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05) - 필자: 유전
도덕경 14장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보려해도 볼 수 없으니 이름하여 이(夷)라한다.
들으려해도 들리지 않으니 이름하여 희(希)라한다.
손에 쥐려해도 얻지 못하니 이름하여 미(微)라한다.
此三者, 不可致詰, 故混而爲一
세가지를 발자국 따라 이어라. 따지고자(詰 따질 힐) 이르(詰 이를 치)는 것이 아니니
고로 합쳐서 하나로(爲一)하라.
(위 세 가지를 합치라고 했으니 그 해당 자구는 이희미(夷希微)인데 그것을 하나의 의미로 풀면 "동방의 명사수 이(夷)를 바라보며(希) 숨겨(微)놓는다"가 되겠다.)
其上不嘄 其下不昧, 繩繩不可名
(嘄 부르짖을 교,口+鳥/木 새가 나무에 앉아 우는 모습)
위로 부르짖는것이(솟대) 아니며 아래의 어둠도(흑점) 아니니
줄줄이 묶어 매달아 놓은 끈으로도 이름(표시) 할 수가 없다.
復歸於無物, 是謂無狀之狀, 無物之象. 是謂惚恍
과거로 다시 돌아간 물건도 아니요
이것은 문서(편지)없는(남겨짐이 없는) 문서이니라.
물질(물건)로 된것이 없는 형상이니
홀연한 마음속의 빛이라 할 수 있다.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우러러 맞이하려거든 머리만 있다고 단정하지 말며
따르려거든(발) 뒷모습만으로 지레 짐작 하지 말라.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
옛우상을 잡아들이는 방식의 도였으며
이로써 공손하게끔 거느리고 있다.
옛날 처음 이룬것을 알게 되었나니
이와 같이 도의 실마리로 삼으라.
위의 해석은 다른 사람들과의 이해와는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2300년전 시대 사람이 남겨 놓은 글이며 한자를 사용하였다고 해서 노자가 중국인이라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국의 옛 땅에는 이두식 표기법이 있었으며 그 이전에는 또 그 이전 방식으로의 표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윗글에서 차삼자(此三者), 세가지를 발자국처럼 따라가라 라고 말한 이희미(夷希微)의 뜻인 동방의 활든 이를 바라보며 숨겨 놓는다 라는 의미를 생각 해 보면 노자의 본명으로 알려진 "李 耳" 라는 사람은 한국 땅 태생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또한 위 도덕경 14장의 해석과 같이 솟대와 태양숭배(흑점) 삼족오 성황당등 매우 많은 종교 문화가 한국 고대 문화와 흡사 합니다.
이글은 특히 땅의 역사점 관점으로 보면 많은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으나 다른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도덕경의 해석은 어느 한가지로만 이해하는 무리수로는 전체적 해석을 할 수 없는 난이도가 존재합니다.
식자들은 이러한 해석을 어리석음으로 치부하다가 뒷마무리 해석은 아에 포기하는 엉터리 해석으로 결론을 맺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도저히 완역을 할 수 없는 경전입니다.
지금 나온 모든 해석을 한 식자들에게 도덕적 양심을 걸고 묻고 싶습니다. 앞의 해석과 뒤의 해석의 차이가 오류로 작용하여 전 영역에 걸쳐 드러납니다. 스스로 오류임을 알면서도 마무리 지(을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부인 할 작자는 없으리라 봅니다. 전부 그러합니다.
그러나 진정 도덕경을 오랜 기간 연구 해 본 자이거나 도덕경 전체 내용을 여러 차례 읽어 전체적 흐름을 알고 있는 자라면 아마 새로운 차원에서 내 해석이 다시 이해되리라 생각합니다.
한가지 이글을 쓰면서 걱정이 되는 사항이 있다면 도덕경의 해석에는 많은 인내와 언어적 혼란을 수 없이 겪은 후에 라야 가까이 할 수 있는 책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혼란을 잘못 이겨내거나 상식 밖의 일에 집착한다면 자기 정체성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일이 생기거나 혹여 번뇌라도 생긴다 싶은 사람은 각자의 종교에 따라 의지하거나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이것은 도덕경을 스스로 해석 하고자 하는 자에 대한 경고이며 극복 과제입니다.
(2006.12.06)
도덕경 12장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馳騁畋獵令 人心發狂 難得之貨令人行妨
是以聖人爲腹不爲目, 故去彼取此
오색 방울빛은 사람의 눈을 멀게하고 (五色令人目盲)
오음 방울소리는 사람의 귀를 먹게하고 (五音令人耳聾)
오미 방울맛은(식탐) 사람의 입을 상하게 하고 (五味令人口爽)
달리고 달리는 모든 수렵신호(방울)는 사람의 마음을 발광케 하고
얻기 힘든 재물로 방울을 달면 사람의 행동에 방해가 된다.
(馳騁畋獵令 人心發狂 難得之貨令人行妨)
그러므로 성인은 몸을 위하되 보기 좋은것만 찾지 않으니
고로 껍질(형체)은 지나가게 하고 발자국(흔적,경험)을 취한다.
(是以聖人爲腹不爲目, 故去彼取此)
방울은 사람의 신호가 아닌 기물을 이용한 신호체계를 뜻하며 특히 짐승(에일리언 포함)들은 맛을 통한 신호체계 또한 많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유전 23-06-12 15:16 지금 한국이 동이족이라는 것은 이夷 라는 글자가 활을 뜻하는 궁弓에 큰 대大로 이루어진 글자니까 일단 활을 잘 쏘는 민족이 아니면 동이족이라고 할 수 없고, 지금 전세계적으로 수십 년째 양궁에서 넘사벽으로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국가가 대한민국인데 이것이 진리가 역사하는 방식이자 도道임.
유전 23-06-12 17:29 (질문) 문재명 : 도교나 대순진리회, 증산도 같은거 믿으시나요? 유전: 도교의 시조가 노자인데 도교의 최고 경전인 도덕경은 당연히 진리의 한 축이고, 노자 또한 불교의 창조주라 할 수 있는 비로자나불에 버금가는 창조주급 신이어서 장생불사(오래 살고 궁극적으로 영혼이 죽지 않게 하는)를 관장하는 존재임.
도道를 언급한 문헌은 노자 이전에도 있었지만, 도라는 언급이 먼저 있어야만 노자가 진정한 도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기반 이후에 노자가 나와서 道를 5,001 글자로 설명한 것이고 도덕경 5,001 글자는 불경 8만4천 법문과 그 깊이가 같은데 다만 행하는 방편이 다를 뿐임. 도교는 생명존중이 바탕인데 어긋나면 더 많은 생명을 위해 무자비하게 학살함. 나쁜 것은 아니고 더 악한 짓을 하기 전에 귀천 시키고 그 행에 따라 축생으로 태어나게도 함. 지옥에도 보내는데 원래 축생도 자체가 축생지옥에 속함.
도교는 생명존중 사상, 불교는 생명존중이 자라서 자비심, 예수교는 자비심이 자라서 "네 몸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인데 도교와 예수교는 극단이 있기 때문에 불교의 불법이 우주 전체의 헌법과 같아서 극단이 아닌 중도(中道)를 기준으로 삼아 도교와 예수교도 각각 자신의 양심에 따라 판단하면 됨. 양심이 석가모니가 말한 팔정도임.
대순진리회나 증산도는 신통만 조금 있었을 뿐, 진리에 대해 설명한 적이 없음. 진리에서 보면 그냥 사이비임. 신통은 축생 에일리언도 다 함. 개나 소의 얼굴을 하고 신통을 부림. 소의 대표적인 표본이 서유기에 나오는 우(牛소 우)마왕 이고, 개의 대표적인 표본이 로마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로물루스인데 늑대 개에서 god이 되었지만 god을 거꾸로 하면 dog(개)임. 이런 방편이 진리가 역사하는 방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