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천주교도들은 제사 같이 당시 조선 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문화에 반기를 들었다. 또한 황사영 백서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완전히 처음 보는 낯선 종교가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은 당시 위정자들한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에 왔으면 한국의 당시 관습을 따라야 했다. 신주를 땅에 묻고 孔敎에 반기를 든 것은 당시 유학을 따르던 사대부 계층에게는 엄청난 도전과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고, 심지어 서양 제국주의와 연결된 선교사들이 조선 땅에 어떤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흥선대원군이나 당시의 같은 정치가라면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은 당연한 것으로 다가왔을 것이며, 이러한 현지에 대한 문화적인 이해, 맥락도 없이 무조건적인 선교 우선주의를 당시 조선 천주교는 실행했던 것이다.

정해놓은 게 있으면 그걸 따라야지, 전후 맥락을 무시한 채 선교를 하교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그것이 과연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이며, 얼마나 큰 반발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조선은 분명 성리학 이념에 기반하여 건국된 나라였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주자학이 교조화되어 편협해지기는 했지만, 그것은 근 400년 동안 조선을 안정적이고 복잡한 대외환경 속에서도 잘 운영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과연 천주교가 조선에 전해졌을 때 야기되는 사회적인 상황을 천주교는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인가. 19세기 말에 三南 지방을 휩쓸다시피 한 동학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당시 조선 민중들이 모두 카톨릭을 믿는 상황은 아니었고, 병인양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랑스는 자국의 선교사가 죽자 바로 군함을 보내 조선을 압박하였다. 어떤 종교인지도 모르고,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온 시스템을 뿌리부터 뒤엎으며, 개항할 상황, 개국할 상황이 아닌데도 계속해서 서양 세력과 연관되어 나라를 어지럽히는 건 조정이 볼 때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또한, 성리학은 처음부터 가톨릭에서 말하는 초월적인 인격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리학을 비롯한 유학은 유물론이며, 죽고 나서 기가 흩어지고 혼은 하늘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은 이 성리학과 주자, 공자를 신봉하고 있었는데도 초월적 인격신을 말하고 죽고 나서 구원을 받지 못한 이는 지옥에,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는 천국에 간다고 하는 이야기는 삿된 설로 밖에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무지한 백성들을 속이는 것이었으며, 유교의 이상인 대동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막는 잘못된 가르침이었다.

또한, 위에서는 남인의 대량숙청이 세도정치와 일제강점으로 이어지며 한국의 비극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이렇게 역사를 보는 것이야말로 침소봉대이며, 지극히 주관적인 시야이다. 남인과 조선의 근대화 이 양자 간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아직 입증된 적이 없으며, 조선이 쇄국이 아니라 개방을 했다 해도 조선이 구미열강의 식민지로 떨어지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남인만이 실학하고 연관이 있지도 않으며, 더 나아가 실학자들이 구체제의 전통주자학, 봉건사회가 아니라 새로운, 입헌민주주의나 산업화를 지항한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디까지나 주자학의 틀 안에서 조선을 개혁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미 정조는 자신을 대유(大儒)라고 일컬으며, 만천명월(萬千明月)의 주인옹(主人翁)이라고 하였다. 또한 대원군은 병인양요 이후 이미 서양 오랑캐로 더렵혀진 한강의 물을 서학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고 하였다. 만 백성의 어버이이신 조정에서 천주학을 믿지 말라고 했으면 믿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천주교를 믿는 무리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신념을 고수하였고, 그들의 태도는 당시의 위정자들로 하여금 이것은 한 번 해보자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게 하였다. 정조는 공자의 가르침이 바로 서면 사학은 저절로 사그라들 것이다라고 했지만, 천주교도들은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포교를 하려고 했으며 여기에는 제국주의 열강이었던 프랑스도 깊이 연루돼 있었다. 또한, 조정은 서학을 믿던 신자들에게 교화주의나 아니면 배교 같은 마지막의 기회를 부여하기까지 했고, 당시 조선의 천주교도들은 이를 따르지 않았고 모두 순교를 택했으니, 이것은 누가 누구를 탓할 필요가 없는 성격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