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김소진이 「자전거 도둑」과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저자라고 하기에 익숙하다 생각했는데, 내가 아는 「자전거 도둑」은 박완서의 소설이었고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칼 포퍼의 정치철학 책이었다. 그래도 이름은 귀에 익었으니 한결 친근한 마음으로 「울프강의 세월」을 읽었다.
이 소설의 배경은 80년대인데, 6월 민주항쟁을 중심으로 나라가 한창 떠들썩했다. 대학교 내에 잠입하는 가짜 학생도 있었다. '강선태'도 가짜 학생이었지만 여타의 그런 목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고 '혁명적' 운동을 주도했다. 그런데 십수년 뒤 그는 바닷가 유흥주점의 대표가 되어있었다. 소설의 화자는 교수가 되고자 하는 시간제 강사인데, 뒷돈을 발라서 교수가 되는 자들을 그는 바퀴벌레에 비유하며 "어둡고 퀴퀴한 곳에서 정의로운 밥그릇 위에 구역질 나는 유충을 슬어 놓는 놈들은 박살내야 한다"며 분노한다. 마찬가지로 그는 결국 뒷돈을 부친다. 결심을 한 뒤의 그는 시원하고 상쾌하며 힘차보였다.
화자는 학생들에게 대강 이렇게 강의해왔다.
"문학의 비평은 전향과 직결된다. 전향은 두 가지로 나뉜다. 권력이나 이권에 의해 강제된 사상의 변화 또는 자기 성장에 의한 자발적 사상 굴절. 후자가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전향자의 대부분은 사상을 관념적으로만 가지고 있다가 세상물정이라는 견고한 현실에 부딪혀 산산히 분해됐다. 전향자, 즉 지식인의 대부분은 소시민에 불과하며 투사는 아니고 혁명가는 더욱 아니었다."
강선태는 사람들에게 풍부한 인간성과 순수한 영혼을 가진 자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는 여자들을 임신시킨 뒤 나몰라라 하고 친구의 여자까지 건드리는 위인이었다. 그는 단지 가짜 학생이라는 신분 뒤에 숨어 술과 여자, 젊음, 혁명 등에 취한 것뿐이었다. 화자 또한 '정의'를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다가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에 그것을 허겁지겁 놓아버리고는 후련함을 느꼈다.
김소진은 이렇게 지식인들의 이권주의적 행태와 소시민들의 이기적인 면모를 그의 작품들 속에서 계속 비판했다. 그런데 나는 강선태와 주인공을 비난할 수는 없다. 저것이 내 모습이 아니라는 보장을 절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렇게 세계와 나의 모습을 핀으로 딱 고정시켜 놓아 직시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돼보자.
그렇게 한번쯤 자신의 영혼을 걸고 악마와 도박을 해보지 않은 청춘이란
잿빛 그 자체이며 무의미하다."
참 멋있는 말인데, 울프강 강선태의 결말을 알고 나니 전혀 와닿지가 않는다.
그의 문체 또한 눈에 들어왔다. 잔뜩 힘주고 딱딱한 글이 아니라, 들어보지 못 한 우리말들과 속어들로 투박하기까지 했다. 고전이나 비문학을 주로 읽던 나에게는 신선했다. 찾아보니 작가 김소진은 작품을 쓸 때 생생한 생활어와 사어화 되는 겨레말들을 활용하고 살려내고자 노력했다 한다. 비문투성이 문장, 개념어 남발로 딱딱하게 굳은 글, 모호하게 얼버무리는 감상투와 번역투를 경계하고 개탄했다는데 확실히 술술 읽히는 면이 있었다.
이상문학상의 후계자구나 대다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