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이제 좀 더 깊이 들어가, 왜 그들이 이원론적인 “진실”을 수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무엇 때문에, 이원론적인 진실을 수호해야 했을까요?


먼저, 우리는 추락한 존재들이 만들어놓은 환상, 즉 절대적인 진실이 말로 표현될 수 있다는 환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히, 지구처럼 물질의 밀도가 높은 행성에서는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다시, 왜 예수는 자신의 가르침을 받아 적지 못하게 했을까요? 그 이유는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상승 마스터로서의 자신을 내면에서 직접적으로 체험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직접적이고도, 신비주의적인 체험이 바로 물질의 밀도가 높은 행성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절대적인 참조 틀이 되는 것입니다. 말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참조 틀을 결코 제공해 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유일한 참된 진실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함이 있는 토대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락한 존재들은 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그들의 궁극적인 열망이 절대적인 힘을 갖는 것이며, 만약 절대적인 진실에 기초한,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러한 힘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이원성 속에는 언제나 두 개의 극성들이 존재하므로, 이원론적인 모든 추론은 어떤 것이든, 그 속에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에 도달하게 됩니다. 추락한 존재들이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교리를 만들어 내자마자, 그 교리 속에는 어떠한 모순,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많은 모순들이 내재되게 됩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 순간에, 여러분은 동시에 많은 모순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신이 주장하는 진실을 지속적으로 고수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물론, 진실을 정의하는 것과 관련하여,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여러분이 궁극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은 절대로 잘못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말이든, 여러분이 하는 말이 틀렸다고 밝혀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는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심지어 사소한 내용이라도 틀렸다고 밝혀진다면,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여러분의 전체적인 주장이 위협을 받게 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것이 바로 가톨릭교회가 처해 있던 입장이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가톨릭교회가 절대 오류가 없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강하게 억압하는 것이 특히 중요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위가 낮은 하위의 추락한 존재들은 내가 지금 막 설명한 내용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절대적인 진실이 위협받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방어해야 한다는 사실에 심한 좌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체성 영역에 존재하고 있는, 상위의 추락한 존재들 가운데 일부는 말로 하는 모든 진술은 모순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그들은 분명히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원성을 벗어난 것을, 이들이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절대적인 진실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이들은 실제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가능한 많은 혼란을 조성하고, 누군가가 지구를 혼란스럽게 만들 절대적인 진실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실, 단일의 요소로서, 상대적인 진실을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이 행성에 많은 혼란을 초래해온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종교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 기본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변명하는데 몰두할 수밖에 없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과정에 몰두해 있는 이유를 이것이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가톨릭교회가 이 싸움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이유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아주 초창기에서부터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를 반대하는 것을 잠시 무력으로 억압할 수는 있지만, 무한정 계속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 결과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추락한 존재들은 절대적인 진실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 데 있어, 이들은 상대적인 하나의 주장을 유일한 진실로 격상시키게 되며, 동시에 설명하기도 어려운, 여러 가지 모순되는 것들(contradictions)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들이 벌이는 논쟁은 더한층 복잡해지고, 부자연스러워지게 됩니다.


한 가지 사례는 예수를 우리들보다 훨씬 위에 있는, 최고의 신분을 갖고 있는 어떤 존재로 올려놓으려고 합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예수가 신의 아들(god's son)이라고 했다가, 그다음에는 신의 유일한 아들(god's only son)이라고, 그다음에는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에서 나왔다고, 즉 창조된 자(者)가 아니라, “아버지의 정수로부터 유일하게 태어난 자(者)”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리우스 논쟁(Arian controversy)을 불러오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리우스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가 아들이었다면, 아들이라는 개념 그 자체가 누군가가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가 태어났던 시작이 있었다면, 예수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가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로부터 나올 수가 없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무리의 추락한 존재들은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이라는 인위적인 개념을 만들어냈으며, 또 다른 추락한 존재들은 아들이 시작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들은 지금 예수와 아버지가 동일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 그리스의 용어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동일 본질)”에 대한 해석을 포함하여, 사사건건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점차적으로 삼위일체(trinity), 즉 신(神)은 3개의 존재로 표현될 수 있다는 개념으로 이어졌습니다. 만약 이러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해 줄 수 있다면, 여러분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진실은 창조주는 나뉘지 않은, 하나의 존재이지만,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의식의 불꽃을 자신의 분신들인, 자의식을 지닌 모든 존재들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단지 이러한 분신들 중에 한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예수가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시작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보편적인 그리스도 의식은 아버지로부터 최초로 태어났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개별적인 분신들을 창조하기 이전에, 창조주는 이러한 보편적인 의식을 먼저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보편적인 그리스도 의식이 지니고 있는 목적은 개별적인 공동 창조자들이 이원성을 포함하여, 자유의지를 체험하고, 근원과 하나가 되어 있는 상태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옵션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의식을 통해 극복할 수 없는 것을 이원성 속에서 창조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서의 진정한 의문은 “추락한 존재들이 자신들이 정의해 놓은 인위적인 개념들을 고수하는데,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어떠한 개념을 고수하는 것이 마치 삶과 죽음의 문제처럼 보이게 될까요? 또다시, 그것은 추락한 존재들이 만약 어떠한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절대 오류가 없다는 기운(aura)을 정말로 상실하게 될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야망을 가진 신흥의 파워엘리트들은 대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기존의 파워엘리트가 만들어 놓은 교리 속에서 모순되는 것들을 찾아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추락한 그룹들 간의 이러한 싸움에서, 논쟁은 점차적으로 대개 복잡해지고, 또한 부자연스러워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동일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모순을 부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추락한 존재들이 처음에는 모순을 설명하거나, 언제나 변명하게 되지만, 만약 그렇게 할 수가 없다면, 그들은 사람들이 그러한 모순을 부정하게 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만약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그다음 단계는 일종의 무력으로, 즉 십자군 전쟁, 종교재판, 기타 등등처럼, 폭력으로 빠르게 이어지는 무력을 행사하게 될 것입니다. 과학이 이러한 패턴으로부터 우리가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생각하나요? 글쎄요, 다시 생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