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특별히 더 사랑하셨던 이유는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과 겸손 그리고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항상 예수님 곁에서 그 분의 눈물을 닦아 드렸고

그 분의 고통과도 함께 했습니다.

성모님은 요한을 마치 둘째 아들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맡깁니다.

이후 요한은 성모님을 극진히 모시며 성모님의 죽음과 승천때까지 그 곁을 지킵니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되신 그리스도의 시 본문중


이 어스름하고 소름끼치는 빛 속에서 예수께서 요한을 마리아에게 주시고 마리아를 요한에게 맡기신다.

어머니가 더 잘보시려고 십자가 밑에 더 가까이 와 계시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숙이시고 어머니께 말씀하신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아들아,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마리아의 얼굴은 당신의 예수의 이 말씀을 듣고 훨씬 더 참혹하게 되었다.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어머니에게서 난 사람이신 하느님을 빼앗아가시는

예수께서 당신 어머니께 드릴 것이라고는 사람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가엾은 그 어머니는 조용히 울고만 계실 뿐이다.

정말 울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시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입은 아들을 위하여, 아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하여‥‥

입술에 미소를 띠고 있지만,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신다








요한과 다른 제자와의 사이에 또 한 가지 대비되는 것이 있다.

이 대비로 내가 특히 사랑하는 제자의 모습이 더 분명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요한은 '제자'가 되기 위하여 자기의 사고와 판단 방식까지도 버리는 사람이다.

그는 그의 인격, 즉 그가 선택되기 전에 가졌던 그 인격은 손톱만큼도 남기려고 하지 않고 전부 바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유다는 자기 자신을 버리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가 바치는 것은 실제적으로 바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교만과 관능성과 탐욕으로 병든 자아를 지니고 있다.

그는 그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는 증여(贈與)와 은총의 효과를 약화시킨다.
유다는 모든 실패한 사도의 전형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대단히 많다!

요한은 내게 대한 사랑으로 자기를 제물로 바치는 사람들의 전형이다. 네 본보기이다.
나와 내 어머니는 더 말할 나위 없는 제물이다. 우리를 따라 우리 수준에 이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불가능한 일이기까지 하다.

그것은 우리의 희생이 대단히 힘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요한은! 그는 동정녀, 순교자, 신앙 증거자, 복음 전도자, 활동으로나 명상으로 하느님과 하느님의 어머니를 섬기는

사람같이 나를 사랑하는 모든 부류의 사람이 본받을 수 있는 제물이다.

그는 모든 사람의 본보기가 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치를 따지는 여러 가지 방식을 살펴 보아라. 유다는 검토하고 토론하고 고집부린다.

그리고 굴종하는 것 같이 보일 때에도 사실에 있어서는 그의 정신상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런데 요한은 자기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유를 묻지 않으며,

내 마음에 드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이런 것이 본보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