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한 번에 이어서 쓰려고 한 글이지만, 내용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부득이하게 2부로 나눠 연재하고자 한다.)
서론
이 해묵은 논쟁을 되짚어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지금 『제국의 위안부』를 상기시키는 것은 막차가 떠난 뒤에 막차를 타려는 무기력한 시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태를 보다 차분하게 인식하게 된 시점에서 그것을 되돌아보고, 『제국의 위안부』와 그를 둘러싼 사건들이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해보겠다는목적은 있지만, 그것에 어떤 시의적절한 의미가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국의 위안부』 이후로도 민족주의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정치적 지형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초교육에서의 역사관은 여전히 순수하게 민족주의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으며, 그에 저항하기 위한 학계와 활동가들의 노력은 현실적인 영향력을 갖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금도 위안부 문제에 탈민족주의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만으로 친일파나 뉴라이트의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 당시 사회의 분위기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트위터에 올린 발언들 또한 한국의 현실정치에서 민족주의가 갖는 영향력을 실감하게 한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계기 또한 그런 현실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대한민국 민족주의라는 맥락을 다루는데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자 한다. '서론'에서는 『제국의 위안부』가 말하는 바를 짧게 다루고, 그 재판에 대한 내 생각을 썼다. '정치적 회색지대로서의 민족주의'는 한국 정치사에서 민족주의가 갖는 의미와 『제국의 위안부』가 점유하는 양면적인 위치를 말한다. '민족주의와 통치'에서는 한국 현실정치와 통치에서 어떻게 민족주의가 핵심으로 기능하며, 『제국의 위안부』 사건이 그런 맥락 위에서 이해될 수 있는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도덕화와 문화자본화'에서는 민족주의가 도덕화되고 문화자본화되는 과정을 다룬다.
먼저 박유하 교수의 입장을 러프하게나마 살펴보자. 흔한 오해와는 달리 『제국의 위안부』는 그 자체로 그렇게까지 논쟁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것이 시도하는 작업은 위안부 문제를 종래의 두 시각, 즉 '매춘부'이거나 '강제연행된 희생자들'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서 분석하는 것이다. 박유하 교수는 전형적인 탈식민주의의 언어로 그러한 이중 재현을비판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들의 주체화 양식으로, 제국의 구조가 어떻게 위안부들 스스로 통치의 일부가 되도록 하고 국가주의적 주체로 훈육하는지를 해명한다. 따라서 그는 '돈을 많이 벌어서 고향으로 돌아간 매춘부들'이라는 이미지와 '군홧발에 짓밟힌 한민족의 딸들'이라는 이미지 양자를 거부한다. 위안부는 제국주의의 구조에 의한 피해자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시스템을 지탱하는 체계의 일부이기도 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단순화된 요약이기는 하지만, 박유하 교수의 논조가 일본의 책임을 면제하는데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그는일본군의 조선인 위안부가 민족적•젠더적•계급적 측면의 총체적 차별 아래에 있었음을 명시하고 있다. 민족적인 측면에서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인 위안부보다 취약한 처지에 놓여 있었고, 젠더적인 측면에서 그들은 준-군인이면서도 여성이었기 때문에 군인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그리고 제국주의 하에서의 착취적인 구조는 여성들의 위안부화를 가속했다. (여전히 그 배후의 의도에 대해서는 의심을 제기할 수 있겠으나) 누구도 이런 입장이 제국주의 옹호적이라고 말하지는 못할것이다. 그는 다만 한국에서 위안부가 재현되는 양식이 전적으로 민족주의적인 기획에 매몰되어 있음을 지적할 뿐이다.
'나눔의 집'에 의해 고소가 진행되고, 『제국의 위안부』가 법의 심판대 위에 서며 논란이 점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박유하교수 본인 또한 분별력을 잃어버린 발언을 여러 차례 했고, 그의 반대파 또한 부적절한 모습을 보여주며 사건은 씁쓸하게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경과가 어떻든 『제국의 위안부』 재판은 한 편의 소극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위안부 또한 애국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나 '위안부는 일종의 동지적 관계에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연애 또한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 등은 그 방법과 적용의 측면에서 경솔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방법의 문제는 학술장에서의 논쟁을 통해 해결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지, 사법기관의 판결을 통해 정죄될 수 있는 사안은아니다. 학문적 탐구의 영역에 사법기관이 관여하는 것은 합리화 이후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시대착오적인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박유하 교수 본인의 입장을 인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삭제판의 모습은, 실은 체제와 국가에 반하는 사상은 검열하여 출간하던 일제강점기의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식민지 체험과 그 체험이 만든 갈등에 대해 고찰하고자 했던 이 책은 뜻밖에도 우리가 여전히 식민지 시대의 ‘잔재’를살고 있음을 드러내게 된, 지극히 아이러니한 책이 되고 말았다.'
정치적 회색지대로서의 민족주의
그렇다면 한국의 현실정치에서 민족주의는 어떤 지위를 갖고 있으며, 그것이 어째서 『제국의 위안부』 재판과 후속적인논란으로 이어졌는가? 그에 대해 조야하나마 답변을 해보자면, 결국 한국 정치사에서 민족주의가 속해 있는 미묘한 맥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정치에서 자명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지만, 특히 민족주의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하다고 해야 한다. 한국 정치사에서 민족주의의 언어는 진보정치와 보수주의 양 측에 의해 주된 수사로 사용되어 왔으며,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있는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현대의 문화산업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를테면 <국제시장>이나 <명량> 같은영화가 주는 일종의 '감동'은 이승만 정부에서 박정희 정부로 이어지는 보수적 민족주의라는 맥락 위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는 그런 단순화된 설명이 통용되기 어려운데, 그것은 국가적 통치를 위한 장치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민중민족주의 담론의 영향 아래에서 제작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이데올로기적 통치수단으로 기능했으면서 동시에 해방과 연대의 담론으로 기능하기도 했는데, 이것 자체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다. 사실 민족주의는 그 자체로 두루뭉술한 이념이며, 따라서 한국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나 진보정치와 보수주의 양 측에 의해 활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사에서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파 민족주의에서 민중민족주의로 이어지는 변화의 계보일 것이다. 한국에서의 민중민족주의는 군사정권이 짜놓은본원주의의 인식틀을 전유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를테면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문 중 일부를 살펴보자.
'...이같이 도도히 흐르는 국제조류의 격랑을 헤치고, 조국의 근대화 과업을 성취하는 한편, 민족의 지상 명제인 국토통일의 위업을 기어코 완수해 보자는 우리로서는 국제사회의 동향과 추세에 대하여 시야를 보다 더 넓혀야 하겠고, 정세를 판단하는 데 보다 민감해야 하겠고, 또 국제경쟁에 나서서 남과 겨루기에 보다 더 현명해야 할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수수 끌어 온 한ㆍ일 국교정상화 문제에 대하여 기어코 매듭을 지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민족주의적 수사는 이후 80년대 민족해방계열 운동권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반복된다. 1985년 연세대학교 반외세 민족수호투쟁위원회에서 발표된 호소문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현 정권은 정권유지를 위해 미국의 수입개방 요구를 받아들이고 미국의 지지를 받아 일당 장기집권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방미를 바라볼 수 있으며 이는 현 정권이 철저하게 미국에 예속되어 있으며 정권유지를 위해서라면 국민의 고통은 생각지 않는 파렴치한 반 민족정권임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국민은 외세로부터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고 오천 년 역사의 민족정기를 되찾기 위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 실천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전자는 군사정권에 의해서, 후자는 학생운동권에 의해서 발표된 내용이지만 그 논리적•수사적 구조에 있어서는 거의 상동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자 모두는 거대한 외부세계의 적('국제조류의 격랑'/'미국')에 대항하여 우리 민족의 업('국토통일의 위업'/'오천 년 역사의 민족정기 회복')을 성취하기 위해 단결해야만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운동권의민중민족주의는 군사정권의 민족주의에 대해 그 내용뿐만 아니라 수사적 용법에서 역시 크게 빚지고 있다.
나는 민족주의의 이념이 군사정권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는 이미 오래 전에 한반도에 수입되어 왔으며, 일본 제국이나 이승만 정부의 주된 통치 도구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승만 정부가 내세운 '국가재건'의이념은 분명하게 민족주의적인 코드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학생운동권이 군사정권의 민족주의라는 인식틀에서 벗어나 있을 수 없었다는 사실뿐이다. 민족해방계열의 학생운동권은 군사정권에 의해 정립된 민족주의 담론을 전유하는 입장에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형성된 의식구조에 얽매여 있기도 했다. 현재 그들의 후신이 되는 집단은 여전히 그러한 인식틀에 갇혀 있는데, 반대로 민족주의를 자연스럽게 동원의 수단으로 사용해온 보수정치가 '민족주의'라는 용어 그 자체에 반감을 표하게 된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87년 체제 이후로 좌파와 우파 진영 각각에서 민족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좌파 진영 내부에서는해방의 이념이지만 동시의 통치의 수단이기도 한 민족주의를 극복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우파 진영은 학생운동권이 전유하고 장악하게 된 민족주의 담론에 균열을 낼 필요성을 느꼈다. '식민지 근대화', '식민지 근대성'의 개념이 본격적으로대두되기 시작했고,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정의하는 앤더슨의 구성주의 담론이 일반화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영훈 교수로 대표되는 뉴라이트 계열과 박유하 교수를 비롯한 탈민족주의 진영 사이에 세세한 입장 차이가 있었음은 말할것도 없다.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아무래도 우파 진영보다는 좌파 진영에서 민족주의를 동원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2002년의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그것이 정치적 동원인지 시민적 민족주의 운동인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민중민족주의가 대중적으로 표출된 하나의 전형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표면적인 변화일 뿐, 여전히 민족주의는 양 측 모두에 의해 주요한 정치적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탈민족주의의 흐름은 아직도 미약하고 한국의 현실정치에서 민족주의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을 낳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위안부 문제이다. 왜냐하면 위안부 문제에 있어 우파 민족주의자들은 원죄를 진 입장에 서 있고, 좌파들은 상대적으로 손쉽게 그것을 비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파 민족주의의 원죄는 한일협상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박탈했다는 것이고, 한국 보수주의의 탈민족주의적 경향 역시 이와무관하지 않다. 더군다나 위안부는 정치적 공격의 수단으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소재이기도 하다.
'일제의 총칼에 유린당한 한민족의 대지'라는 이미지가 일제시대에 대한 일종의 본원적 이미지라 할 때 -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그런 이미지의 절정이다 - 위안부는 본원주의의 원형에 정확히 부합하는 존재로 강력한 상징성을 지녔다 해야만 한다. 회색지대가 되어버린 한국 정치에서 '위안부 문제'가 가장 대표적인 피아식별의수단이 되어버린것도 이상하지 않다.
위안부 문제를 통한 피아식별은 '한국 보수의 역사는 친일의 역사'라는 진보정치의 도식(그렇다고 이런 도식에 나름대로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 친일이라는 낙인을 찍어야만 하는가의 문제와 별개로, 한국 보수정치의 틀을짠 인물들이 일제 치하의 수혜자들이라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과 맞물려 떨어지면서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이영훈 교수를 비롯한 뉴라이트 진영이 '위안부는 매춘부에 불과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보수정치의 원죄를 극복하려 하고, 학생운동권이 그에 대해 경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준 것에는 이런 배경이 놓여 있다.
『제국의 위안부』 재판 당시에도 진보진영의 입장은 분열되어 있었다. 많은 진보계열의 활동가들과 학자들이 박유하를옹호했지만, 한편으로는 박노자 교수가 예외적으로 민족주의적인 논평을 내놓은 것처럼 그를 비판하는 입장 역시 적지않았다. 보수진영이나 일본의 극우 세력 또한 박유하 교수의 주장을 인용하기도 하는 등 사건은 민족주의가 회색지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이 사건에서 주류 정치권과 학생운동 세력은 사실상 공모자의 관계에 있었다고 봐야만 한다. 그러나 민족주의를 둘러싼이런 공모는 실은 드문 것이 아니다. 회색지대일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현주소로 인해, 진보정치와 보수주의는 그것을 비판하는 측에서든 옹호하는 측에서든 서로 공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민족주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가 더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분석될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족주의와 같은 대표적인 문제에서도 각각의 정치집단은 분열되어 있으며, 그것을 일원화하려는 시도는 현명하지 못한 접근이 될 것이다.
서론
이 해묵은 논쟁을 되짚어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지금 『제국의 위안부』를 상기시키는 것은 막차가 떠난 뒤에 막차를 타려는 무기력한 시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태를 보다 차분하게 인식하게 된 시점에서 그것을 되돌아보고, 『제국의 위안부』와 그를 둘러싼 사건들이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해보겠다는목적은 있지만, 그것에 어떤 시의적절한 의미가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국의 위안부』 이후로도 민족주의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정치적 지형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초교육에서의 역사관은 여전히 순수하게 민족주의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으며, 그에 저항하기 위한 학계와 활동가들의 노력은 현실적인 영향력을 갖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금도 위안부 문제에 탈민족주의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만으로 친일파나 뉴라이트의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 당시 사회의 분위기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트위터에 올린 발언들 또한 한국의 현실정치에서 민족주의가 갖는 영향력을 실감하게 한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계기 또한 그런 현실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대한민국 민족주의라는 맥락을 다루는데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자 한다. '서론'에서는 『제국의 위안부』가 말하는 바를 짧게 다루고, 그 재판에 대한 내 생각을 썼다. '정치적 회색지대로서의 민족주의'는 한국 정치사에서 민족주의가 갖는 의미와 『제국의 위안부』가 점유하는 양면적인 위치를 말한다. '민족주의와 통치'에서는 한국 현실정치와 통치에서 어떻게 민족주의가 핵심으로 기능하며, 『제국의 위안부』 사건이 그런 맥락 위에서 이해될 수 있는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도덕화와 문화자본화'에서는 민족주의가 도덕화되고 문화자본화되는 과정을 다룬다.
먼저 박유하 교수의 입장을 러프하게나마 살펴보자. 흔한 오해와는 달리 『제국의 위안부』는 그 자체로 그렇게까지 논쟁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것이 시도하는 작업은 위안부 문제를 종래의 두 시각, 즉 '매춘부'이거나 '강제연행된 희생자들'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서 분석하는 것이다. 박유하 교수는 전형적인 탈식민주의의 언어로 그러한 이중 재현을비판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들의 주체화 양식으로, 제국의 구조가 어떻게 위안부들 스스로 통치의 일부가 되도록 하고 국가주의적 주체로 훈육하는지를 해명한다. 따라서 그는 '돈을 많이 벌어서 고향으로 돌아간 매춘부들'이라는 이미지와 '군홧발에 짓밟힌 한민족의 딸들'이라는 이미지 양자를 거부한다. 위안부는 제국주의의 구조에 의한 피해자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시스템을 지탱하는 체계의 일부이기도 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단순화된 요약이기는 하지만, 박유하 교수의 논조가 일본의 책임을 면제하는데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그는일본군의 조선인 위안부가 민족적•젠더적•계급적 측면의 총체적 차별 아래에 있었음을 명시하고 있다. 민족적인 측면에서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인 위안부보다 취약한 처지에 놓여 있었고, 젠더적인 측면에서 그들은 준-군인이면서도 여성이었기 때문에 군인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그리고 제국주의 하에서의 착취적인 구조는 여성들의 위안부화를 가속했다. (여전히 그 배후의 의도에 대해서는 의심을 제기할 수 있겠으나) 누구도 이런 입장이 제국주의 옹호적이라고 말하지는 못할것이다. 그는 다만 한국에서 위안부가 재현되는 양식이 전적으로 민족주의적인 기획에 매몰되어 있음을 지적할 뿐이다.
'나눔의 집'에 의해 고소가 진행되고, 『제국의 위안부』가 법의 심판대 위에 서며 논란이 점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박유하교수 본인 또한 분별력을 잃어버린 발언을 여러 차례 했고, 그의 반대파 또한 부적절한 모습을 보여주며 사건은 씁쓸하게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경과가 어떻든 『제국의 위안부』 재판은 한 편의 소극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위안부 또한 애국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나 '위안부는 일종의 동지적 관계에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연애 또한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 등은 그 방법과 적용의 측면에서 경솔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방법의 문제는 학술장에서의 논쟁을 통해 해결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지, 사법기관의 판결을 통해 정죄될 수 있는 사안은아니다. 학문적 탐구의 영역에 사법기관이 관여하는 것은 합리화 이후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시대착오적인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박유하 교수 본인의 입장을 인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삭제판의 모습은, 실은 체제와 국가에 반하는 사상은 검열하여 출간하던 일제강점기의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식민지 체험과 그 체험이 만든 갈등에 대해 고찰하고자 했던 이 책은 뜻밖에도 우리가 여전히 식민지 시대의 ‘잔재’를살고 있음을 드러내게 된, 지극히 아이러니한 책이 되고 말았다.'
정치적 회색지대로서의 민족주의
그렇다면 한국의 현실정치에서 민족주의는 어떤 지위를 갖고 있으며, 그것이 어째서 『제국의 위안부』 재판과 후속적인논란으로 이어졌는가? 그에 대해 조야하나마 답변을 해보자면, 결국 한국 정치사에서 민족주의가 속해 있는 미묘한 맥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정치에서 자명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지만, 특히 민족주의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하다고 해야 한다. 한국 정치사에서 민족주의의 언어는 진보정치와 보수주의 양 측에 의해 주된 수사로 사용되어 왔으며,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있는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현대의 문화산업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를테면 <국제시장>이나 <명량> 같은영화가 주는 일종의 '감동'은 이승만 정부에서 박정희 정부로 이어지는 보수적 민족주의라는 맥락 위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는 그런 단순화된 설명이 통용되기 어려운데, 그것은 국가적 통치를 위한 장치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민중민족주의 담론의 영향 아래에서 제작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이데올로기적 통치수단으로 기능했으면서 동시에 해방과 연대의 담론으로 기능하기도 했는데, 이것 자체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다. 사실 민족주의는 그 자체로 두루뭉술한 이념이며, 따라서 한국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나 진보정치와 보수주의 양 측에 의해 활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사에서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파 민족주의에서 민중민족주의로 이어지는 변화의 계보일 것이다. 한국에서의 민중민족주의는 군사정권이 짜놓은본원주의의 인식틀을 전유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를테면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문 중 일부를 살펴보자.
'...이같이 도도히 흐르는 국제조류의 격랑을 헤치고, 조국의 근대화 과업을 성취하는 한편, 민족의 지상 명제인 국토통일의 위업을 기어코 완수해 보자는 우리로서는 국제사회의 동향과 추세에 대하여 시야를 보다 더 넓혀야 하겠고, 정세를 판단하는 데 보다 민감해야 하겠고, 또 국제경쟁에 나서서 남과 겨루기에 보다 더 현명해야 할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수수 끌어 온 한ㆍ일 국교정상화 문제에 대하여 기어코 매듭을 지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민족주의적 수사는 이후 80년대 민족해방계열 운동권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반복된다. 1985년 연세대학교 반외세 민족수호투쟁위원회에서 발표된 호소문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현 정권은 정권유지를 위해 미국의 수입개방 요구를 받아들이고 미국의 지지를 받아 일당 장기집권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방미를 바라볼 수 있으며 이는 현 정권이 철저하게 미국에 예속되어 있으며 정권유지를 위해서라면 국민의 고통은 생각지 않는 파렴치한 반 민족정권임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국민은 외세로부터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고 오천 년 역사의 민족정기를 되찾기 위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 실천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전자는 군사정권에 의해서, 후자는 학생운동권에 의해서 발표된 내용이지만 그 논리적•수사적 구조에 있어서는 거의 상동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자 모두는 거대한 외부세계의 적('국제조류의 격랑'/'미국')에 대항하여 우리 민족의 업('국토통일의 위업'/'오천 년 역사의 민족정기 회복')을 성취하기 위해 단결해야만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운동권의민중민족주의는 군사정권의 민족주의에 대해 그 내용뿐만 아니라 수사적 용법에서 역시 크게 빚지고 있다.
나는 민족주의의 이념이 군사정권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는 이미 오래 전에 한반도에 수입되어 왔으며, 일본 제국이나 이승만 정부의 주된 통치 도구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승만 정부가 내세운 '국가재건'의이념은 분명하게 민족주의적인 코드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학생운동권이 군사정권의 민족주의라는 인식틀에서 벗어나 있을 수 없었다는 사실뿐이다. 민족해방계열의 학생운동권은 군사정권에 의해 정립된 민족주의 담론을 전유하는 입장에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형성된 의식구조에 얽매여 있기도 했다. 현재 그들의 후신이 되는 집단은 여전히 그러한 인식틀에 갇혀 있는데, 반대로 민족주의를 자연스럽게 동원의 수단으로 사용해온 보수정치가 '민족주의'라는 용어 그 자체에 반감을 표하게 된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87년 체제 이후로 좌파와 우파 진영 각각에서 민족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좌파 진영 내부에서는해방의 이념이지만 동시의 통치의 수단이기도 한 민족주의를 극복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우파 진영은 학생운동권이 전유하고 장악하게 된 민족주의 담론에 균열을 낼 필요성을 느꼈다. '식민지 근대화', '식민지 근대성'의 개념이 본격적으로대두되기 시작했고,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정의하는 앤더슨의 구성주의 담론이 일반화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영훈 교수로 대표되는 뉴라이트 계열과 박유하 교수를 비롯한 탈민족주의 진영 사이에 세세한 입장 차이가 있었음은 말할것도 없다.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아무래도 우파 진영보다는 좌파 진영에서 민족주의를 동원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2002년의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그것이 정치적 동원인지 시민적 민족주의 운동인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민중민족주의가 대중적으로 표출된 하나의 전형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표면적인 변화일 뿐, 여전히 민족주의는 양 측 모두에 의해 주요한 정치적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탈민족주의의 흐름은 아직도 미약하고 한국의 현실정치에서 민족주의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을 낳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위안부 문제이다. 왜냐하면 위안부 문제에 있어 우파 민족주의자들은 원죄를 진 입장에 서 있고, 좌파들은 상대적으로 손쉽게 그것을 비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파 민족주의의 원죄는 한일협상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박탈했다는 것이고, 한국 보수주의의 탈민족주의적 경향 역시 이와무관하지 않다. 더군다나 위안부는 정치적 공격의 수단으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소재이기도 하다.
'일제의 총칼에 유린당한 한민족의 대지'라는 이미지가 일제시대에 대한 일종의 본원적 이미지라 할 때 -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그런 이미지의 절정이다 - 위안부는 본원주의의 원형에 정확히 부합하는 존재로 강력한 상징성을 지녔다 해야만 한다. 회색지대가 되어버린 한국 정치에서 '위안부 문제'가 가장 대표적인 피아식별의수단이 되어버린것도 이상하지 않다.
위안부 문제를 통한 피아식별은 '한국 보수의 역사는 친일의 역사'라는 진보정치의 도식(그렇다고 이런 도식에 나름대로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 친일이라는 낙인을 찍어야만 하는가의 문제와 별개로, 한국 보수정치의 틀을짠 인물들이 일제 치하의 수혜자들이라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과 맞물려 떨어지면서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이영훈 교수를 비롯한 뉴라이트 진영이 '위안부는 매춘부에 불과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보수정치의 원죄를 극복하려 하고, 학생운동권이 그에 대해 경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준 것에는 이런 배경이 놓여 있다.
『제국의 위안부』 재판 당시에도 진보진영의 입장은 분열되어 있었다. 많은 진보계열의 활동가들과 학자들이 박유하를옹호했지만, 한편으로는 박노자 교수가 예외적으로 민족주의적인 논평을 내놓은 것처럼 그를 비판하는 입장 역시 적지않았다. 보수진영이나 일본의 극우 세력 또한 박유하 교수의 주장을 인용하기도 하는 등 사건은 민족주의가 회색지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이 사건에서 주류 정치권과 학생운동 세력은 사실상 공모자의 관계에 있었다고 봐야만 한다. 그러나 민족주의를 둘러싼이런 공모는 실은 드문 것이 아니다. 회색지대일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현주소로 인해, 진보정치와 보수주의는 그것을 비판하는 측에서든 옹호하는 측에서든 서로 공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민족주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가 더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분석될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족주의와 같은 대표적인 문제에서도 각각의 정치집단은 분열되어 있으며, 그것을 일원화하려는 시도는 현명하지 못한 접근이 될 것이다.
막차 떠난 승강장 넘 좋아하네, 무기력에 빠져드는 것도 자의식과잉이야~
아 저거 데리다가 쓴 표현인데 글 쓰다보니 무의식 중에 두 번 연속해서 썼네
저번에 한 번 쓴 거 까먹었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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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내가 머라 말하긴 애매하고 한 번 직접 읽어보는 게 나을듯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가 연출한 영화 '주전장'을 보면 이 문제는 일본 정부 VS 개인의 문제로 해결할 문제인데,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려하는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는 이게 꽤 그럴싸한 분석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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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걸 사법부가 어찌 해보는 건 웃긴 겆
만능은 아니지만 최선인 건 맞음
사실 박유하의 최고작은 도련님 번역인데 말이지.
혹시 근대를 다시 읽는다라는 책도 함 읽어보는게 어떻겠누 이건 탈근대 탈식민적에 대한 견해들과 근대에 대한 성찰관련한 책이라고 하던데 여러 사람들의 연구들이 있긴 하지만 ㅇㅇ
제국의 위.안부 성공의 대가는 너무나도 크다. 제국의 위안.부는 피해의 실태를 밝히기는 커녕, 오히려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진정한 기억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따위는 없다, 제국의 위안.부야말로 진정한 기억이다 이렇게 귓가에 속삭이며 위로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왜곡된 위안.부 이미지의 최대희생자는 실제로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 끌려갔던 피해자들이다. 그래서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재판을, 마음에 들지 않는 역사인식을 베격하는 한국의 반일 내셔널리즘이 초래한 언론탄압 사건으로 보는 입장에 가담할 수는 없다. -정영환 무엇을 위한화해인가-
본문은 학설을 모르는 인간이 파편적인 지식만 있으면 나오는 괴이한 논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