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제목에 정직한 내용.





책의 내용을 말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 대체 계급/계층이란 무엇인가?

누군가는 말한다.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로 구분되는 일련의 집단들이다.

또 누군가는 말한다. 동일한 생활기회를 (보장하는 공통된 요소를)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다.

참으로 익숙하고 훌륭한 정의다.


한편, 계급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는 자연히 계급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한 고민을 불러왔다.

계급에 관심이 많았던 그들도 나름대로의 설명을 내놓는다.

16세기 이후(또는 17-18세기?)의 중상업과 기술 발달, 인클로저 운동이 노동계급을 만들어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프로테스탄티즘 윤리, 쉽게 말해 자신의 일에 노오력해도 된다는 미덕이 자본주의 사회(와 거기에 자연히 딸려올 계급들)를 만들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여튼 이 책이 나오기 전인 194-50년대에는 계급 형성에 대해 더욱 흥미로운 이론이 등장한다.

기능주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절인데, 사회학 입문에서 드는 간단한 예시를 끌어와본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왜 기우제를 할까? 기우제가 공동체의 결속을 유지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뭔가 이상하긴 하다. 하여간 어떤 사람들은 계급(계층)의 형성을 설명하는데 비슷한 논리를 적용해도 된다고 보았나 보다.

그들도 말했다. 계층이 형성되는 까닭은? 왜냐하면 계층에는 사회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기능'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파고들면 오늘날에도 심심찮게 써먹히는 논리이긴 하다만은, 당연하게도 대략 8쪽짜리의 이 논문은 발표된 이후에 많이도 뚜들겨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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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인 E.P 톰슨 또한 뚜들긴 양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다음 두 가지다.

역사적 맥락을 탈곡하고서는 계급 형성을 논할 수는 없으며,

계급 형성 과정에 있어서 당사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특히나 후자는 "사회, 경제적인 조건들이 변하게 되면,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계급이 출현"한다-즉,

계급의 출현은 그러한 조건들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논리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몇몇 마르크스주의자들도 실수를 범한 셈이다.


따라서 그는 책에서 계급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다른 이해집단과 구분되는 동일한 이해(계급의식?)을 갖는 집단.

그리고 영국의 노동계급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는지를 논한다.

즉,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는 같은 노동자"라는 의식을 갖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자코뱅주의부터 오웬주의자에 이르는 풍성한 정치적 논의들,

그 논의들을 퍼뜨리는 다양한 정치 단체와 언론들,

직조공, 편직물공 등 마스터 이하의 장인 집단,

시장경제에 이전에 존재했던 '사회적 경제'의 호혜적, 상호부조의 전통들,


등등이 한데 뒤엉키고, 충돌하고, 화해하면서 계급의식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다양한 사료들은 무척 흥미로운데,

엉망진창인 단어로 공장주를 협박하는 어느 노동자의 글이라던가(그리고 이를 충실히 번역함...),

노선의 차이로 서로를 비난하는 사회운동가들의 글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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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약간 두껍고 하고, 술술 읽히지도 않는다. 저자가 워낙 괄호를 좋아하는 데다가 몇몇 고유명사들의 번역이 익숙치 않은 탓이다.



계급에 대한 그의 관점을 제치더라도, 당대의 치열했던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책이다.

또한 오늘날과 당대의 대중들, 노동운동이 어떻게 다르고 비슷한지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러다이트 운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니.



17-18세기나 산업혁명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츄라이 츄라이 해보는게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