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일하느라 답변못했던, 왜 이슬람새끼들 처럼 돌팔매로 쳐죽이는 짓을 못하는지 물은

사고능력이 부족한 아이에게 늦게나마  바치는 서사시다.


1.  응보주의


눈에는눈, 이에는 이


응보주의를 한문장으로 나타내는 말이고,

한글때면 누구나 아는 함무라비 법전의 원칙이다.


응보주의가 병신이라는말을 하는게아니고,

함무라기 법전이 결국 틀린거라는 말을 하고싶은거도 아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그당시의 정의를 권력자가 가장 타당하게 만든 법률이고

당시의 피지배계층이 별다른 저항없이 받아들인 법률이다.


그것은 당시엔 합리적인 법이었다.


지금의 사회에 맞지않게 되었을뿐





2. 응보주의의 한계.


응보주의는 '공포'를 통하여 예방을 한다는것에 의미가있다.


문제는 공포 라는것은 피지배계층에게 '피로감'을 주며, 

항시 가지는 피로감은 범죄의 예방에게 큰 효과를 부여하지못한다.


그리고 공포에 의한 피로감은....'반발심'이라는반대급부를 발생시킨다.


통치의 기술로도 바람직하지도않을뿐더러, 원하는 효과도 만족하지 못한다.




3. 교정학의  발전


'형무소 or 감옥'  ---> '교도소'

'간수'  ----> '교도관'


인간이 거주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필요이상의 고통을 끊임없이 주는것이 종래의 응보주의적 입장이었다면


죄지은 사람에게 법이정하는 테두리내에서 형벌을 부과하고,

감금역시 징역의 형태로, 기술과 사회화를 습득시킨다는게 보다더 범죄의 예방에 도움이된다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물론, 이경우  기술이나 사회화 훈련보다 범죄의 기술을 교류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건 사실이지만,

이건 교화주의의 부작용이라 보긴 어렵다.

'감금'이라는 현상에서 발생되는 일일뿐이니, 응보주의를 택했다하더라도 범죄의 기술교류는 막을순없다.


게다가 교정학의 일부학설 역시 '사회에서의 어느정도의 범죄는 정상적인 현상'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그게 현실이기도 하다.


불교의 극락, 기독의 천국같은 시스템과 환경으로 만든다하더라도,

범죄는 존재한다는게 맞는말이라 생각한다. 형태는 지금과는 다를지라도



그런경우라면 교정학의 목표는

범죄률과 종류를 컨트롤하는데 있다.


1만명중 100명이 범죄자가 되는건지

1만명중 1000명이 범죄자가 되는건지는 사회 시스템의 책임이다.


생계형 범죄가 더많은지. 싸이코패스적인 범죄 혹은 분노조절장애적인 범죄가 더많은지도

사회시스템의 책임이고, 교정학은 이것을 컨트롤 하는것에 불과하다.


결국, 원칙적인건 교정주의의 입장이다.

다만, 사형이나 종신형등.....시스템적인 오류가 아닌

인간근본 자체의 오류도 인정하는것도 병행하는게 현 교정학의 입장이다.








도박하다 팔목잘린놈은

도박을 다신하지않는가??

의문을 가지는게 좋을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