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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 22:37)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기쁨뿐 아니라 그분의 고통까지 이해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창 6:5-7)
이 말씀 속에 기록된 하나님의 한탄과 근심을 진정으로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아픔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으며,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고통을 몸소 경험했습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6)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호 6:7)
에덴에서 아담이 하나님께 패역한 것처럼,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죄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호 4:1-2)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큰 고통을 느끼십니다. 그 고통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아픔을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아버지의 그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마 20:22)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죄악을 없애고 아름다운 세상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그리스도처럼, 하나님께서는 더 큰 아픔을 감내하시며 자녀들을 위해 참으십니다.
세상이 멸망하면 더 이상 자녀를 얻을 수 없기에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산모가 고통 속에 아이를 낳음으로 더욱 사랑하듯, 하나님께서도 그 고통 속에서 얻은 자녀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모든 고통을 감수하십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고통만을 말하며 원망하거나 배신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끝내 배반했듯,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사랑하며 기다리십니다.
“내가 이제부터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마 26:29)
하나님께서 슬퍼하시는데 우리가 즐기고 웃으며 죄 가운데 사는 것은 올바른 자녀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눅 19:41)
회개하지 않아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뜻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 6:6)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참으시며,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고, 그 심판을 통해 악은 사라지며, 거짓과 해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날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며, 선을 구하던 사람들이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악을 행하면서 세상의 악을 욕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악을 버리고 바르게 살 때,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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