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오후 12:35] <앙굴마라경> 그렇다. 문수사리여, 진실한 나[我]에 대해 세간의 그와 같은 삿된 소견과 모든 딴 망상(妄想)으로 '해탈은 이와 같으며, 내가 이와 같이 세간을 벗어났다'고 말하는 이는 또한 여래의 비밀한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무아(無我)를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그는 말만 따라서 생각하는 것이니 외도의 원인이 생긴 것과 같다. 그는 세간에서 어리석음을 따른 것이다. 그리고 출세간 사람들도 비밀한 말씀을 파악하는 지혜에 어둡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1승(乘)인 중도(中道)를 말했는데 그 도는 치우치는 두 쪽을 떠났나니 나가 진실하고 부처가 진실하고 법이 진실하고 승가[僧]가 진실함인 그것이다. 그러므로 중도(中道)를 '대승'이라고 말한다."
[심연] [오후 12:35] 중도가 나오는군요.
[유전] [오후 12:38] 그 도는 치우치는 두 쪽을 떠났나니 , 극단의 양변을 여읜다는 것과 같은 표현이군요.
[유전] [오후 1:09] "나가 진실하고" 나가르주나(용수)의 중관에는 진실한 나 즉 참나가 없어서 중도로 불릴 수 없고 중관에 머물렀다고 봐야죠. 중도와 중관은 차이가 있습니다. 중관은 공사상이라는 극단에 치우쳐 참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유전] [오후 1:13] 불교신문2021.10.12.
[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127> 선종의 수행론-능가경의 수행론⑬집일체법품(集一切法品)4.진상은 멸하지 않는다.
등현스님: 초기불교, 설일체유부, 중관학파, 경량부 등 모든 불교학파가 참나(眞我)의 존재를 부정한다. 하지만 <능가경>에서는 “대혜여, 식(識)의 진상은 멸하지 아니하고 다만 업상(業相)이 멸한다. 만약 진상이 멸한다면 장식도 마땅히 멸할 것이다. 만약 장식이 멸한다면 곧 외도의 단멸론(斷滅論)과 다르지 않다. 대혜여, 저 모든 외도는 말하기를, ‘경계를 취하는 상속식(相續識)이 멸하는 것을 곧 무시 이래의 상속식이 멸한다’라고 (오해)한다”고 말한다.
[유전] [오후 1:19] 전식과 장식의 관계는 마치 원자와 원자로 이루어진 흙덩어리 같고, 금과 금사자의 관계와 같아서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 만일 다르다면 흙의 구성요소가 원자임을 말할 수 없고, 같다면 원자와 흙덩어리가 같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전식과 장식의 관계도 마찬가지여서 다르다면 장식은 전식의 원인이 될 수 없고, 같다면 전식이 멸할 때 전식과 함께 장식이 멸하여 외도의 단멸론과 같아진다. 그러므로 장식은 멸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능가경의 논리이다. 요컨대 진식이 멸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장식이 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연] [오후 3:08] <대반열반경 40권본 447쪽> "무상함을 죽이면 항상(유상)한 열반을 얻고, 괴로움을 죽이면 즐거움을 얻고 (일체개고가 열반적정으로 바뀜), 공함을 죽이면 참됨을 얻고(공함 속에 묘한 진리가 있음. 진공묘유) 내가 없음을 죽이면 참나(진아 眞我)를 얻을 것이니, 대왕이여, 만일 무상과 괴로움과 공함과 나 없음을 죽인 이는 나와 같을(견성성불. 대자대비심이라는 성품을 보는 자가 부처를 이룸) 것이오. 나도 무상과 괴로움과 공함과 나 없음을 죽이었으나 지옥에 들어가지 아니하였는데, 당신인들 어찌 지옥에 들어가리오."
[심연] [오전 2:57] <대반야경> 62. 실설품(實說品) ① 그때 구수 선현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다는 지극하여 매우 깊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유정도 얻을 수 없고, 유정의 시설도 얻을 수 없으면서, 유정들을 위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하여 나아간다 하니,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색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대할 수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공중에다 나무를 심는다면, 그것이 매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도 또한 이와 같이 유정들도 얻을 수 없고, 유정들의 시설도 얻을 수 없으면서, 그들을 위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하여 나아간다 하니,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심연] [오전 2:57]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그러하니라. 네 말과 같이 반야바라밀다는 지극하여 매우 깊느니라. 모든 보살마하살이 유정도 얻을 수 없고 유정의 시설도 얻을 수 없으면서, 유정들을 위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하여 나아가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니라. 선현아, 모든 보살마하살은 비록 유정과 그의 시설이 실제로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모든 유정들이 어리석고 뒤바뀐 생각으로 실제로 있다고 집착하여, 나고 죽는 길을 헤매면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기 때문에, 그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하여 나아가느니라.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그들의 나라는 집착을 끊어주고, 나고 죽는 뭇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심연] [오전 3:26] 대반야경 600권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무주상보시, 무주상자비죠. 무엇을 위해 닦거나, 어떤 경지에 들기위해 닦거나, 지식이나 명예나 권력을 위해 성품을 닦으면 이러한 것은 전부 공하고 허망함에 근거하여 닦는 것이니 허망하고 공한것에 의지말고 자비심을 닦으라는 것이죠. 그래서 일체처무심이죠. 허망하고 공한것에 의존하여 성품을 닦기 때문에 특정 경계가 오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치를 아무리 분석하고 법을 잘 알아도 결국 성품 밖에 구할것이 없습니다. 팔만대장경 전체가 뜻하는 바가 마음 밖에 따로이 구할 것이 없다죠. 여래장의 바탕(체)이 공하며, 공한것도 공하다고 하지만 작용은 있는 이유이며, 그래서 진공묘유입니다.
[유전] [오전 3:27]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하여 나아간다. [심연] [오전 3:28] 중생도 공하지만 그럼에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깨달음을 구하여 나아가는 것. 이것이 자비죠. 그렇게 깨닫고 보면 자신보다 먼저 깨달았던 수 많은 부처님들의 위신력이 만유에 뻗어 있음을 알게 되고, 최상에 비로자나불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공하지 않고 자비로 가득한 청정한 세상인 것입니다. [유전] [오전 3:29] 마음 밖에 따로 구할 것이 없다에서의 마음은 자비심이죠.
[심연] [오전 3:32] 불교는 자비심을 닦는 것, 예수교는 의로운 사랑을 닦는 것. 이것 밖에 구할것이 없다는 것이죠. 이 외에 무슨 경지니 권능이니 하는 것은 얻을 바 없는 것입니다.
[심연] [오전 3:36] <대보적경 中> 멀리 친척의 마을을 여의고 제일의인 자비심 닦으라. 어떠하면 마땅히 재빨리 보리의 큰 도를 증득할까. [심연] [오전 2:52] <금강삼매경> 식을 여의면 모든 법은 공한 것 이러므로 공한 곳을 따라서 말하나니 생기고 없어지는 모든 법을 없애고 언제나 열반에 머묾이여. 대비가 빼앗는 바이며 열반은 없어져서 머무르지 않나니 소취와 능취를 변화시켜 여래장에 들어가게 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