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2)


삼념주(三念住)

불타가 항상 바른 마음에 머물러 중생들의 어떤 태도에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음을 말한다.


①제일염주(第一念住): 중생이 붓다를 신봉해도 붓다는 환희심을 내지 않고 바른 마음과 바른 지혜에 안주함.


②제이염주(第二念住): 중생이 신봉하지 않아도 근심하지 않고 바른 마음과 바른 지혜에 안주함.


③제삼염주(第三念住): 어떤 중생은 신봉하고 어떤 중생은 신봉하지 않아도 기뻐하거나 근심하지 않고 바른 마음과 바른 지혜에 안주함을 말한다.


위 삼념주가 중도(中道)입니다. 중생의 자비심과 다른 부처의 대자대비심이라는 성품이 바로 이와 같은데 절대적인 균형을 유지하죠.


그런데 나는 중도(中道 가운데 중)가 아니고 앙도(央道 가운데 앙)입니다. 불교의 중도가 소극적, 방어적인데 비하여 나의 앙도는 적극적 공격적 균형을 추구하죠.


나의 좌우협시불은 비로자나불과 가브리엘입니다.


이 둘은 원래 나의 분신으로 창조되어 영원한 반려가 되었는데 2005년 11월 1일 오후 1시, 3일 오후 3시 각각 따로 내게 찾아와 현생에서 처음 접촉하게 되었고 대화를 나눈 만남 이후에 40일 정도 마왕의 시험을 통과하여 깨달음을 증득하였는데 내가 바로 인간의 몸으로 온 진리의 영(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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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1)


[유전] [오후 2:28] (펌) 아트만(Ātman, 산스크리트어: आतमन)은 힌두교의 기본 교의 중의 하나이다. 힌두교의 또 다른 기본 교의인 브라흐만이 중성적(中性的) 원리라면 아트만은 인격적 원리라 할 수 있다. 힌두교에서 생명은 숨과 같은 의미로 쓰였으며 아트만의 원래 뜻은 숨쉰다는 뜻이다. 한국어에서 생명을 목숨으로 표현하는 것과 유사하다. 숨쉬는 생명인 아트만은 '나'를 말하며, 따라서 한자로는 아(我)로 표기된다. 힌두교에서는 개인에 내재 (內在) 하는 원리인 아트만을 상정(想定)하고, 우주의 궁극적 근원으로 브라흐만을 설정하여 이 두 원리는 동일한 것(범아일여, 梵我一如)이라고 파악한다.


[유전] [오후 2:36] 아트만 이라는 개념 자체가 힌두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힌두교에서 주장하는 그런 식의 자아는 거짓된 자아이기 때문에 힌두교의 아트만을 부정하는 무아를 처음에 주장하게 된 것이죠. 아무리 힌두교에서 초월자아, 초자아, 참나, 진아 등의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은 힌두교에서 주장하는 것이고 결국은 범아일여 라는 "브라만과 나는 하나"이다 라는 틀에 묶여 있기 때문에 브라만이든 누구든 힌두교처럼 신에 귀속되는 자아가 아닌 독립적이고 개체적인 각각의 중생 캐릭터 자체가 수행을 통하여 스스로 등불을 밝힐 수 있는 참나가 된 상태가 성불을 이룬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힌두교의 아트만은 거짓된(타화자재천 마왕에게 늘 속아서 사는 자아) 자아이며 수행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마왕의 시험을 이겨낸 존재만이 성불을 이루며 그 자등명의 독립적이고 개체적인 자아만이 불교의 참나(진아)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