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번에 우나무노하고 셸리 케이건하고 스티븐 케이브의 책을 읽었는데 이 세명의 죽음관이 다르더라고
그래서 너희들은 누가더 너희맘에 드는지 댓글좀 달아주라
스티븐 케이브의 생각은 내가 글을 못써서 영상으로 대체함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kepti&no=3257&page=1
우나무노의 죽음관도 내가 예전에 쓴 글로 대체하겠음
1.우나무노는 내가 리뷰를 썼던 삶의 비극적 감정의 작가로써 스페인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작가인데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듣보잡인 인물이다
근데 내가 우나무노를 소개할때 이미 삶의 비극적 감정의 리뷰에서썼던 것을 어떤 부분에서 반복할지도 모른다.그러나 내가 여기서 소개하는것은 내가 그리뷰에서 다루지 못한 그의 철학적 면모에 관해서기도하니 그리 근심을 가질 필요는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그의 철학은 과연 무엇인가?흔히들 철학자에대한 소개를 하기위해서는 그의 철학의 중심주제애해서 알아야할것이다.
칸트 인식론의 중심주제가 감성과 오성인것처럼 이 우나무노 철학의 중심주제는 살과 뼈를 가진 실존하는 인간이다.
살과 뼈를 가졌다는것은 무엇일까?바로 이세상에서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실존하는 인간이다.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적 인간이나 루소의 사회계약의 인간이나 생물학적으로 분류된 호모 사피엔스가아닌 바로 이땅에서 실존적으로 살아가는 살과 뼈를 가진인간이다.
그러기에 우나무노 철학은 실존주의라고 할수있겠다.그렇다면 이 살과 뼈를 가진 인간은 과연 어떤 인간일까?
바로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화를내는 인간이다.말그대로 이 인간은 살아있는 숨을 쉬는 네발을 가진 실존적인 인간이 우나무노 철학의 근본인것이다.
근데 이 살과뼈를 가진 인간이 느끼는 인생의 부조리인 삶의 비극적 감정이 내가 전에 말했던 그책의 주제였던것이다.
삶의 비극적 감정이란 무엇인가?그것은 나의 삶이 원하는 불멸에대한 열망이 나의 이성에의해서 불가하다는것을 알게된다는 점에서 나오는 감정이다.
우리는 죽지않기를 원한다 불멸을 희망하는것이다.그러나 우리의 이성은 우리의 영혼 불멸이 불가능하다는걸 우리한테 설명한다.
그러나 이성이 우리한테 불멸이 불가하다고 말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삶은 우리한테 뭐라고 이성적으로 설명할수없는 희미한 희망을 우리한테 선사한다.
우리의 삶은 삶의 영속을 포기하지않고 계속 바란다 그러니까 우리의 정신은 우리의 영혼불멸을 소망하는것을 멈추지않는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은 우리한테 절망만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과 이성은 끝없는 전쟁상태로 돌입하는데 이것이 삶의 비극적 감정이다.우리는 과학을 이성을 포기할수없다.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삶 또한 우리의 불멸에대한 바람을 포기할수없다.그러기에 우리의 이 이성과 삶은 끝없는 투쟁을 반복할뿐이다.
우리의 삶은 그 십자가의 광기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것을 믿는 그 신앙을 소망한다.
하지만 우리의 이성은 그런 신앙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대로 이성은 우리한테 과학을 합리를 가르치려한다.이성은 그것들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것들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만족스럽게 자신의 영속을 쉽게 포기할려고하지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이 투쟁을 포기해야할까?어떤이는 우리의 삶이 이성한테 굴복해야한다고 말한다.이성이 삶보다 상위에있으니 삶이 원하는것을 이성이 줄수없다해도 이성이 삶을 지배해한다고 말이다.그러나 우리중에 오직 이성적인 이유나 방법을 통해 우리의 삶이 원하는 불멸의 열망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수있는가?
늘 이성을 삶보다 위에두었던 대철학자 러셀 경조차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고 말했으며 위대한 과학자인 베르너 폰 브라운조차도 그의 이성이 믿지않던 사후의 삶을 죽음과 직면하자 믿을려고 하게 말들정도로 우리의 삶이 원하는 그 갈망은 강하며 절실하며 이성한테 굴복할수없다.우나무노가 말한것처럼 지옥에서의 삶을 영원히 사라지는것보다 우리의 삶은 더원할것이다.
반대로 우리의 이성이 삶한테 굴복할수있을까?아니 우리의 이성도 삶한테 굴복할수없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위해서 이성적인 모든것을 버리고 살아갈수있을까?우리의 사후생에대한 의혹을 완전히 없에버릴수있을까?절대로 그럴수 없다.우리의 삶이 아무리 발악해도 우리의 이성은 늘 우리한테 끝없는 회의를 느끼게 만들며 우리가 갖고있는 소박한 신앙을 파괴할수있다.
그 베르너 폰 브라운조차도 자신이 약간이라도 죽음의 손길에서 멀어질때마다 사후생따위는 없다는 자신의 신념을 꺼릴것없이 주장했다.그런것처럼 우리의 이 두 열망인
이성과 삶은 서로를 만족시킬수없는 비극적인 전쟁상테에 처해있는것이다.이것이 바로 삶의 비극적 감정이다.아무런 감정적 동요도없이 사후생을 부정한 이성주의자도있었을것이며 아무런 망설임없이 사후생을 긍정한 신앙인도있었을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우나무노는 두부류에 전부다 행당되지않는 우리와같은 평범한 인간으로써 의심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신앙하는 우리와 똑같이 삶의 비극적 감정때문에 고통을 받는 불쌍한 존재이다.어떨때는 지옥에가서라도 삶을 영위하고 싶어하며 어떨때는 지금 이인생을 끝내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리는 나약하고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인것이다.
우나무노는 이 비극적인 이 투쟁을 어느쪽의 승리로 끝낼생각이 전혀 없으니 그가 선택한것은 이 비극적인 투쟁을 끝없이 치루면서 인간으로써 끝없이 투쟁을 영위하는 삶을 선택했다.이 비극적인 싸움터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이성의 승리로 끝날 이전쟁을 비극으로 끝낼생각이없는 이 우나무노는 이 희망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삶의 편에서 이성을 굴복시키지 않으면서 이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어서 그들 그누구도 승리할수없으면서도 희망이없는 이싸웅을 계속 치룰것을 맹세한다.
그렇다 바로 우리의 삶의 편에 설것을 맹세한것이다.비록 이싸움이 이성의 완전한 승리로 끝날 비극적인 싸움터라도 우리의 우나무노는 이싸움을 죽을때까지 포기하지않고 계속 우리의 삶을 위해 우리의 불멸을 위해 싸울것임을 그는 맹세한것이다.
이것이 그가 이성을 포기했다는 소리는 전혀아니다 오히려 이성을 포기하지않았기에 그가 이싸움을 비극적 싸움이라고 부를수있는것이다 만약 이성을 완전히 포기했다면 그는 이싸움은 비극으로 끝나지않을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이성과 삶을 모두 포기하지않으면서 우리삶의 희망을 기지기위해서 이승리없는 싸움을 영위하기로 결정한것이다.
2.
인간은 죽는다 그렇다 인간은 언제가 확실하게 죽는다 이책은 이름대로 아까말한 그 비극에대해서 말하는 책이다
인간은 불멸을 원한다 그렇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이 살겠다는 열망에대해서 이성은 불가능하다고 나한테 확언한다 그렇다 이것이 인생의 비극적 감정인것이다
우리는 언제가 죽는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지않기를 소망한다 그렇다 우리는 불멸을 원하는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성은 불멸이 불가능 하다는걸 내게 설명한다
그러나 나의 감정은 나의 비합리적인 본능은 나에게 사후생을 열망하게 만든다 나는 절대로 죽음에 굴복하고싶지 않다는 그감정이 나에게 사후생에대한 열망을 충동질시킨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 예를 들어서 러셀이나 도킨스 같은 확고한 무신론자들같은 자들은 불멸에대한 열망을 어린이같은 투정으로 생각할지도 모론다 아니 생각할것이다
그들은 칸트가 말한것처럼 내게 이야기한다 감정은 이성에게 복종해야한다 그러니 나의 감정은 나의 본능은 이성에게 복종해야만한다 그리하여 불멸의 열망을 버려야한다고말이다.
이 책은 말한다 아니 외친다 감정은 이성에게 복종할수없다 그러니 해서도 안된다고 이책은 외친다 그렇다 나의 불멸에대한 열망은 절대로 포기될수 없다.그러기에 기독교같은 종교들이 있는것이다 불멸에대한 열망을 위해서 기독교는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그어떤 변증가도 천국과 지옥 혹은 영혼불멸에대한 그어떤 합리적인 설명도 내놓지 못했다.
어떤 인간은 유사불멸을 꿈꾼다 명성이나 명예 혹은 인류에게 봉사하는 삶을 통해서 자신의 업적이 인류에게 끼칠 영향이나 자신의 이름의 존속을 통해서 영혼불멸의 대체품을 꿈꾸기도한다.그런 인물로 칼 세이건,러셀,톨스토이 같은 훌륭한 자들이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종족도 언제가는 멸망을 맞이 할것이며 이 우주또한 멸망할것이다 우리의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것이며 존재했다는 증거도 남지 않을것이며 모든게 없었던거와 차이가 없어질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업적도 후손도 문명도 모두다 무로 돌아갈것이다.
그러기에 톨스토이또한 과거 이렇게 비명을 외쳤다"나의 모든 작품들은 망각될것이다!"그렇다 우리는 유사불멸조차도 누릴수없다 인류의 역사가 길어보았자 몇백난년을 가겠는가?그렇다 우리의 삶은 궁극적인 관점에서는 무의미하다 그렇다 이 우주자체가 무의미한것이다.
그러기에 인생은 승리도 희망도없는 하나의 비극이다 우리는 탈출구도없이 이 비극을 이 삶을 영위하고있는것이다.
그냥 이런거 신경쓰지말고 인생을 즐기라고 하는사람도 있을것이다 나의 죽음은 어쩌피 먼 미래의 일이니 현생을 즐기라고 말이다 참 좋은 발상이다!
이건 마치 시한부 환자한테 너가 죽을일은 나중일이니 현생을 즐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어떤 철학자의 말에따르면 죽은 사람한테 죽음은 아무런 해도 끼칠수 없기에 죽음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한다.
마치 광견병걸린 개가 죽으면 그개의 광견병도 나은것이라고 하는 돌팔이 의사의 희극적인 치료방식과 비슷한면이있다.
확실히 그 철학자의 말대로 인간이 갖고있는 불명의 열망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다 그러나 그렇다 그러나 나는 불멸을 감정적으로 본능적으로 원한다
이 책은 외친다 "나는 살고 싶다 그렇다 나는 영원히 살고싶다!"이책은 아주 솔직하게도 영원한 삶을 원함을 온힘을 다해서 외치고있다.
이성은 나한테 불멸이 불가능하다는걸 아주 능숙하고 훌륭하게 설명한다.일단 영혼이라는 존재가 과학적으로 실증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것은
과학적으로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갖는 영생의 열망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추상적인 희망인것이다.
구체적인 피와 살을가진 인간이 저런 비이성적이고 확실하지않은 희미한 희망에 의지하는것이야말로 진정 비극이라고 이책은 말하고있다.
종교는 매일 이성한테 비웃음을당하며 배척당한다 왜냐하면 종교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바로 죽기 싫다는 그 감정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이성은 합리와 과학을 포기할수없다 마찬가지로 나의 본능은 나의 감정은 사후생을 포기할수없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둘다 포기할수없다 그러기에 우리의 이성과 감성은 늘 전쟁상태에서 양보도 희망도 없는 싸움을 계속하는것이다.
과거 사도 바울이 아테네의 지성적이고 훌륭한 시민들사이에서 자신의 종교를 강의할기회가 생겼다 강연장은 아주 조용했으며 바울의 말하디마다 짧은 타성이 나울정도로 강영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죽은자의 부활에대해서 이야기하자 그만 아테네 시민들 전체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렇다 그 이성적이고 훌륭하고 관대한 아테네 시민들조차도 부활과 영생에대해서 이야기하자 비웃고 마는것이다.
그렇다면 도데체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이책의 저자는 놀랍고 황당한 선택을 하는데 바로 돈키호테주의다.
이책의 저자의 말에따르면 돈키호테야말로 진정 비극적이고 영웅적인 인물이라고 이책은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돈키호테는 이렇게 말하고있기때문이다.
셸리 케이건의 죽음관은 아래에있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며 무조건 나쁘지도 않다 오히려 영생이야말로 형벌이다
이책의 핵심주제중하나인데 셸리 케이건은 죽음을 두려워하는것이 비이성적이고 훌륭한 태도가 아니며 우리가 죽음과 직면해야한다고 주장함
죽음이 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면 죽음 그자체는 너에게 그어떤 해도 끼치지 않음 그러니까 죽음이 다가온 그사람에게 있어서 죽음그자체는 더이상 나쁠수없음 왜나하면 나쁨이라는 개념은 남은 살아있는 사람한테만 유효한 개념이고 죽음을 직면하는 본인한테는 더이상 악이될수없음 그러니까 나의 비존재는 나에게 악이될수없음 왜냐하면 인식할수 없으니까 하지만 죽음이 나쁠때가있다면 그것은 우리삶의 긍정적인 것들을 빼앗기때문임 하지만 그것만빼면 죽음그자체는 하나도 나쁘지않다는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죽음을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야하며 죽음에대한 공포를 느낄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영생이야말로 형벌이다 이거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영생한다면 내인생이 끔찍하다면 그것은 형벌이며 내인생이 훌륭하고 좋다해도 그것은 너무 지속된다면 지루해지기에 영생이 오히려 나쁘다느것이다
누가더 더 설득력이있는거 같음?댓글좀 남겨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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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나무노보다 설득력있다고 생각함?
이유가 뭐임?
그러니까 우나무노는 너무 죽음만 생각해서 별로고 케이건은 현재를 중요시하게 여겨서 더 좋다는거임?
글쎄 대충 훑어본 바로는 케이브랑 케이건이랑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한테는 우나무노의 의견은 별로...
왜?이유가 있음?
불멸에 대한 열망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그건 우나무노 개인의 생각이지 나는 전혀 불멸하고 싶지 않음...
알았음 나하고 너는 다르니까 너한테는 설득력이없겠네
ㅇㅇ 그런 거임
그럼 케이브나 케이건은 어떻게 생각함
우나무노보단 낫지만 글쎄 완전히 동의는 못 하겠음
왜? 그들한테 동의를 못하겠음?
삶의 긍정적인 것들을 빼앗는다는 점이 너무 추상적인 것 같고, 나는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없다고 생각함. 물론 우리가 인간의 몸으로 실재하는 한 긍정적으로, 또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겠지. 근데 죽은 뒤에는 어차피 그런 굴레를 다 벗어던진 뒤인데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것을 따져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음.
노화나 질병, 장애와 같은 삶의 고통과 대비되는 죽음이 아닌 비존재로서의 죽음 자체에 대해서는 셸리 케이건의 논증이 맞다고 생각함. 물론 죽음을 두려워하고 영생이나 사후세계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정말로 죽음을 그저 비존재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진 않겠지만...
그럼 우나무노의 논증은 별로 설득력이없다고 생각함?나는 가장 솔직한거 같아서 인기가 많을줄알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나무노의 주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 같음. 난 '태어나지 않을 권리'를 번역하기도 한 이한이 '삶은 왜 의미있는가'에서 주장하듯이 삶의 의미를 논증하는 것이 죽음이 가져오는 무의미에 대해 반박하는 것보다 생산적인 주장이 될 것이라고 봄. 참고로 케이브는 아직 안 봄.
그러니까 네애겐 우나무노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거임?
물론 이한은 저 책에서 무의미에 대한 반박도 많이 하는데, 삶의 의미에 대해 논증한 것만큼 성공적으로 보이진 않더라...
ㅇㅇ 우나무노의 주장은 오히려 누구나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무의미의 영역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영생이냐 죽음이냐는 질문은 물론이고 실존적인? 삶이냐 죽음이냐의 문제에서는 설득력이 없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