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미술이나 미술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내가 또래보다 미술에 흥미를 가졌던 이유는 미술 교사이신 어머니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우연히 집의 책장을 봤더니 어머니가 대학생이셨을 때 보신 1994년 출판작이 있었고 이를 꺼내 읽었다. 그러나 책에 대해 찾아보다 최근에 개정된 버전은 삽화도 컬러고 그 크기 또한 크다는 것을 알아 도서관에서 다시 빌려왔다.
책의 특성상 시대의 흐름을 아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단원별로 정리하였고 되도록 책에 나오는 작품을 삽입할려고 했으나 하나하나 넣다가 포기했다.. 추후 삽화를 넣도록 하겠다..
1. 신비에 싸인 기원 (선사 및 원시 부족들:고대 아메리카)
기원전 10,000~15,000년전의 미술작품은 순수한 미를 감상하고 추구하기보다 주술적이고 생존적인 의미가 크다. <라스코동굴벽화>와 <알타미라동굴벽화>에서는 사냥에 성공할 것이라는 주술적 의미를 오스트리아에서 발견된 비너스상은 생산과 종족번식에 대한 주술적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그 이외 다양한 신화의 인물상과 토템을 장식적인 방법으로 표현했으나 장식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추측일 뿐, 지금 남아있는 것들로는 미술의 기원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2. 영원을 위한 미술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크레타)
피라미드와 미이라를 통해 당시의 내세관과 지배자들의 힘을 알 수 있다. 이집트 미술의 특징은 기하학적 규칙성, 자연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선사시대 미술의 목적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것들은 모두 권력자를 ‘영원히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 완전함과 규칙성을 추구했다. 모든 사물은 특징적인 각도에서만 묘사되었고 미술가들에겐 자신의 개성, 선대작품의 재해석 보다 선대작품을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 수 있느냐가 거장의 척도가 되었다. 이것이 수천 년간 이집트 미술이 유지되었던 이유가 될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미술은 이집트에 비해 잘 유지되지 못했다.
환경적으론 잦은 범람과 외세의 침략이 이유고 사상적으론 내세관에 비해 현세적인 미술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용맹함과 영광을 보여주는 <요새를 공격하는 아시리아 군대>와 같은 작품이 탄생했다.
3. 위대한 각성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까지:그리스)
초기 그리스 미술도 멀리는 선사시대를 가까이로는 이집트의 미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의 미술품은 조잡하고 원시적이었다. 토기들은 단순한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되어있고, 어떤 것을 묘사할 때도 엄격한 규칙들이 적용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부터 아테네에서 새로운 흐름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미술가들은 ‘선대의 방식’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방식’을 알고자 했다. 조각상에게 표정을 넣고 컨트라 포스트 자세를 취하게 하고 조각상이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자연스러운 근육과 옷주름을 이용해서 표현했다. 조각상뿐만 아니라 그림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나왔지만 가장 위대한 발견은 원근법에 의한 단축법이다. 이집트 미술에서 내려온 특징적인 각도에서만 바라보던 시선을 벗어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미술이 지금까지도 찬양을 받는 이유는 규칙을 준수하지만 그 규칙의 테두리 안에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예시로 미론의 <원반을 던지는 사람>은 몸통은 앞모습으로, 팔과 다리는 옆모습으로 표현하고 각 신체의 특징적인 면을 활용해 마치 이집트 벽화와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전혀 딱딱해 보이지 않는다. 그가 운동감을 정복하여 ‘선대의 방식’과 ‘자신의 방식’을 융합했기 때문이다.
4. 아름다움의 세계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 그리스와 그리스의 세계)
균형이 잡혀있고 살아있는 듯한 조각들은 육체를 표현하는데 완벽한 이상향이 되었고 주술적, 종교적 연관성은 거의 상실되는 시기이다.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강력한 제국이 건설되고 이때의 문화를 ‘헬레니즘 문화’라고 칭한다. 조각과 회화에서는 무표정하게 감정을 절제하거나 연극적 표현을 이용해 완벽 혹은 강렬한 인상을 추구했으며, 더욱 부드러워진 자태와 피부에서 오는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이 풍부한 옷주름으로 표현되어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이다. 이 시기는 건축적으로도 큰 변화가 생겼다.
기원전 5세기 파르테논 신전을 짓을 때 이용된 도리아 양식이 이오니아 양식, 코린트 양식 순으로 발전하며 더 화려해지고 장식적이게 되었다.
5. 세계의 정복자들 (기원후 1세기부터 4세기까지 : 로마, 불교, 유태교 및 기독교 미술)
로마시대가 되면서 기존의 헬레니즘 문화와 실용성이 조화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신보다 인간의 삶에 중심을 둔 실용적인 작품이 많아졌다. 지금의 로마를 떠올려보자 수천 년 전에 지은 건물들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을 알 것이다. 그들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토목 공학이다. 아마 수많은 건물 중 <콜로세움>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매우 독특하게도 1층은 도리아 양식의 변형, 2층은 이노니아 양식, 3층과 4층은 코린트 양식으로 지었다는 것이다. <콜로세움>을 다시 자세히 봐보자. 여기 가장 큰 특징인 아치가 있다. 아치는 다리나 수로에도 이용 되었고 이를 발전시켜 궁륭으로 된 천장을 만들 수 있었다. 이를 가장 경이롭게 이용한 것이 <판테온>이다.
로마 제국의 영토 크기가 얼마나 거대한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수많은 주변국들이 영향을 받았는데 이것이 당시 태동하던 종교들의 예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중고등학교 미술시간 열심히 들었다면 ‘간다라 미술’이라고 들어 봤을 것이다. <출가하는 고타마>와 <석가모니 두상>가 간다라 미술인데 이들은 모두 헬레니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유태교는 실용성에 영향을 받았다. 실제로 유태교의 율법은 우상 숭배를 경계하여 형상의 제작을 금지했다. 하지만 보다 효율적으로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바위에서 물을 솟아나게 하는 모세>를 그렸다. 그림을 보면 무언가 잘 그렸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림의 인물들이 실물과 비슷해질수록 그는 더 큰 죄를 범하는 것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기독교 예술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타오르는 불길 속의 세 사람>은 기독교가 박해 당하던 시절 지하 묘굴인 카타쿰의 벽에 그린 그림이다. 헬레니즘 시대의 화법은 드러나 있으나 그때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비슷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들 또한 신자들에게 효율적으로 하느님의 은총과 권능을 증명해주기 위해 그림을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6. 기로에 선 미술 (5세기에서 13세기까지:로마와 비잔티움)
미술사에 있어서 중세기가 암흑기로 표현되기도 하고, 이 시기의 미술은 종교의 시녀라고도 표현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교회를 국가의 지주로 삼게 되자 매장문화가 정착되어 무덤에 성경내용을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성경의 내용에 치중하느라 공간과 구성에 있어 미를 무시한 비논리적인 표현이 보인다. 초기 기독교인들에 의해 지하묘소인 카타콤의 천장과 벽에 그려진 그림에는 현세의 관심보다 구세주와 함께 하는 내세에 있었으며, 인간적인 미보다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구원을 표현하는데 더 큰 의미를 두었다.
모든 조각상이 우상으로 여겨져 금기 시 된 반면, 문맹자들의 교화를 위해 회화를 허용한 사실은 미술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 시기의 기독교 미술은 원시적인 방법과 세련된 방법이 기묘하게 혼합된 것이었다.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존재한다고 ‘알았던’ 것을 그렸고,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본’ 것을 그린 반면에, 중세의 미술가들은 그들이 ‘느낀 것’을 그림 속에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다.
7. 동방의 미술 (2세기에서 13세기까지 : 이슬람과 중국)
이슬람도 형상에 민감했다. 따라서 현실세계의 사물보다 선과 색채를 이용한 환상의 세계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것이 <페르시아 양탄자>의 문양과 <알함브라의 사자궁>의 아라베스크 같은 장식이 발달한 계기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미술은 명상의 실천을 위한 도구로써 <우산도>같은 운필의 수련을 보여준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세밀화와 다르게 <세 마리의 물고기>처럼 화면 전체에 배치 된 것이 아니라 곡선을 효과적으로 이용함도 알 수 있다. 중국의 미술은 자연에서 단순한 주제를 선정해 작품을 전개시키는 것은 대단하나 그 대상이 편협적으로 선정되어 과거의 작품에만 의지하고 예술가 자신의 영감은 배제되어 미술이 공식화되고 반복적이며 획일화되어가는 안타까운 면도 있었다.
2시간 동안 적었는데.. 적다가 내용, 그림을 다시 참고할려고 부분적으로 다시 읽는다고 시간이 더 걸린거 같네요.. 28단원까지 있던데... 망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dc official App
제목은 철학사 내용은 미술사네
철학사도 너무 읽고 싶은 나머지...(수정했습니다)
오마니가 본인이 가지고 있던 책 자식이 읽는다니 뿌뜻해 하시겠네 - dc App
읽다가 삽화때문에 개정판 빌려옴 ㅋㅋㅋㅋ
저는 아내가 미술전공이라 학부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책을 집어들었는데...단연코 제 인생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최고예요
오늘 갑자기 흐름타서 4 단원 읽고 중세 암흑기를 지나 이제 르네상스로 넘어가네요.. 진심으로 기대되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