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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는 단순한 도시의 멸망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악한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들의 심판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후대의 모든 세대에 주신 엄중한 경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땅 가까이 자리한 사해(死海)를 통해 이 진리를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해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죽음의 바다’로, 죄로 인해 멸망한 세상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염도가 너무 높아 생명체가 살기 힘들며, 사람은 힘을 들이지 않아도 그 위에 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창 19:26)
사해가 소금으로 가득한 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롯의 아내의 최후를 기억하게 하시려는 듯합니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그녀의 모습은, 과거의 세속적 욕망과 죄된 세상에 미련을 두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사해는 해수면보다 400미터 이상 낮은,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점입니다. 상징적으로 바다는 세상을, 그중 가장 낮은 곳은 하늘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거부하고 결국 은혜로부터 멀어지는 인간들을 나타낼 것입니다.
불과 소금은 모두 정화의 상징입니다. 불은 죄를 태워 없애는 심판의 도구이며, 소금은 썩지 않게 하는 거룩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로 세상을 심판하시되, 동시에 소금과 같이 남겨진 흔적을 통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사해는 그 심판과 정화의 상징으로, 지금도 조용히 그 의미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32)
이 세상에는 의인을 찾기 어려울 만큼 악이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에 살면서도 감사하지 않고, 그분을 알기를 거부하며, 오히려 거짓의 아버지인 마귀의 말에 귀 기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함으로써 스스로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만 가득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했더라면 마귀의 거짓에 분노할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질책하셨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지금 종교지도자들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곳곳에 당신의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성경의 사건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자연과 역사 속에서 그 의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음을 낮추고 세상을 유심히 바라본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와 구원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겸손히 만물 속에 감추어 두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이 세상이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목적과 사랑으로 창조하셨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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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주 내 발 길 인도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