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드냐?


세상의 모든 이치가 한번에 이해가 되는 대단한 깨달음이 번뜩이는 비밀스런 '말'? 이런 걸 진리로 생각하잖아?


그리고 그 진리를 캐내서 가장 안정적인 정신상태에 돌입하려고 애초에 진리를 파는 거잖아? 그치?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 왜 진리가 필요해? 결국 목적은 하나야. 안정적인 마음 상태를 가지고 싶으니까


예수님 부처님 찾는 거 아니겠어? 그게 아니라면 살다 죽어서 당장 천국 가는 데에 전력을 쏟아야지 왜 굳이 현생을 살아?


365일 잠도 안 자고 노가다만 뛰다가 빨리 졸도하는 것도 천국 가는 방법 아냐? 왜 그렇겐 못하냐고.


결국 종교적 진리라는 건 현생을 살기 위해 필요한 마음적 도구가 필요하니까 그런 거란 말이지.




그런데 과연 이 진리가 누군가를 구해줄 수 있는가? 나는 회의적이야


왜냐하면 서로 상충하는 개념이 너무 많아

ㄴ 1. 끝까지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ㄴ 2. 안 될 일은 때려죽여도 안 된다.



이 구도에서 보자. (1) (2)이 진리가 아니야? 진리가 아니라고 반박할 근거가 있어?

ㄴ 1. 끝까지 노력해서 아둥바둥 기어올라가면 이루어지는 거? 이거 진리야. 법칙이 그래. 그러니까 애초에 노력에 대한 믿음이 있는 거 아냐?

ㄴ 2. 근데 반대로, 안 될 일은 때려죽여도 안 된다. 이것도 진리야. 진리 아니야? 너 노력으로 계절을 바꿀 수 있어? 인간의 개인 노력으로 4계절의 흐름을, "아 난 여름이 졸라 싫으니까 노력해서 봄으로만 살래" 이거 돼? 안 된다고. 때려 죽여도 안 될 일은 안 되는 거야. 이것도 진리란 말야.



그럼 우리가 현생을 살 때 진리를 두고 고민하는 관점은 결국 "얼마나 내 통제하에 있는 부분에서 노력을 다할 것인가"라는 명제인데

ㄴ 웃긴 건 이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잖아.

ㄴ 내가 예를 들어서 최선을 다해 미국 대통령이 되려고 노력을 한다 치자. 불가능함?

ㄴ 일단 국적을 바꿔서 아시안 미국인으로 등재하고, 정치에 입문을 해서 입지를 다지면, 되긴 되겠지. 그 길 자체가 막혀 있는 건 아니잖아.

ㄴ 근데 세상은 삶을 살아가는 다수의 변수에 의해 통제될 수 있어.

ㄴ 불가능하지 않다고 해서 그게 또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냐.


ㄴ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팔자" 타령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10년 준비하고도 떨어지는 사람이 있어

ㄴ 어? 그런데 웃기게도 붕어빵 장사 하다가 연 매출이 2억이 되는 대박이 나!

ㄴ 인생이라는 게 이렇게나 웃긴 거란 말야.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떤 진리가 반박불가능한 논리적 견고함으로 무장한다고 해서

ㄴ 그 진리를 나의 인생 모토로 삼아봤자

ㄴ 반드시 그 진리대로 내 인생이 풀리는 건 아닐 수 있다라는 거야

ㄴ 그렇잖아. 귀신 봤다는 사람들은 있어도, 예수님 봤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

ㄴ 기독교는 누구도 본 적 없는 예수님 믿으면서, 누군가는 봤다고 주장하는 귀신은 안 믿으려 해

ㄴ 그 믿음 속에서 구원을 바라고 거기서 현생을 살기 위한 동력을 취득하는 구조란 말야

ㄴ 근데 죽고 봤더니 예수가 없어. 다 누군가가 구축한 개구라로 밝혀졌다 치자. 

ㄴ 그럼 그건 진리가 아니었던 거지. 하지만?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보려는 그 믿음이 결국 현생을 충실히 살게 한 동력이 됐잖아



거짓된 진리조차 삶을 살아가기 위한 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거짓말 속에서도 구원이 성립하는 거야
ㄴ 그러니까 골 때린다는 거지, 인생이.
ㄴ 진리가 생각보다 밥 안 먹여 줘.
ㄴ 진리는 단수가 아니야. 진리는 복수야.
ㄴ 그리고 그 진리는 서로 충돌해. 어떤 진리 A가 어떤 진리 B와 충돌할 수 있는 거야.
ㄴ 그런데 그렇다고 진리 A B가 그럼 유사 진리고 진리가 아니게 되는 거야? 그건 또 아니라는 거지. 엄연히 진리 맞다고.
ㄴ 그런데 그 진리가 꼭 내 인생에 힘을 북돋아주느냐? 그게 애매한 거야.
ㄴ 그러니까 사람들이 노력파 VS 운칠기삼파로 나뉘는 거 같아.
ㄴ 누구는 노력해서 인생 폈는데, 누군 노력을 해도 인생이 나락으로만 가거든. 그러다 운 좋아서 성공하고..
ㄴ 결국 결과론적인 부분에 대한 원인 규명을 진리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때 생기는 일관성 문제 앞에서
ㄴ 우린 특정 사례를 귀납한 일반론만을 들고 와서는
ㄴ 마치 저 사람이 저렇게 성공했으니까, 나도 저렇게 성공할 수 있겠다! 라는 가능성을 발견하다가
ㄴ 그게 나와 안 맞는 성공방정식인 걸 뒤늦게 깨닫고는 스스로의 사고방식에 회의를 가지게 되는 패턴인 거야.
ㄴ 누군 노력으로 성공할 팔자고, 누군 운으로 성공할 팔자고, 누군 예수님 만나서, 누군 부처님 만나서 성공할 팔자인 거지.
ㄴ 다 다른 거야. 진리는 다른 거야. 하지만 그 서로 다른 진리가 진리가 아닌 것도 아니야.
ㄴ 심지어 거짓말이라고 해도 거짓말을 진심으로 믿으면 사람은 거기서 살아갈 동력을 얻는 거지.


정리하자면,
ㄴ 이 글은 진리를 인간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수단'으로 간주하는 글이야
ㄴ 그러니까 결국 진리가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축복이냐의 관점은 사실 종교적 색채가 더 강한 스탠스고
ㄴ 결국은 믿는 대로 믿게 되고, 믿는 대로 살게 된다는 거지
ㄴ 구원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기준은 결국 전적으로 내 감정의 문제란 말야
ㄴ 내가 동양철학 파다가 구원받았다고 느끼면 그걸 구원이라 생각하는 거고, 예수 믿다가 구원 받았다고 느끼면 그게 지 딴엔 구원인 거야
ㄴ 그렇지 않냐?
ㄴ 누군가가 "지구에 사는 모든 인류가 사실은 구원 받은 존재다. 이게 천국이다." 이러면 납득할래?
ㄴ 왜 납득 못해? 납득을 못하겠다는 반론은? 근거는? 없잖아. 그런데도 생리적으로 부정하고 싶은 이 기분의 출처는 뭐냐고
ㄴ 다 자기 마음이라는 거지. 내 마음은 어떤 신이 내려와서 무한한 축복의 빛을 내려서 근심과 걱정이 "0" 상태에 다다르는 것을 구원이라 하겠지만
ㄴ 그 구원된 결과가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우린 어디까지 그걸 '마음이 인정하는 구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거야.
ㄴ 오늘 하루 3시 세끼 밥 챙겨먹고, 바퀴벌레와 동거를 하지만 그래도 집이 있다는 이 사실 자체가 신이 주신 '구원'이라면?
ㄴ 넌 그 구원에 납득하고 고개 숙일 수 있어? 하다 못해 내가 죽을 것을 대신해서 내 자식이 죽은 것을 신의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ㄴ 거기에 쉽게 감사할 수 있어?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 말하는 상황이잖아.
ㄴ 그러니까 웃긴 거라고. 이 진리와 구원이라는 프레임이. 구원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내 마음에 들면 구원이라고 치는 거잖아.
ㄴ 다 자기 멋대로인 거지. 말장난 치는 거야.



결국 진리가 너를 구원하는 게 아니라

ㄴ 너의 마음이 너를 구원하는 거야

ㄴ 네가 거짓말이라도 삶을 살아갈 때 유리한 수단으로 간주하고 살아갈 동기가 된다면 그것도 구원이잖아

ㄴ "내 인생이 힘든 이유는 내가 전생에 악업을 너무 쌓아서야! 그렇군! 그러니까 열심히 살아야지!" 이럴 수도 있다는 거야

ㄴ 하지만 똑같은 논리로 "그러니까 내 인생 ㅗ같아!" 이럴 수도 있는 거거든.

ㄴ 똑같은 진리적 상황이 주워졌음에도, 왜 누구는 긍정론자가 되고 누구는 부정론자가 되느냐

ㄴ 관점의 차이인 거고, 내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 거지.

ㄴ 그래서 진리는 말야. 단수가 아니야. 진리는 복수야.

ㄴ 그리고 그 복수의 진리 속에서 얼마나 내 입맛에 맞는 진리 골라가지고 인생을 살아갈 동기로 만들어내느냐

ㄴ 이게 구원의 정체인거지.

ㄴ 그러니까 구원 받으려면 구원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입장을 벗어나서

ㄴ 내 스스로가 그것을 구원이라고 강하게 받아들일 능동적 입장으로 전환해야 해!

ㄴ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하는 게 아니야. 절대로!!

ㄴ 내 마음만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 거야. 그것이 구원이라는 내 믿음, 내 고집, 내 생각이 나를 천국과 지옥으로 가르는 거라고.

ㄴ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