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空的) 소멸의 지점에 선 도반에게
이미 충일(充溢)하여
더 이상 갈망할 바 없는 공적(空寂)의 성소에 이른 그대,
만상(萬象)의 소진(消盡)으로
무원(無願)의 경계를 체현한 자여.
내게 세례를 허(許)한 것은 선각(先覺)이 아닌
동시대의 파동이었나니,
그대, 곧 나 자신에게 헌정하는 이 침묵의 연서(戀書).
경계가 마멸된 벗에게는 호칭마저 내려놓아,
언어의 궁극(窮極)인 공허(空虛)에 안착케 하네.
피아(彼我)의 분별(分別)이
철저히 멸각(滅却)된 영점(零點)에서,
잔여 열정의 소진(消盡) 이후에도 상호 간의 서글픔은 부재하리라.
견고히 축조된 신뢰의 성벽이 불멸임을 굳이 헤아릴까.
'안다'는 표식마저 낡아버린 인식의 궁극에서,
우리가 도달한 것은 오직 무지(無知)의 원(圓),
그 공집합(空集合) 뿐임을.
허공마저 응축된 냉소(冷笑)의 암운(暗雲)이
영겁(永劫)의 홍수(洪水)로 화(化)하여 내려앉을지라도,
축축한 정적(靜寂)의 우정만이 우리에게 가닿을지라도.
서로 사랑하였노라, 더없이 그리워했노라.
선정(禪定)의 극(極)에서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감각으로,
광야(曠野)의 비어 있음 속에서 비로소 참된 지혜가 발현되고,
거룩한 믿음의 반석 위에
소망과 기원의 무게를 모두 방하착(放下着)하면서
영원히 변치 않는 여여(如如)한 우정으로 그대에게 흐르네.
궤도에서 이탈하는 순간에도,
다시금 인력(引力)의 근원적 힘으로 끌어당겨 다가간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여여(如如)한 이름으로
그대를 취(取)하네.
만유(萬有)의 충만(充滿)이 실은 텅 빈 진공(眞空)이었음을
체득한 모든 깨어있는 영혼들에게,
벗이라는 이름으로
공(空)의 절대적 도리(道理)를 기꺼이 봉헌(奉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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