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거의 3년에 걸쳐,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난 후, 어느 날 예수는 자신이 겪어야 하는 과정 중에서 이 단계가 완료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히말라야의 산들을 향해 걷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어느 불교사원에 도착했습니다. 이 사원은 히말라야산맥의 산기슭에 위치해 있었으며, 아주 특별한 전통이 이 사원에 있었으므로, 예수는 이 사원을 선택했습니다. 이 사원에는 승려들을 위한 일반적인 수련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특별한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사원 주위에는 동굴들이 아주 많이 있었으며, 이러한 동굴들 중에서 많은 동굴들에는 승려들이 외부와는 철저히 고립된 채, 대개는 몇 년 동안 다른 사람들을 보거나, 말조차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승려들이 동굴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사원 측에서는 동굴로 음식을 가져다주었지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커다란 침묵을 깨고 언제 동굴 밖으로 나오게 될지는 그들 스스로가 결정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는 자신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자기 때문에 내가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고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지만, 이것은 예수가 꼭 해야만 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단지 예수를 돕기 위해 거기에 있을 뿐이며, 사원에 머물러 있으면서 기꺼이 음식을 가져다주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며, 어느 날 나는 예수가 개인적으로 사용하게 될 동굴의 입구까지 따라갔으며, 그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우리가 언제 다시 보게 될지는 기약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몇 년 간에 걸쳐, 나는 하루걸러 음식을 가져다주었지만, 내가 다음번에 갔을 때, 음식이 없어지는 것 이외에, 내가 그를 보거나, 그가 살아 있다는 어떠한 징후조차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여러 차례 3주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던 적이 있었으며, 그때마다 나는 그가 살아 있는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는 예수와 파장을 맞추는 법을 배웠으며, 마침내 그가 음식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에는 음식을 가져다주지 않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동안, 나의 성장 또한 멈춰 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원에 있던 승려들 가운데 한 명과 스승-제자(당시에는 “구루-첼라”라고 불렀음)의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그 승려가 팔과 다리에 특이한 상처를 입고, 식당에 있는 것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단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러한 상처들이 말끔하게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처들이 자연스럽게 치유되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고 싶다고 했으며, 그는 나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고 난 후, “좋아”라고 대답했습니다.


내 멘토(승려)는 인도에서 자랐으며, 어린 시절부터 힌두교의 성자(聖者)와 스승들에게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10살이 되던 해에, 그는 집을 떠나 여러 스승들을 찾아다니면서, 온갖 영적인 기법들을 수련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몸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어느 스승 밑에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늘날 (이슬람교·바라문교 등의) 고행하는 수도자들(fakirs : 苦行僧)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며, 이들은 못 위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칼로 몸을 찌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스터는 이를 훨씬 뛰어넘어, 자신의 심장 박동 수, 호흡, 맥박과 혈압조차도 통제할 수가 있었습니다.


내 멘토는 이 스승 밑에서 여러 해를 배웠지만, 스승이 떠난 후(대다수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죽은 후), 그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으며, 마침내 이 사원으로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이 특별한 사원에 왜 있었는지를 몰랐지만, 나를 보고 난 이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내 몸을 통제하는 법, 특히 고통에 대한 반응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았지만, 이것이 나중에 예수가 마지막 사명 수행하는 단계에서 예수에게 도움을 줄 거라는 사실을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예수가 동굴에서 홀로 지내는 동안, 나는 내 멘토로부터 육체에 대한 모든 것, 그리고 육체를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것은 점진적인 프로그램이었으며, 처음에는 이 프로그램이 나에게 정말로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육체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관점을 크게 바꾸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구에 처음 육화한 이래로, 나는 인간의 몸을 제약적인 도구라고 여기는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키워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내가 정상적인 행성들에서 가졌던 몸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었으며, 또 부분적으로는 처음으로 육화했을 때(그리고 그 이후의 육화들에서), 루시퍼가 내 몸에 가했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에 기인하고 있었습니다.


내 멘토는 그러한 느낌들을 철저하게 버려야 하며, 인간의 몸을 현재의 형태 그대로 충분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영적인 사람들이 몸을 다루는 데에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으며, 그중에서 어느 하나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는 의식적인 당신(Conscious You)이 육체와 동일시하지 않음으로써, 육체에 대한 모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능한 과정으로, 대부분의 영적인 사람들이 택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결국 육체를 남겨두고 떠나야 하므로,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지는데 잘못된 것은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 생에서 해야 했던 사명과 관련하여, 이러한 접근 방식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접근 방식으로 인해, 육체를 하잖게 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육체를 우습게 여기지 않아야만, 육체적인 과정들을 숙달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절대로 그냥 이루어지지 않으며, 내가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는 육체에 대한 숙달이 꼭 필요하므로, 이러한 접근 방식을 택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육체를 충분히 받아들이는 방식을 택해야 했으며, 현재 상태에서 육체와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이것을 배우는데 일 년 이상이 걸렸으며, 그 후 마침내 나는 내 육체를 받아들이고, 육체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와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멘토는 나에게 점진적인 프로그램을 밟아가도록 했으며, 따라서 처음에는 꽤 부드럽게 시작했지만, 마지막에는 엄청나게 과격해졌습니다. 여기에는 그야말로 육체에 가해지는 온갖 종류의 고통, 심지어 내가 처음 육화했을 때, 루시퍼가 가했던 총체적인 고통마저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쌓아가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육체가 추위에 반응하는 법, 즉 히말라야의 겨울을 체험하는 비교적 쉬운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에 걸쳐, 나는 스스로 나 자신에게 고통을 가해야 했으며, 내 멘토는 루시퍼가 했던 것처럼, 나에게 채찍질을 가함으로써, 내가 총체적인 고통을 당하도록 했습니다.


루시퍼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여길 정도로, 루시퍼로부터 당했던 체험이 되살아났지만, 나는 마침내 가해지고 있는 고통에 대해, 감정, 정신 혹은 정체성의 단계에서 반응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여러 차례 가장 극심한 육체적인 고통을 견뎌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중심을 유지한 채, 완벽하게 차분한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내 멘토가 채찍질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불교 경전을 차분하게 암송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내 멘토가 채찍질을 하는 와중에도, 그날그날의 일상적인 대화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지나치게 가혹해 보인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지만, 흔히 하는 말처럼, “나에게는 더 좋은 선택이 없었으며”, 예수와 내가 루시퍼와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었을 때, 이것은 아주 유용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