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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신의 화살 이미지 검색결과

아체베의 아프리카 3부작을 다 읽었다. 세 번째 책은 두 번째 책을 읽고 예상한 것처럼 오콩코 일가로부터 이어지는 글은 아니었다. 시대는 대략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와 <더 이상 평안은 없다>의 사이 정도 되는 시기.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등장인물 중 한 명이 <모든>의 종지부에 나온 판사의 저서("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평정"-재밌는 건 이를 읽은 백인의 평이 "자기만족에 빠진 거 같"고 "지나칠 정도로 독단적인 것" 같다는 것)를 읽는 장면으로 알 수 있다. 비록 부족은 다르지만, 아무튼 <신의 화살>까지 포함해 이 세 책이 전부 이보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또 공통점은, 어쨌든 셋 모두 서구의 문화와의 충돌 과정에서 서로 다른 대처를 한 인물들이 몰락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엄밀하게 이 생각을 표현하면 <더>는 제하는 게 더 수월할 것이다. 이를 뺀 두 글을 보면 각각의 주인공의 서로 다른 태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오콩코와 에제울루는 둘 다 기존 생활관에서 힘 있는 이였지만, 오콩코는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다가 몰락하고, 에제울루는 전통과 서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하다 양쪽으로부터 소외당했다. 그렇기에 오콩코의 몰락은 사람들 모두의 비극이 되지만, 에제울루의 몰락은 개인적인 비극으로 끝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글의 마지막을 대조할 때 드러난다. <모든>은 이 몰락이 어떻게 식민주의자들에게 짧막한 소일거리로 전락하는지를 드러내며 끝나지만, <신의>는 이 몰락이 어떻게 이보족의 전통적 지혜를 입증해주었는지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개인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부족민들보다 훌륭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부족민의 의견에 반하는 결정을 절대로 얻어 낼 수 없다는 조상들의 지혜를 확인시켜 주었다." (p.399)



작가의 머릿말에서도 이와 엮어서 생각했을 때 묘한 말이 나오는데, "에제울루는 목숨이 붙어 있었다면 자기 민족의 변절을 자신의 고통으로 성화하고 그런 고통을 하나의 통과의례로 끌어올렸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신의 운명이 희생자라는 고매한 역사적 운명과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을 용서해 주었을 것이다." (p.10) 그 고통과 운명. 제목 <신의 화살>이 이를 함축하고 있다. 어떻게 함축하고 있는지는 책의 후반부에서야 드러나는데, 에제울루가 고통스러운 옥살이를 끝내고 돌아온 후 어떻게 복수해야 할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가려낼지 고민하고 있자니 귓가에 울루 신이 속삭인다. "누가 너한테 이게 너의 개인적인 싸움이라고 말했느냐?" (p.335) 그리고 그는 "신의 활시위에 걸려 있는 화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에제울루와 울루 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교회에 가 기독교의 신에게 대신 제물을 바친다.



아마도 이 부분이 <모든>과 <신의>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식민지배를 당한 부족이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보여주는 반면, 후자는 비록 억압을 당하면서도 그 문화와의 접촉으로 사람들이 기존의 문화를 뿌리로 가진 채 어떻게 반응하고 변화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다만 이런 요약은 이 글의 가치를 과하게 축약하는 느낌이 강하긴 하다. 이 글은 소설로서의 가치보다도 이 이보족들의 생활상과 말하는 방식 등의 문화를 모아놓고 보여주는 데에서의 가치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전에 <모든>의 감상문을 쓸 때도 했던 말이지만, <신의> 역시 어딘가의 하나의 삶을 보여주는 느낌보다는 마치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가 크다. 옛날 한국 판타지 소설 중 <하얀 로냐프 강>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고유한 이름과 묘한 관용어구들은 읽는 사람에게 혼란과 이질감을 주는데, 사실 판타지에서 그 이질감은 장점이 되면 됐지 단점이 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체베 본인은 이 글을 판타지로서 읽는 것에 반대할 것이다. <신의>는 1920년대 간접통치를 받으며 전통적 종교를 버리게 된 부족들의 이야기에 대한 리얼리즘이니 말이다. 나도 이런 독법을 딱히 권장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삼부작-정확하게 말하면 다시 또 두 번째 글은 빼야겠지만-을 읽으며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걸 굳이 숨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P.S. 그러고 보면 이번 글의 제목은 딱히 어느 글로부터 인용을 해온 제목이 아닌 것 같다. 여기에도 뭔가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