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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웨스트코트-홀트 판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모색

그렇다면 1881년에 웨스트코트-홀트의 새로운 사본학 이론에 기초한 신약 성경이 출판되었을 때 거기에 대한 비판은 없었는가? 아니다. 오늘날 웨스트코트-홀트의 이론은 별로 이의가 없는 정설인 것처럼 소개되고 있지만, 이미 그 당시 교회로부터 적지 않은 비판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문제점이 지적되었던 것이다. 특히 존 버건(John W. Burgon, 1813-88)은 그 당시에 웨스트코트-홀트의 새로운 이론과 그것에 바탕한 새로운 신약 성경(Revised Version이라고 불렸음)을 비교적 상세히 분석하고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비록 현대 사본학계를 대변하는 메츠거는 그를 “잃어버린 주장들과 불가능한 신념들을 옹호하는 챔피언”으로 악명 높다고 소개하면서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조롱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도리어 현대 사본학자들이 얼마나 객관적이지 못하며 편견에 빠져 있는가를 드러낼 뿐이다.


버건이 런던의 잡지에 발표한 세 편의 글들은 1883년에 The Revision Revised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버건은 웨스트코트-홀트의 “계보론적 방법”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선호한 א, B, D는 “현존하는 가장 부패한 사본들”(the most scandalously corrupt copies extant)이며, 그것들은 “가장 수치스럽게 절단된 본문들”(the most shamefully mutilated texts)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또한 이 사본들은 “조작된 독본들”(fabricated readings)과 “실수들”(blunders)과 “진리의 고의적인 왜곡”(intentional perversion of Truth)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스크리브너(F.H.A. Scrivener)도 1883년에 나온 그의 책에서 “홀트 박사의 이론은 역사적인 토대를 완전히 결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따라서 “그 이론의 토대는 교묘한 상상의 모래 땅 위에 놓여져 있다”고 하였다.


-> [※Westcott-Hort의 그리스어 성서에서 영국에서 영어번역을 하여 Revised Version(*1911년 한글 개역성경의 번역대본)이 나왔다. 또 미국에서 영어번역을 하여 ASV가 나왔고 이것 역시 1911 한글 개역성경의 번역대본이다. 한글 개역성경은 RV와 ASV의 영어-한국어 번역본이다.]


호르트 박사를 비판한 일은 영국에서 있었던 일로 존 버건은 흔히 딘 버건(Dean Burgon)으로 불린다. 변 교수는 버건의 책을 제대로 읽어봤는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버건의 주장과 근거를 가지고 와야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없고, 감정적인 대응(부패함, 수치스러움, 조작됨, 실수, 고의적인 왜곡)을 하는 단어들만 차용하여 글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리고 Burgon(버건)의 주장은 무엇이었냐면, 교부들의 인용이 Traditional Text(전통 본문, Majority Text(다수 본문)는 곧 수용 본문(Textus Receptus)을 뜻한다)에서와의 일치는 2630건, Neologian(새로운 교리를 주창하는 사람, 비꼬아서 말한 이 사람은 Hort 박사를 뜻하고, 그 본문은 곧 Westcott-Hort의 편집본)과의 일치는 1753건 이며 3:2의 비율을 보인다고 Traditional Text of the Holy Gospels Vindicated and Established p.101(버건의 연구물을 다른 사람이 통계치 낸 것이다) 에 나온다. 사실 이 주장은 세세함을 알아보지 않고 단순히 통계를 낸 숫자놀음 이지만, 이 주장은 WH에서는 먹힐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중립본문이라 부르며 א, B를 선호한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NA-UBS는 교부인용을 전부 싣고 있다. 그럼에도 WH를 까면서 그것을 계승한 NA-UBS를 까려는 변 교수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러나 대세는 웨스트코트-홀트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그 후로 학자들은 차차로 웨스트코트-홀트의 이론과 그들의 「수정본」 신약을 지지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수많은 네슬레 판이 거듭된 오늘날에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NA 판이 20세기의 TR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NA 판의 독주에 대해 비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웨스트코트-홀트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동안에, 소수의 학자들과 목사들을 중심으로 이 이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운동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전개되고 있는데, 그 뿌리는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흠정역”(KJV) 옹호 운동이다. KJV는 1611년에 번역되어 그 경건성과 아름다운 문체로 인하여 수백년간 사랑 받아 온 번역이다. 그러나 이것은 1881년에 웨스트코트-홀트의 「수정본」(Revised Version)에 의해 근본적으로 도전 받게 되었다. 1901년에 이 RV의 미국판이라고 할 수 있는 ASV가 출판되었다. 이것을 토대로 개정한 것이 NASB(1971)이다. 또한 RSV(1952), NEB(1961), NIV(1978)도 출판되었으며, 최근에는 NRSV도 나와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TR이 아니라, 웨스트코트-홀트의 편집판 또는 그 계승이라 할 수 있는 NA/UBS 판을 대본으로 사용하였다.


->사실이다.



이처럼 새로운 번역 성경들이 쏟아져 나오자 보수적 신앙을 가진 영미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신뢰성이 손상되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질 뿐만 아니라, 1611년 이래 400년 가까이 교회에서 사용되어 오고 있는 KJV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는 것에 대해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보수적 신앙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KJV 옹호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의 Trinitarian Bible Society가 스크리브너(Scrivener)의 「희랍어 신약 성경」(1894, 21902)을 재출판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스크리브너 판은 KJV의 모체가 되었던 TR을 제공해 준다. KJV의 번역자들은 그 당시 베자(Theodore Beza)가 편집한 신약(그 중에서도 특히 1598년의 제 5판)을 주로 대본으로 사용했는데, 스크리브너 판은 이 베자 판과 미미한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다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의 「말씀보존학회」가 1994년에 「한글 킹 제임스 성경」(신약 초판은 1990)을 내놓았는데, 오늘날의 많은 번역들이 잘못된 사본에 기초해 있음을 비판하고 전통적인 본문(TR)을 옹호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다소 감정이 앞서서 지나친 주장을 한 것들이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오늘날 추적하기 어려운 사본들의 전수 역사에 대해 너무 자신 있게 단정하고 있으며, 또한 TR과 KJV을 지나치게 절대시하는 듯한 인상이 든다. 물론 KJV가 경건하고 좋은 것이긴 하나 절대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KJV의 번역자들은 희랍어의 “시상”(時相, aspect)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다(이것은 그 당시의 학문 수준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 일례로 KJV는 사도행전 19:2와 에베소 1:13 등에서 “부정 시상 분사”(aorist participle)를 한 시제 앞선 것으로 잘못 번역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오순절주의자들과 은사주의자들, 그리고 로이드-존스 목사가 이 오역을 토대로 “믿음 후 성령받음”을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1982년에 나온 NKJV에는 이러한 오역들이 많이 시정되었다).


->TR에서 비롯된 KJV를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400년 묵은 영어 번역본인 KJV에 대한 비판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그 대안으로 Majority Text 에서 번역한 NKJV를 옹호하고 있다. 웃길 일이다. (*물론 KJV 근본주의자들은 NKJV 역시 사탄에 의해 변개되었다고 맹비난한다.)



다른 또하나의 흐름은 차분하게 웨스트코트-홀트의 이론을 재평가하고 현대 사본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하는 학적 노력들이다. 주로 미국과 화란의 보수적인 학자들과 목사들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인데, 미국 내의 보수적인 신앙의 사람들과 선교사들 사이에 그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피커링(Wilbur N. Pickering), 로빈슨(Maurice A. Robinson), 스터즈(Harry A. Sturz), 핫지스(Zane C. Hodges) 등이 전통적인 비잔틴 본문을 옹호하고 있다. 화란에서는 판 브루헌(J. van Bruggen) 교수가 1976년에 출판한 조그만 책(The Ancient Text of the New Testament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음)에서 웨스트코트-홀트 이론의 문제점을 학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었으며, 전통적인 비잔틴 본문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그 제자 중의 하나인 뷔썰링크(W.F. Wisselink)는 웨스트코트-홀트 이래 현대 사본학의 “공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동화” 이론에 대해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의 수많은 자료들을 컴퓨터로 처리해서 과연 그 이론이 타당한지 여부를 검증하였다. 그의 결론은 “비잔틴 본문 형태는 그것의 조화적 또는 동화적 성격 때문에 열등하다고 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건전한 토대 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은 1982년에 핫지스(Zane C. Hodges)와 팔스타드(Arthur L. Farstad)가 편집한 The Greek New Testament according to the Majority Text가 미국의 최대 성경 출판사인 토마스 넬슨(Thomas Nelson)사에 의해 출판됨으로써 구체적인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 희랍어 신약 성경은 1985년에 제 2판이 나왔으며 현재 한국에도 조금씩 보급되고 있다. 이 신약 성경의 서문에 보면, 오늘날 가장 유명한 두 희랍어 신약 편집판인 UBS(3판)과 NA(26판)은 이집트에서 기원한 적은 수의 고대 사본에 매우 많이 의존하고 있으며(주로 B, א와 몇몇 파피루스들), 따라서 이 편집판들이 가지고 있는 본문은 “이집트 본문”(Egyptian text)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소수의 몇몇 사본들의 증거에 반해 상당히 많은 대다수의 사본들은 그 본문이 거의 일치하게 전수되어 내려오고 있다. 이 대부분의 일치하는 사본들의 본문 형태는 “대다수 본문”(Majority Text)이라고 불리는데, 토마스 넬슨사가 출판한 희랍어 신약 성경은 바로 이 “대다수 본문”을 토대로 편집된 것이다.


->왜곡이다. 이름은 거창하게 ‘다수 본문에 따른 그리스어 신약성서’이지만, 따지고 보면 TR의 부활이다. 이 그리스어 신약성서로 NKJV가 번역되었으니까. 이 와중에 그 서문에서 NA-UBS가 이집트 본문에 매우 많이 기초하고 있다는 둥 하는데 헛소리다. 중립본문 이라는 용어 자체가 폐기된 이 시점에와서 NA-UBS를 까려고 든다. 몇번이나 언급하지만, 중립본문에 의존해 NA-UBS 비평본문을 만든게 아닐 뿐더러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비평본을 낸 것이다. NA-UBS는 전세계 최고의 성서 본문비평 학자들이 모여 앞선 증거를 취합해 회의하고 토론한 것이다. 변 교수처럼 TR과 KJV계열을 지지하는 인간들이 실오라기 만한 흠집도 못내는 곳이다.



물론 이 “대다수 본문”(다르게는 비잔틴 본문, 수리아 본문, 코이네 본문 등으로 불림)을 가지고 있는 사본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이집트 사본들보다 시기적으로 후대의 것임은 사실이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식하기 쉬운 파피루스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곳은 건조한 기후 조건을 가진 이집트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다수 본문의 “본문 형태”는 바티칸 사본이나 시내산 사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2,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 가는 수리아 역본들이 거의 비잔틴 본문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 당시에 비잔틴 본문 형태를 가진 희랍어 사본들이 이미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이 수리아 역본들은 어디서 왔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새로이 발견된 파피루스들 중에는 놀랍게도 비잔틴 본문을 지지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예를 들어 p46). 나아가서 “대다수 본문” 형태를 가진 사본 또는 역본들은 고대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견된다. 수리아, 비잔틴뿐만 아니라, 고딕,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심지어는 에티오피아에서도 발견된다. 이처럼 광범위한 지역에 퍼져 있으면서 일치하는 수많은 사본, 역본들의 존재는 곧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아주 오래된 사본들에서 전수되어 왔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대다수 본문” 지지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심지어 현대 통계학 이론을 동원하여 “현재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는 사본들의 본문 형태가 가장 오래된 사본 전수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정신승리도 가지가지 한다. 비잔틴 본문, 즉 다수 본문은 이름 그대로 그리스어 사용지역이었고, 당연히 성서도, 시간전례도, 성찬전례도, 심지어는 일상 생활도 그리스어로 하던 지역이다. 동로마제국인 비잔틴 제국이 망할 때까지 말이다. 그 사람들이 그리스어 본문을 많이 만들 수밖에 없었고 그것들이 살아남을 수 밖에 없던 것이다. 그리스어 사용자들이기 때문에 내용이 자신의 지식의 한계, 또는 교리에 갇혀 이해하기 힘들 경우에는 본문을 수정해서 필사했고, 그것들이 점점 모여 최종에 이른 것이 비잔틴 본문의 후기형태이다. 또 코이네 그리스어인 신약성서 원문과 달리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비잔틴 그리스어로 시대가 달랐고 언어가 변했다. 그로 인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대 언어는 적절한 자신의 시대에 쓰는 단어로 치환하여 필사하고 이해했기 때문에 변화가 크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며, 무작정 비잔틴 본문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비잔틴 본문도 원문에 가까운 부분이 있다. NA-UBS는 그 점을 놓치지 않고 비잔틴 본문의 읽기가 맞을 때는 그것을 읽으라 지시한다. 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계 그리스어 본문이 높은 평가를 받았는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학문의 중심지로 ‘고대’에 이미 본문비평이 이루어진 곳이다. ‘고대’에 사본들을 가지고 본문비평을 하여 원본문을 확립하고 필사하여 보존한 곳으로 성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전수했다.




V. 우리의 방향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사본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현대의 NA, UBS 판이 웨스트코트-홀트의 잘못된 사본학 이론에 근거한 것이라면 우리는 어떤 희랍어 성경을 택해야 할 것인가? 그냥 옛날의 TR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아니면 더 대안이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의 사본학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이런 문제들은 물론 쉽게 답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지만, 독자들을 위해 여기에 우리의 입장을 간단히 정리해 보기로 하자.


1. 먼저 사본학과 관련하여서 커다란 조심성이 요구된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하겠다. 사실 우리는 사본의 전수 과정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 어떤 사본이 발견되었을 때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그 사본의 연대를 대략 추정할 수는 있지만, 누가 어디서 어떤 계기에 의해 필사했는지는 거의 알 수 없다. 특히 제일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어느 사본을 대본으로 해서 필사했는지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 또한 필사자가 어느 정도의 조심성을 가지고 필사했는지, 그리고 필사 후에 다시 원본과 대조해서 점검했는지에 대해서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알기 어렵다. 따라서 오늘날 사본에 대한 여러 이론들은 대개 불확실한 추측에 근거한 것이 많다. 뿐만 아니라 사본의 연대가 빠르다고 무조건 우수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2, 3세기의 파피루스라고 해서 너무 신뢰해서는 안되는데, 왜냐하면 파피루스는 그 당시에 비교적 값싼 종이였기 때문에 그 당시의 어떤 사람이 개인적 용도로 급하게 필사했을 경우에 많은 오자와 부정확한 것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9, 10세기의 소문자 사본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해서도 안되는 것은 비록 후대의 사람이 필사했지만 초기의 좋은 사본에 근거해서 정성껏 필사하고 교정했다면, 그것은 4, 5세기의 대문자 사본보다도 훨씬 더 정확한 사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필자가 후대의 것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본의 필사 과정과 전수 과정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사본에 대해 말할 때는 고도의 조심성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웨스트코트-홀트와 그후의 사본학자들이 비잔틴 본문 형태를 가진 사본들을 너무 쉽사리 가치 없는 것이라고 배척해 버린 것은 큰 잘못이다.


2. 그러나 오늘날 지배하고 있는 NA 판과 UBS 판은 잘못된 사본학의 원리에 의해 편집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전통적인 비잔틴 본문을 무조건 지지해서도 안되지만, NA 판과 UBS 판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오늘날의 NA/UBS판은 분명히 잘못된 사본학의 원리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불과 몇 개의 이집트 사본들을 토대로 만든 “지역판”이며, 2천년 가까이 교회에서 대대로 전수되어 내려오던 대다수의 사본들의 증거를 불충분한 이유로 무시하고 있다. 대신에 그들은 소위 “내적 증거”라는 원칙 아래 서로 조화되는 독본들을 “동화”되었다는 구실로 가능한 한 배제하고 서로 조화되지 않고 어색한 독본들을 본문으로 많이 택하였다. 이러한 “동화” 이론의 배후에는, 그리스바하에게서 분명히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성경의 원본은 가능한 한 조화되지 않는다는 “원본부조화가설”(原本不調和假說)이 놓여 있다. 그래서 서로 조화되는 독본은 후대의 필사자들이 가필해서 수정했을 것이라는 이유로 배격해 버린다. 이것이 소위 “어려운 독본 우선의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현대 사본학의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원칙 하에 편집된 성경은 본문들 사이에 가능한 한 서로 충돌하고 맞지 아니하고 뜻이 잘 통하지 않는 것들로 많이 차 있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사실은 NA 판과 UBS 판이 이런 부조화 본문들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


이와 아울러서 NA 판과 UBS 판은 역사적인 어떤 사본의 계통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5명의 편집자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선택한 본문을 제공해 주고 있다. 물론 그들은 몇몇 대문자 사본들과 파피루스를 중요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위 “내적 증거”라고 부르는 것이며, 어느 것이 동화되었고 안 되었고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다섯 명의 편집자들이다. 그들 사이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결국 투표로 결정하였다. 물론 이것은 실제 작업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이로써 편집자들의 “주관적 판단”이 본문 결정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고 말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현대의 NA/UBS 판은 사실상, 역사적으로 전수되어 내려오는 사본들의 “외적 증거”보다는 현대 사본학자들의 “주관적 판단”을 더 따른 것이다. 따라서 NA/UBS 판이 제시하는 본문은 현존하는 어떤 사본에도 근거하지 않은, 다섯 명의 사본학자들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편집진이 바뀌면 또다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가변적인 것이다. NA/UBS 판의 이러한 “주관주의”(subjectivism)와 “절충주의”(eclecticism)는 20세기의 현대 사본학이 외양적으로는 견고한 토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불확실한 토대 위에 서 있음을 보여 준다.


->NA-UBS가 잘못된 사본학의 원리에 의해 편집되었다고 주장하나, 그 근거는 없고, 그저 다수본문이 맞다고 생각하는 변 교수가 억지를 부리며 변증하고 있다. NA-UBS 편집진이 겨우 5명이라 생각하는 것부터가 억지의 시작이다. 사본의 편집과정에서 세상을 떠난 학자들은 없던 셈 치는 것이 되며, 논란이 있던 구절과 근거는 전부 등급도 매기고 []를 달기도 했다. NA-UBS가 어떤 사본에도 근거하지 않음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현재 남아있는 사본중에 원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모든 사본들을 비교대조하여 만들어졌으므로, 당연히 비평본문은 창조물이다. 그건 TR도 마찬가지고, 변 교수가 억지를 부리면서 까지 지지하는 Majority Text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모든 고대 본문 비평된 문헌들에게 있는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변 교수가 무식한 것이 아닌가?



3. 이런 점에 있어서 1982년과 1985년에 나온 MT 판은 편집자들의 주관적 판단이 주가 되지 아니하고 역사적으로 교회에서 전수되어 내려오는 대다수의 일치하는 사본들의 독본을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견고한 토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20세기의 몇몇 사본학자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본문을 따르는 것보다는 2천년 가까이 교회에서 사용되던 사본들의 본문을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낫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MT 판이 바로 원본의 말씀을 제공해 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 MT 판 편집자들도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의 편집판(1985)이 “예비적”(preliminary)이고 “준비적”(provisional)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현존하는 대다수의 희랍어 사본들의 가치와 권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의 첫 걸음”이라고 말한다. MT 판은 아직도 많은 연구와 보완 작업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주관적이고 비평적인 편집 원리에 의해 편집된 NA/UBS 판에 비해서는 훨씬 객관적이고 역사적 증거가 있는 본문을 제공해 준다. 따라서 사본학과 관련하여서 아직도 많은 연구가 진전되어야 하겠지만, 현단계에서는 MT 편집판이 상대적으로 더 나은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사람들은 TR이 가장 나은 대안이 아닌가고 반문할 것이다. 물론 TR도 비잔틴 사본들을 토대로 편집된 것이기 때문에 TR과 MT는 기본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약간의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TR 판들은 아직도 비잔틴 사본들의 자료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TR은 하나의 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판들(Erasmus, Stephan, Beza, Elzevier 판 등)을 묶어서 부르는 명칭인데, 300여년간 구라파 교회에서 받아들여서 사용한 희랍어 신약 성경의 본문 형태를 뜻한다. 그러나 최근의 MT 판은 TR 뿐만 아니라, 20세기초의 폰 조던(Von Soden)의 비잔틴 사본들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대다수 사본들이 가지고 있는 본문을 좀 더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MT 판은 옛날의 TR보다 한 걸음 더 진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MT 판에는 TR의 본문과 다를 경우에 밑의 “각주란”에 그것이 표시되어 있으며, 대다수 본문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웃음 밖에 안 나오는 무식의 극치이다. Majority Text가 대안이라고 억지 주장하고 있다. 나는 여태 이 긴 글을 읽으며 그 지지근거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4. 사본학의 장래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사본학 분야는 워낙 방대하고 복잡한 것이라서 아직 결정적인 것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주로 독일 뮌스터의 “신약사본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문제는 그들의 사본학의 원리와 신학적 전제이다. 아무리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어도 많은 중요한 자료들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경시한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NA 26판(UBS 3판)에서 NA 27판(UBS 4판)으로의 진행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필자의 “UBS 4판과 NA 27판에 나타난 현대 사본학의 동향,” 「개혁 신학과 교회」 4호 (1994), pp.53-66 참조), 비록 더 많은 자료들이 참조되고 각주에 실리기는 했지만 그것들이 본문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으니 이전의 문제가 개선되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여러 군데에서 편집자들의 주관적 판단이 더 강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올바른 사본학의 발전을 위하여서는 올바른 믿음에 바로 선 학자들의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 특히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웨스트코트-홀트 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필요하며, 사본학의 기본 전제처럼 여겨지고 있는 “어려운 독본 우선의 원칙”과 “동화 이론”에 대해서도 비판적 검증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소문자 사본들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여태까지의 사본학은 주로 몇 개의 대문자 사본에 집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연구가 되지 않고 있는 방대한 소문자 사본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앞으로 많은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렉시오나리아(lectionaria)에 대한 연구도 중요하다. 교회에서 공적으로 낭독될 때 사용되었던 렉시오나리아 본문은 거의 모든 곳에서 비잔틴 본문과 일치하고 있는데, 렉시오나리아는 교회의 공예배시에 낭독된 것이기 때문에 그 성격상 보수성과 엄격성을 띠고 있다. 따라서 이 자료들을 연구하고 참조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알란트는 NA 26판에서 이 자료를 거의 무시했으나, NA 27판과 UBS 4판에서 데살로니카의 렉시오나리아 연구소 소장인 까라비도뿔로스(J.Karavidopoulos)를 편집 위원으로 가담시킨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그 자료들이 본문 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파피루스 사본들에 대한 많은 연구가 요구된다. 2, 3세기의 파피루스들은 웨스트코트-홀트의 기대를 뒤엎고 예상외로 비잔틴 본문 형태를 지지하고 있는 것도 많다(특히 p46).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 파피루스들의 증거는 대개 웨스트코트-홀트의 “중립 본문”을 지지하는 것과 “비잔틴 본문”을 지지하는 것이 나뉘어지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앞으로 파피루스에 대한 더 많은 연구는 사본 전수 과정에 대해 좀 더 밝은 빛을 비춰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오늘날 발견되는 파피루스들이 이집트 지역에 치우쳐 있다는 것과, 또한 파피루스가 값싼 재질이기 때문에 조심성 없이 필사한 파피루스들은 오히려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수리아 역본, 아르메니아 역본, 고대 슬라브어 역본, 에티오피아 역본 등에 대한 연구도 사본에 대한 좀 더 넓고 균형 잡힌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NA26 UBS3와 NA27 UBS4는 개정하면서 본문의 변화는 아예 없었고, 자료의 변화도 거의 없었다. 시간전례 본문을 연구하는 학자 중의 최고가 이미 NA-UBS 편집진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이전부터 시간전례 본문이 무시된 적은 없으나, 변 교수는 마치 앞선 단락에선 완전 무시된 것으로 여기고서는, 시간전례의 대학자가 들어왔으나 본문의 변화가 없었다며 마치 통탄할 일인 것 마냥 쓰고 있다. 그 학자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본문의 변화를 가져올 만큼의 증거가 편집진들이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없어서' 였을 뿐이다. 그의 의견이 NA-UBS에 심각한 도전을 가지고 왔다면 당연히 그 결과는 논란으로 라도 분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무 것도 없는 현 상태를 보인다. 변 교수는 NA-UBS가 마치 TR로 편집되기를 원하는 듯이 말하고 있다. NA-UBS의 편집기준은 비잔틴 본문‘만’가지고 하는게 아니라 모든 사본 및 인용구와 번역본 까지 고려하여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Majority Text 처럼 주관적인 비평본문이 아니다. 착각하지 마라.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 사본학의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를 많이 지니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처럼 사본 문제와 관련하여 의견의 차이가 크고 전혀 다른 편집판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볼 때에, 자칫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성이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굳건하게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본상의 차이는 아주 사소한 것들에 국한되어 있거나 의미상 큰 차이가 없는 것들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인가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인가 아니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인가 하는 정도의 차이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는 같은 의미이지만 단어가 다른 경우라든지, 또는 같은 단어인데 시상이 다른 경우도 제법 있다. 그래서 성경 본문의 뜻에 중요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그런 사본상의 차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벵겔이 평생 동안 사본을 연구한 후에 내린 결론, 곧 “상이 독본은 생각했던 것보다 수가 적고 또한 복음적 교리의 어떠한 조항도 요동시키지 못한다”는 결론을 오늘날 우리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은 곧 그토록 오랫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 의해 필사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놀랍도록 정확하게 보존되어 왔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5천여 희랍어 사본들 중 대다수의 사본들이 거의 일치하는 본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한 보존에 대해 감사드릴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끝>


->전투적무신론의 종합결론을 내리기 전에, 먼저 이 글을 다 읽은 독자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 글은 쓸데없이 매우 긴 글로 역사나 읊다가 억지비난을 반복했다가 잘 알아듣지도 못하겠는 용어들이 튀어나왔다가 하는 등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잘 모르는 독자들은 변 교수의 말이 사실인 것 인 양 들렸을 수 있다. 본인이 볼 때 변 교수는 본문비평에 대한 지식이 '성서(신약)'에만 한정되어 있다. 그는 원래 '본문비평'이 고대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모든 문학작품에 쓰인다는 것을 모른다. NA-UBS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으며, 본문비평을 할 줄도 모르는 듯 보인다. 다만 변 교수는 역사에 대해선 잘 꿰고 있다. 만약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주장들을 분리해 내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글은 '간략히 보는 사본학의 역사' 라는 제목으로 소일거리용 책의 한 챕터로 다룰만 하다.


더구나 변 교수가 하려했던 현대 본문비평학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었다". 아무것도 반론해내지 못했고, 주장도 억지였던데다, 근거도 너무 빈약해 마치 '어린아이'의 기고글을 읽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