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수는 (분명히) 자신이 설교하는 것을 사람들이 받아 적을 수 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자신이 하는 말이나, 행위들을 제자들이 받아 적지 못하게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거기에는 두 가지 주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뭔가를 받아 적는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고착화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공식적인 종교들은 자신들의 경전이 궁극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전은 과거에 어떤 때에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비록 성직자들이 물질세계를 초월해 있는 곳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경전에 대한 해석은 반드시 최초의 창시자로부터 권위를 물려받은 성직자들에 의해서만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종교는 어느 개인에 의해, 즉 상승 마스터들과 접촉하여, 순수한 계시를 받은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하지만 나중에 종교를 통제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고, 따라서 그들이 이것을 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해석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전개하는 운동이 이러한 패턴을 되풀이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으며, 따라서 어떤 것도 받아 적지 못하게 했습니다. 예수는 영(Spirit)의 흐름을 통해, 상승 마스터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계시를 받는, 명확한 전통을 가진 운동을 전개하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제자들이 영(Spirit)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을 수 있는 메신저가 될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있었으므로, 영(Spirit)이 자신을 통해 말하는 것을 제자들이 받아 적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추락한 존재들이 과거에 받은 계시를 잘못 해석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예수는 상승 마스터가 될 자신으로부터 직접 계시가 지속적으로 흘러가는 운동을 창시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과거의 경전에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하는데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변함에 따라, 틀림없이 운동도 거기에 맞도록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것입니다. 2000년 사이에, 집단의식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살펴보세요. 그러면, 공식적인 기독교가 2000년이나 오래된 경전에 오늘날의 삶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그리고 경전은 처음부터 순수하지도 않았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떠나고 있는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무엇이든, 받아 적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두 번째 이유는 예수는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운동이 전개되는 것을 결단코 피하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정말로 원치 않았던 것은 자신이 예외(exception)로 여겨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본보기(example)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그리스도임에 이르는 보편적인 길을 따랐던 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기를 원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 길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 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상승 마스터들의 좌우명은 “한 사람이 한 것은 모두가 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는 자신이 행하고, 말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많은 다른 사람들이 살아 있는 영(Spirit)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운동을 통해 새로운 계시를 이끌어내고, 그리스도임을 충분히 성취한 사람들이 상승 마스터들의 메신저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가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 우상으로 바뀌어, 자신이 했던 일을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사람으로 변질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니케아 신경이 그를 ...로 묘사한 이후로 공식적인 기독교가 예수를 묘사한 방법이 아닙니까?: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로부터 잉태된 〔유일하게 잉태된; 그것은 아버지의 본질,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입니다〕 빛에서 나신 빛, 참하나님에게서 나신 참하나님, 잉태된, 만들어지지 않은, 아버지와 한 본질에 속하는 존재'". 물론, 여러분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내가 처음부터 공식적인 기독교가 추락한 종교라고 말하지 않았던 가요?



물론,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문제는 예수가 설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경전 속에는 (놀랍게도) 이해하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은 몇 개의 실마리가 들어 있습니다.


만약 예수가 행하거나, 말했던 모든 것들이 기록되어야 한다면, 세상 자체는 기록되어야 하는 책을 담을 수 없다는 말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만약 내가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다면(과거 2000년에 걸쳐, 나는 많은 생들을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음), 나는 성경을 읽었을 것이며,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는 예수가 말했던 것들 중에서 경전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들을 알고 싶어. 정말로 중요한 내용이 누락되어 있지 않을까? 공식적인 교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의문들 가운데 일부라도, 이러한 누락된 가르침들이 설명해 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소들처럼, 교회에 앉아, 추락한 존재들이 제공해 주는 경전과 성직자들이 해설해놓은 주석서에 만족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직자들은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자신도 모르게) 추락한 존재들을 대변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자신들의 통제력을 영속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례는 예수가 대중들에게는 우화를 통해 가르쳤지만, 제자들끼리만 있을 때에는, 제자들에게 모든 것들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 만약 내가 기독교 문화 속에서 자랐다면, 아마 나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했던 것을 알고 싶어. 사실, 내가 예수의 제자들 중에 한 명이었기를 바래.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분명히 경전의 바깥쪽도 살펴보아야 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한, 성직자들이 만들어 놓은 폐쇄계의 바깥쪽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무튼,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공식적인 교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의문들을 성직자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이들은 오직 “그것은 미스터리야"라는 생색내기용 답변만을 들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가요! 예수가 경전 속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가르침들을 펼쳤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기록들이 공식적인 경전 속에 들어 있습니다. 지구에서 그리스도를 대변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는 성직자들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으므로, 숨어 있는 이러한 내적인 가르침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고 추측할 수가 있습니다. 성직자들이 이러한 내적인 답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대변한다는 주장이 완전히 거짓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를 대변하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도대체 누구를 대변하고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