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 믿으면 천국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을 최우선으로 방향성을 고정한다.
그 외의 어떤 조건도 없다.
교회 안나와도 되고
정교회 다녀도 되고
교리는 당연히 상관없다.
그 누구도 목회 권위자와 일반 제자삼은 자들까지 하나님 앞에 평등한 것 처럼 평등한 주님의 자녀다.
그 누구도 열등하며 하나님나라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깎아내리고 싸우지 않으며 교회 안다니는 사람이라고 지옥보내는 판단안한다.
누구나 똑같은 죄인이고 누구나 똑같이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자이다.
때문에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 처럼 자기 자신이 죄인중의 괴수인 것을 앎을 미덕으로 안다. 건설적인 대화와 조직문화에도 거름이 된다.
2.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두 폐하셨다.
정말 예수님께서 목숨까지 바치시며 폐하신 율법인데도 불구하고 부활시킨다는건
그 예수님의 성의를 무시하고도 예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목적과 뜻이 있어야지만 가능하다.
그리고 십일조는 절대 이 조건을 충족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십일조는 예수님의 대속하심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최하위 순으로 둔다.
3. 제자삼는 교회
2를 알면 1만 아는 사람을 가르칠 수 있고 5를 알면 2만 아는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 이런식으로 제자삼는다.
목사가 직업을 가지면 목회를 대충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성도들에게 있어서 직업을 가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거 전혀 없다.
이단걱정은 오히려 돈모아서 기부단체 흉내내는 교회가 사라지면
사이비가 반사회적 행동 했을 때 국가적 차원에서 탄압과 제거하는 방향에 접근성을 올려주고(예 : 일루미나티)
일반인들이 보기에 구분도 쉬워져서 사이비에 빠지는 것 또한 더욱 효과적으로 예방될 것으로 전망됨.
4. 코이노니아 소그룹
율법을 폐하시며 떠나라고 하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의 가치들은 소그룹을 대부분 조건으로 한다 직접적으로 나와있지는 않지만.
때문에 불가피하게 갑자기 몇천명 몇만명의 대규모의 새신도가 늘더라도 방향성은 무조건 소그룹 코이노니아를 추구한다.
소그룹으로 하게되면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도로 신학적 해석과 도덕적인 기준면에서 통합을 위한 또다른 법의 필요성이 적다.(헌법, 교리, 신학)
반면에 규모가 크면 다양한 법들이 필요하고 그럼 또다른 율법들이 생겨난다. 때문에 율법을 빙자하는 수준의 법들은 허언으로 취급한다.
또한 대규모는 전혀 괜찮지 않고 이미 예수님의 공동체가치가 무너졌지만 무너지지않은척 폼잡게되는 악순환이다.
5. 권위
제자삼는 자는 권위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모든 인간은 같은 죄인이다.
즉 서로 신앙을 체크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건설해가고 개혁해가는 평등한 위치의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효율을 요하거나 다양성과 다름의 영역에 대해 독선적인 성도를 잡아주기 위해서 일시적으로만 권위를 사용한다.
만약 누군가를 벤치마킹 하게되면 개신교에서는 웨슬리(전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와 천주교 신부(권위로 똥폼 안잡고 본을 보이는걸 미덕으로 안다)만을 목표로 삼는다.
6. 초대교회
우리는 초대교회를 회복할려고 한다.
초대교회에서는 재산의 전체를 나누는 형태이고(십일조x)
본인의 믿음의 양에 맞게 재산을 나누되
그 재산은 교회를 위해서가 아닌 다른사람을 위해서만 쓰인다.
만약에 교회를 위해서 쓴 금액이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게 공개해야하며
한달에 얼마씩 자신의 교회를 위해 쓰겠다는 목표 금액과 그 당위성 또한 위와 같이 투명하게 공개한다.
바울이 말한 선교사가 파송받을 권리는 인정하되 자비량선교를 우선적으로 본다. 가장 복음적이기 때문에
또한 월급과 목사라는 제도는 최하위 순으로 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