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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하지만 실제로 행복해지기는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믿는 이들도 불행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전쟁과 착취 그리고 질병과 재난이 끊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어찌하여 이렇게 세상이 고통과 괴로움만 가득하냐고 불만을 말하기도 합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일부러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여 기쁨을 느끼는 존재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적의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연대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기뻐할 때 기뻐해주고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해준다면 그리고 내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여겨준다면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의 어려움에도 그를 보살펴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고통과 아픔을 느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고통에 정작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끼치면 분내어 화를 내고 자신의 이러한 고통이 왜 생기냐며 원망을 합니다.

자신의 괴로움은 크게 느껴지지만 다른 이의 고통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에덴에서의 아담은 하나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으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뱀이 상징하는 마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배신하였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마귀를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자신도 하나님처럼 될수있다는 망상에 빠져 악을 선으로 바꾸고자 하였습니다.

어차피 악이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니 자기 마음대로 악을 선으로 바꿀수 있으려면 하나님께 대적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반란이 있었고 수많은 천사들이 패배하여 어두운 곳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아담이라는 칭호는 그리스도에게도 적용됨으로 처음 아담이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었는 지를 알게 해줍니다.


그는 모든 들짐승과 모든 새들의 이름을 지어줄 수 있었는데 이것은 단순한 이름이 아닌 지위나 역할 같은 특별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도 상징이며 하늘과 땅에 사는 존재들일 것입니다.


죽을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는 저주를 받아 쫒겨났으며 자신들이 선택했던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들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마귀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자녀들을 멸망에서 구해주실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보내시어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바람을 피면 그 실망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분노로 인해 미칠 정도로 화가 나며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아픔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이나 아내가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31장 32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남편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온갖 거짓과 유혹 그리고 고통이 있는 이유는 어떤 거짓과 유혹도 이기고 고통을 느끼면서 다른 이의 고통도 알 수 있기를 바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 아담과 하와는 마귀에게 미혹되어 죽게 되었지만 험난한 세상에서 마귀의 각종 시험을 받아 단련된 사람들은 다시 속지도 않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고통을 참고 기다려주셨는 지 알게되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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