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자유에 이르는 길 33"에서 발췌



비이원론적인 방식으로 이원론적인 사람들에게 반응하는 방법을 입증하는 것이 붓다와 예수 모두의 임무의 일부였습니다. 그것이 예수가 여러분에게 악에 저항하지 말고 다른 뺨을 돌리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여러분에게 현실적인 예를 주겠습니다. 이 행성에서 이원론적인 투쟁이 가장 오래 외부로 나타난(outplayed) 곳들 중의 한 곳이 중동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서로 반대하고 이 모두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누구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이유는 그것이 이 행성에서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매우 오랫동안 그것을 계속 하고 있는 여러 파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한 그룹이 다른 그룹에 의해서 저질러진 공격에 대한 복수를 추구하고 있는 하향 나선입니다. 하지만 그 공격들은 첫 번째 그룹에 의해서 저질러진 공격에 대한 보복의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각 측은 격분하여 아무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보복에 보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정말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양쪽이 분리의 환상을 서로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볼 수 있습니까? 한 쪽이 다른 쪽의 환상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반응을 보이기를 거부할 때까지 아무것도 나선을 부술 수 없습니다. A 그룹이 B 그룹에 엄청난 증오를 쌓았다고 말하겠습니다(its 구성원들이 나쁜 사람들이고 그들 자신의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느끼면서). 어느 시점에 증오의 자기 강화하는 나선이 발화점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A 그룹의 가장 약한 구성원들 중의 일부가(그들은 그들 자신을 가장 강한 구성원들로 봅니다) B 그룹에 대해 폭력 행위를 저지릅니다. B 그룹은 A 그룹의 구성원들이 나쁜 사람들이고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추론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보복으로 폭력 행위를 저지릅니다. B 그룹의 구성원들이 A 그룹의 구성원들의 마음으로 방금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들은 B 그룹이 그들의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는 나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A 그룹의 환상을 강화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두 그룹 사이에 근본적인 분리의 환상을 강화했습니다. 따라서, A 그룹은 첫 번째 폭력 행위를 저질렀던 것에 그리고 B 그룹의 보복에 대해 보복을 추구하는 것에 정당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알기 전에, 몇 천 년이 무수한 보복 행위로 지나갔고 어느 쪽도 어떤 진짜 진전을 하지 못하면서 무수한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나선을 부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