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왜 기쁜 소식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그 반대다.
너무 잘 알아서 지친 사람들이 많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
“믿기만 하면 된다”
이 문장들은 수십 년 동안 반복되었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에게는 묻혀 있는 질문이 하나 있다.
그래서 뭐가 기쁜 소식이라는 건가?
복음이 ‘율법’이 되어버린 순간
한국 교회에서 복음은 종종 이런 구조로 작동해 왔다.
너는 죄인이다
예수는 너 대신 벌을 받았다
그러니 믿어야 한다
제대로 믿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
이 구조에서 ‘믿음’은 선물이 아니라 성과가 된다.
믿음이 흔들리면 불안해지고,
의심이 생기면 죄책감이 따라온다.
바울이 가장 경계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쓴다.”
(로마서 10장)
바울에게 문제는 도덕이 부족한 인간이 아니었다.
문제는 자기 자신을 옳다고 증명하려는 인간이었다.
바울의 복음은 무엇이 달랐나
바울이 전하려 했던 핵심은 단순하다.
이제 더 이상
누구도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옳고 그름’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가 열렸다.
그가 말한 ‘하나님의 의’는
착하게 살면 얻는 보상이 아니라,
판결 구조 자체가 종료되었다는 선언에 가깝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장)
이 말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 반대다.
정죄로 인간을 통제하는 방식이 끝났다는 말이다.
사랑은 ‘판단하지 않기’라는 말의 오해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진다.
“사랑은 판단하지 않는 거라면서요?”
“그럼 잘못된 행동도 다 괜찮다는 건가요?”
바울이 말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은
선악 구분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가 거부한 판단은 이것이다.
“너는 이런 인간이야”
“너는 틀린 편이야”
“너는 구제 불능이야”
즉 사람의 존재에 대한 최종 판결이다.
행동을 분별할 수는 있다.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을 하나의 결론으로 고정시키는 순간,
관계는 즉시 폭력으로 변한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한다.”
(고린도전서 13장)
이것은 감정 묘사가 아니다.
판결을 유보하는 태도의 설명이다.
그래서 사랑은 가장 현실적이다
사람은 정죄받으면 방어한다.
방어는 공격으로 이어진다.
공격이 반복되면 공동체는 무너진다.
사랑은 이 악순환을 끊는 유일한 방식이다.
그래서 바울에게 사랑은 이상주의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율법을 더 잘 지키라는 말이 아니다.
율법이 만들어내던 ‘판결의 구조’가 끝났다는 말이다.
믿음, 소망, 사랑은 무엇이었나
바울이 말한 믿음·소망·사랑은
종교적 덕목 리스트가 아니다.
믿음:
내가 나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뢰
소망:
이 세계가 정죄와 보복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전망
사랑:
타인의 행동을 분별하면서도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리지 않기로 선택하는 용기
이 셋은 개인 수련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 방식이다.
왜 이 복음은 불편했을까
이 메시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열성적인 신자들에게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도덕적 우월감을 내려놓게 만들고
“나는 옳다”는 정체성을 흔들고
남을 심판함으로 얻던 안정감을 빼앗기 때문이다
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이란
형식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
복음을 다시
정죄와 성과의 언어로 바꾸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기쁜 소식이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바울의 복음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옳아지려고 애쓰며 살지 않아도 된다.
대신 관계를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라.
이것은 손해를 감수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사회에서
가장 덜 폭력적인 생존 전략이다.
무종교인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기독교는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종교라기보다,
사람이 서로를 함부로 심판하지 않게 하려는 이야기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설득이 아니라 번역에 가깝다.
어쩌면 이게 진짜 기쁜 소식일지도 모른다
늘 옳아야만 살 수 있는 세계는 지옥에 가깝다.
바울의 복음은 그 구조에서 빠져나오라는 초대다.
그래서 복음은
착한 사람이 되라는 명령이 아니라,
덜 잔인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게 정말 기쁜 소식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기쁜 소식일까.
- dc official App
내게 강 같은 평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