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진 사람들이 어떤 심성의 사람들인지에 따라 다르지요. 그 사람들을 살리는 데에 어느 만큼 확고하게든 미필적이든 의도해서 기여했는지도 중요하고. 책임도나 기여도를 진실하게 따지는 이런 이치는, 법리라는 그 아류로도 잘 드러나 있으며, 재차 생각해 볼수록 아주 지당합니다.
asdfqwer(49.164)2023-02-26 11:41:00
답글
그리고 의도에서 명확히 배제된 경우라도 기여도는 성립할 수가 있습니다. 예컨대 장물로써 발생하는 도둑 입장의 참람한 이득은, 그 진정한 주인 덕택이고 그 점유 도둑에게 빚이지만, 그 주인 의도대로의 진정한 이득은 아닙니다. 그 도둑의 도둑질한 이득 자체는 그 진정한 주인에게는 손해지요. 도둑질당하는 경우 그 기정 손해 안에서 불행 중 다행인 전개를 바라는 것도 자연스러운 필연이고.
asdfqwer(49.164)2023-02-26 11:43:00
답글
순수한 의도로, 탄압에서 죽어갈 수많은 사람을 살린 사람을 종교를 이유로 비판해야 할까요?
익명(122.45)2023-02-27 02:25:00
답글
당신은, 정/악을 판별하는 데에는 무의미한 조건을 말하며 그런 조건만으로 정/악을 판별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살려진 사람들이 어떤 심성의 사람들인지에 따라 다르지요. 그 사람들을 살리는 데에 어느 만큼 확고하게든 미필적이든 의도해서 기여했는지도 중요하고. 책임도나 기여도를 진실하게 따지는 이런 이치는, 법리라는 그 아류로도 잘 드러나 있으며, 재차 생각해 볼수록 아주 지당합니다.
그리고 의도에서 명확히 배제된 경우라도 기여도는 성립할 수가 있습니다. 예컨대 장물로써 발생하는 도둑 입장의 참람한 이득은, 그 진정한 주인 덕택이고 그 점유 도둑에게 빚이지만, 그 주인 의도대로의 진정한 이득은 아닙니다. 그 도둑의 도둑질한 이득 자체는 그 진정한 주인에게는 손해지요. 도둑질당하는 경우 그 기정 손해 안에서 불행 중 다행인 전개를 바라는 것도 자연스러운 필연이고.
순수한 의도로, 탄압에서 죽어갈 수많은 사람을 살린 사람을 종교를 이유로 비판해야 할까요?
당신은, 정/악을 판별하는 데에는 무의미한 조건을 말하며 그런 조건만으로 정/악을 판별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