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은 삶이 힘들면 하나님이 고난을 주신거라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태도를 보면 그들이 겪는 고난은 자신이 만든 고난이다.

하루에 10시간씩 일해야 성취할 수 있는 과제가 있다고 해보자. 하나님이 고난을 주신거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은 이 과제를 성취하기 위해, 10시간의 일이 아닌, 10시간의 기도와 자기위로만 한다. 그리고 이런 기독교인들은 왜 자기가 노력했는데도 과제를 성취할 수 없나고 하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셔서 고난을 주신거라고 착각한다.

성경에 인물들은 고난을 겪는다. 하지만 모세와 다윗같은 고난을 겪는 인물들은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도 지도자 같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고난을 겪고 있다.

애초에 고난이라는 것은 성공하기 위해서 반드시 오는 과정이다. 일론 머스크 같은 사업가들은 사업을 성공 시키기 위해 워라벨은 있을 수가 없고, 홀로 고독한 시간을 오랫동안 보내야한다. 그런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비로소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고난을 겪은 성경 인물들도 그러한 고난을 겪었기에 성경에 실리고, 지도자 역할을 하는거다.

하지만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겪는 고난은 위와 같은 인물들의 고난이 아니다. 즉, 성공을 달성하기 위한 고난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겪는 고난은 기복신앙에 의해서 얻는 고난인 것이다.

자기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없고, 누군가가 해결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이런 태도는 삶을 변하시키지 않고, 계속 삶을 힘들게 한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고난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인들의 고난은 성경은 물론 어느 자서전에서도 실릴만한 내용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고난을 요셉의 고난하고 동급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요셉처럼 결국 성공하는 것이 아닌, 변함없는 삶을 산다.

교회 목사들은 돈을 벌기 위해 그런 거짓 고난들을 하나님이 준 고난이라고 거짓말하며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열심히 다녀 자신의 재산을 불릴 수 있도록 한다.



잠언 6:5, 9-11 KRV
[5]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10]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11]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하나님은 지혜를 주신다고 하지만,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면 지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