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때로 매우 무섭고 잔인해 보이는 방식으로 행동하십니다.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 하시거나, 아간과 그의 가족을 모두 돌로 쳐 죽이라고 하시는 장면, 혹은 우사처럼 단순히 궤를 잘못 만졌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경우들이 그 예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는 혼란을 줍니다.
“자기가 의롭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잔인하다고 싫어할것입니다.”
인간 중심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재단하려는 태도, 곧 자신의 의를 기준으로 하나님의 판단을 거절하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행한 바로 그 일입니다.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마음, 즉 “내가 옳고 하나님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타락의 본질이었습니다.
반대로, 진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판단이 내 이해를 초월해도 그분이 선하시며 의로우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욥이 그 예입니다. 모든 재앙을 당하면서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니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 앞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하지 않고 순종하려 했던 것도 그런 신뢰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선하고 사랑이 많으신 분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어찌하여 선한 것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마 19:17)
“하나님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일에 “왜?”보다 “주님, 나는 이해하지 못해도 당신을 신뢰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때로 인간의 눈에 '잔인해 보이게' 행동하신 이유는, 누가 정말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는지를 드러내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 진짜 믿음은 고통과 오해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데서 드러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자기의 사람’이라 부르실 것입니다.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의롭다고 하며 하나님을 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고 싶어하십니다.
에덴과 하늘 천사들의 반란은 그러한 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자는 것이고 깨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 고통을 이야기한다면 그리스도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그런 아픔에 참여하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은 사람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단 12:2)
하나님께서는 슬픔과 괴로움이 없는 완전한 세상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합당한 백성으로 우리를 훈련시키고 계십니다.
성경 속 잔혹해 보이는 장면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신 이유도,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더럽히지 않도록 반역하는 자들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시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깊이 감춰진 마음을 알게 된다면 적은 지식으로 하나님을 미리 판단하였음을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시대가 지나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더 알게 되었고 그 사랑도 크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더 큰 사랑을 보여주셔도 그 마음을 아는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자녀들은 베푸신 일들에 진심으로 감동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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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을 읽어
여호와 세존
네 그렇군요 나는궁금해서보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