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재, 그는 누구인가?

 

그의 족보상의 이름은 이희재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이름은 이만희. 조부께서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온 대지를 비추는 태몽을 꾸고 출생 전에 미리 이름을 지어놓으셨다던 이름이다.

1931915일 경북 청도군 풍각면 현리동에서 출생하였다. “121녀 중 8째 아들이다라고 직접 쓴 약력(출처 : 총회장님이 직접 쓰신 약력과 반증문)에 기재되어 있으나 고향에 세운 비석 속 자녀의 이름은 11명이며, 그 가운데 6째임이 밝혀졌다.

이희재의 학력에 관하여서는 계시록 완전해설의 머릿말에 무학 천식한 시골 농민의 한사람으로 교육부의 해택을 받지 못하였다라고 기재하였으나 일정 당시 입학 기준이었던 12세에 국민학교에 들어가 광복 이듬해에 졸업했고, 모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공부했다고 한다(출처 : 총회장님이 직접 쓰신 약력과 반증문). 17세에 서울로 올라와 그 다음해 용산에 있던 성화전문학원을 다녔다. 공식 홈페이지 이희재 약력의 소개란에 ‘1948년 서울 침례교 외국선교사에게 믿음 없이 침례를 받음이라고 기재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해 보면 17세에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침례교에 가서 침례를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19506·25 전쟁이 발발했다. 만남에서 주최한 현충일 행사 영상에서, 또 설교 영상에서 보면 이희재는 학도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하였고 총 맞아 죽는 것보다 굶어 죽는 일이 더 허다했다고라고 하였는데 1950년 당시 피난길을 떠나 경기도 광주를 거쳐 고향 시골과 부산에서 잠시 지냈다고 하니 말대로 학도의용군도 아니요, 전쟁에 참전한 것도 아니고, 피난 가다가 굶어 죽은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 한 것으로 추측된다.

현충일 행사 당시 그는 육군 보병 7사단 8830186번 육군하사 이만희입니다라고 소개하였는데 국방부 관계자를 통한 조사 및 전역자 군번 찾기 조회시스템 결과 군 복무 기간 1952515일부터 1953422일까지 약 11개월 복무 후 상병으로 제대하였다. 상병 제대에 관해 개인적 견해로는 두 증인으로 홍종효씨가 증언 한 한센병 발병으로 짐작하고 있다. 한센병은 이희재 모계 쪽 유전병으로 이희재의 형제 중 셋이 한센병이 걸렸고 이희재는 군복무 당시 한센병 발병이거나 재발병으로 복무 기간도 마치지 못하고 11개월 만에 제대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이것은 사실에 근거 한 것은 아니다.


ㅅㅂ 알고보니까 횡령 만희 하고 탈세 만희 하려고 개명한거였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