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나는 지금 복음서의 저자와 동일한 난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가 행했거나, 말했던 모든 것들이 기록되었더라면, 이 세상 자체는 그 책을 수용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관점에서 예수를 묘사해야 했으므로, 많은 것들을 생략해야 하는 의제(agenda)를 안고 있었던 복음서의 저자보다, 나는 훨씬 더 자유롭습니다. 예수의 진정한 사명과 가르침에 대한 느낌을 제공해준다는 측면에서, 나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제외하고, 내가 목격했던 것을 있었던 그대로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예수의 사명 중에서 중간부분, 즉 고대 이스라엘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곳에 머물렀던 부분은, 건너뛰고자 합니다.


이 일이 일어나기 전 어느 날, 예수는 나를 찾아와, 함께 걷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작은 산 속으로 들어갔으며, 예수는 사명의 마지막 단계, 즉 자신이 루시퍼에게 죽임을 당하는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이 와중에 루시퍼가 어디에 있었는지 궁금하게 여길 것입니다. 설명을 하자면, 그때까지도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따라서 루시퍼 역시도 예수와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권력의 중심지는 분명히 예루살렘이었으며, 루시퍼는 자신이 예루살렘을 아주 잘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시골에서만 설교를 하는 한, 예수는 루시퍼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았으며, 루시퍼는 기다리는 입장을 취하면서, 사람들이 예수에게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를 살펴볼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가 지나치게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 모으지 않는다면, 루시퍼가 예수와 함께 어울려서 살아갈 수도 있을 정도의 위협 밖에는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루시퍼가 그냥 예수를 아예 없애버리지 않고, 왜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받아들일지 물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설명하자면, 예수가 아주 높은 수준의 그리스도임에 도달해 있었으므로, 그를 죽이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루시퍼를 통제하고 있던 어둠의 마스터는 루시퍼가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죽이게 되면, 루시퍼는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게 되며, 분명한 것은 육화에서 벗어나야 하며, 아마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어둠의 마스터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예수에게 반응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루시퍼에게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라고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어둠의 마스터는 자신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예수에게 반응하지 않게 하거나, 아니면 예수를 따르는 추종자들끼리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내부에서부터 운동을 파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둠의 마스터는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를 하지 않고도, 예수의 문제가 점차적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걸어가고 있는 동안,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직접 부딪쳐야 한다는 생각에 점점 더 강하게 끌리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루시퍼가 자신을 고문할 것이며, 이러한 고문을 겪으면서, 어떻게 상승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걱정을 나에게 또다시 토로했습니다. 예수가 이러한 걱정을 나타내고 난 후, 우리 두 사람은 진동이 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바로 옆에 흰 빛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사나트 쿠마라, 마이트레야 그리고 고타마 붓다가 점차적으로 빛의 몸으로 나타났었습니다.


사나트 쿠마라는 루시퍼와 그의 마스터가 예수에게 반응할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사나트 쿠마라는 그들이 예수를 고문하거나, 죽이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지 않고도, 실제로 반응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온 역사를 감안하면, 예수를 납치하여, 고문하고, 죽일 가능성도 있었으며, 십자가형에 처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습니다.



예수는 이러한 고문을 당하면서, 어떻게 상승할 수 있느냐고 물었으며, 사나트 쿠마라는 나를 쳐다보며, 나에게 설명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나는 예수를 향해 “내가 이전에 너한테 말했던 것처럼, 네가 동굴 속에 있던 동안, 나는 어떤 스승으로부터 몸에 가해지는 온갖 종류의 고통을 견뎌내는 훈련을 받았어. 이제 이것을 스승들 가운데 한 사람(세 번째 동방박사)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몸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유체이탈)과 접목해 봐, 네 생각은 어때?”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가 처음에는 약간 화가 난 것처럼 보였으며, 그 이유는 내가 솔직한 답을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수수께끼를 내는 줄로 이해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 예수는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는지, “네 말은 우리가 서로 몸을 바꾸자는 거잖아?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이러한 시도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잖아.”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래, 네 말마따나, 모든 것은 처음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야, 그러면, 함께 예행연습을 한 번 해보자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다음, 사나트 쿠마라가 우리에게 몇 가지 가르침들을 전해주고 난 후, 세 명의 마스터들은 떠났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아쉬람에 머물고 있던 동안, 육체를 벗어나기 이전에 했던 몇 가지 예비적인 동작들을 실시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고, 모든 차크라들이 서로 일치되도록 껴안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가슴에 집중한 채, 서로의 입을 맞추었으며, 몇 초가 지나자, 우리 두 사람은 우리의 몸을 떠나, 상대방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서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내가 예수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내가 나 자신의 몸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나에게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만큼 그렇게 극적인 체험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 볼 수 있는 거울이 확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물론, 우리가 생긴 모습은 알고 있었지만, 나 자신의 몸에서 예수의 두 눈이 빛나는 것을 보는 것은 아주 이상한 느낌이었습니다.


예수 역시도 아주 놀란 표정이었으며, 마침내 “이것은 분명히 이 행성에서 내가 체험했던 것들 중에서 가장 기이한 체험들 가운데 하나야.”라고 말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그 이후 우리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산에서 내려와, 다른 사람들과 합류했습니다. 그 이후 이틀 동안, 우리는 상대방의 몸 속에 있었으며, 나는 예수의 역할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내가 많은 것들을 해야 했던 중대한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그다와 관련하여, 내가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언급해 두고자 합니다. 하지만 악의를 갖지 않고, 다른 일부의 제자들을 놀려줄 기회는 있었습니다.


이틀 후, 우리는 또다시 옆으로 가서, 또 한 번 껴안았으며, 자신의 몸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도를 여러 차례에 걸쳐 실시했으며, 마침내 많은 준비 작업을 하지 않고도 이렇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예수는 이것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으며, 비록 예수가 분명히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부터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에 대해, 예수는 보다 더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