가 백수였다면, 혹은 그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벌레로 변했다면, 소설의 결말은 똑같았을까? 여동생이 벌레로 변했어도 계속해서 잠자로부터 원조를 받고 살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선 내 생각으로는, 이런 가정은 의미가 없다. 아마 카프카였다면 설령, 그것이 누구든, 벌레로 변했다면, 잠자와 별다른 결말을 맞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건 잠자가 가족에게 많은 것을 해준 존재라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탕아의 이야기에서, 가족에서 벗어났다가 용서받고 돌아오는 수많은 이야기를 본다. 이처럼 잠자 역시 벌레로 변했지만 그간의 정을 봐서 생 정도는 영위하는 삶을 살게 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의 관계는 그렇게 자연스러운가? 카프카의 소설에서 이는 부정된다. 카프카에게 피로 이어진 가족조차도 개인의 고독으로 이르는 시대의 붕괴에 저항할 수 없는 작고 약한 집단인 것이다.

물론 경제적 능력의 상실이 잠자가 버려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맞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표면적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표면적인 이유들이 겹겹이 쌓여 현대인이 맞닥뜨린 가족의 붕괴라는 현실을 카프카는 기괴하게 비튼 것이 아닐까? 벌레로 변한다는 가장 극단적인 현상을 두고 가족은 그의 구성원 중 가장 큰 은인을 미련없이 버릴 수 있는가? 카프카의 대답은 예스이다.

잠시 다른 소설가와 그의 소설,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생각해보자.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했어도 가족 중 대부분은 이를 깊이 받아들이며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생각을 진행시키에 바쁘다. 그러나 여기서는 어머니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을 뿐이고 벌레로 변하는 등의 별다른 일이 생긴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다들 어머니를 이렇게 쉽게 버리는가? 단지 그것이 이 시대의 현실이기 때문에 그렇다(비록 90년 전 소설이지만 말이다.) 카프카가 가족 중 누군가 버려지는 것을 보여준다면 포크너는 버려짐 이후를 쓸쓸히 그려낸다.

소설의 결말은 남은 구성원 셋이 희망을 새기며 미래를 다짐하는 장면이다. 여기에 잠자는 어디에도 없다. 정말 이것이 가능한가? 아무리 벌레로 변했다고해도 그들의 지탱해준 아들을 이렇게 회상도 없이 떠나보내는게 현실일까? 놀랍게도 그렇다. 단지 그가 돈을 못버는 존재여서가 아니라, 현대인이 살아가는 세계가 가족의 의미가 붕괴된 세계이기에 그렇다.




와 흐름대로 쓰니 글이 개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