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초기 기독교에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오순절(Pentecost: 예수가 부활한 후, 50일째 되는 날)로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사실, 이 사건은 예수가 죽고 난 후, 36일째 되는 날에, 다시 말해 예수가 죽고 난 후 3일째 되는 날부터 시작하여, 33일간에 걸친 상승의 과정을 끝마친 후에 일어났었습니다.


성경에는 중요한 말(a key remark)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 말은 제자들이 “한 장소에 일치하여(of one accord in one place.)”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참석했던 제자들이 한마음이 되어, 상승한 예수로부터 메시지를 들으려고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제자들은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이 말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베드로와 그를 중심으로 하는 제자들은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왜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그 모임은 예수가 소집한 모임이었으며, 예수는 당연히 자신과 파장을 맞출 수 있었던 사람들만을 소집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베드로가 자신의 교회를 세울 반석이라고 예수가 불렀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가 물질적인 형태로 나타났을 때, 베드로가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예수가 자신의 교회를 세울 반석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보다 높은 진동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혹자는 베드로가 토대를 상징하는(symbol for the foundation) 것이므로, 가톨릭교회가 어느 정도는 타당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토대만 있고, 벽과 지붕이 없다면, 완전한 건물이라고 할 수 있나요? 분명히, 예수는 베드로가 육체의 형태로 나타났던 자신을 인식할 수 있었던 능력에서, 멈추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그러한 토대 위에, 사람들이 비-물질적인 형태의 그리스도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직관력을 개발하도록 도움으로써, 추가로 쌓아가도록 하려 했습니다. 예수를 추종했던 사람들 중에서 직관력을 개발했던 사람들은 예수와 파장을 맞추고, 특정한 시간에, 한 장소에 함께 모이도록 부름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는 이러한 모임에 사람들을 아주 성공적으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식 수준이 다소 낮았던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의 내적인 비전을 아직까지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도마의 이야기(the story of Thomas)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다시 말해 도마의 손을 예수의 상처(못 자국) 속으로 넣어보라고 했던 것처럼, 보다 더 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났었습니다. 예수는 이러한 형태로 베드로에게도 나타났었지만, 베드로는 모임이 개최되는 장소와 시간에 대한 메시지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대신에, 베드로는 그것을 예수가 육체적으로 부활했다는 표시로 해석했습니다, 예수가 결코 이야기하지 않았던 개념, 그(예수)가 상승한 상태에 있는 존재는 육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따라서 그날(모임이 개최되는 날)이 되었을 때, 약 500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그곳에 예수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다소 혼란이 있었으며, 아무도 상황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으며,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 어느 누구도 분명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마그다는 주도적으로 상승 마스터들의 빛을 기원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빛을 기원했으며, 그러자 점차적으로 우리 주위에 에너지 역장(energetic forcefield)이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우리 사이에 침묵이 흘렀으며, 이러한 침묵은 수 분간 지속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마그다가 일어나, 큰 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로부터 구술을 받고 있었으며, 예수는 그녀를 통해 약 10분 정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다음, 마그다는 자리에 앉았으며, 또 다른 제자가 일어나, 예수로부터 구술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거의 두 시간 동안 지속되었으며, 결국 12명의 사람들이 상승 마스터인 예수로부터 구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대사건이었으며, 모든 사람들은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내가 여기에 추가하고 싶은 말은 이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제자들이 자신들의 모국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흥미로운 구절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영(Spirit)의 힘으로 말을 했을 때, 이들이 외국어로 말을 했거나, 아니면 그들이 하는 말을 사람들이 여러 개의 언어로 들을 수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 그 말을 보다 낮은 의식수준에서 해석했던 사람들이 대충 해석했던 것입니다. 진실은 그 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식수준과 외적인 배경, 즉 성(性), 인종, 민족성 그리고 종교에 맞추어, 예수가 직접 말하는 것을 들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로 의미하는 바는 그 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사명을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 당시에 (혹은 나중에) 사람들이 알고 있던 종교와 같은 운동을, 예수가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다른 종교와 차별되거나, 경쟁하는 운동을 펼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예수는 지구에서 가능한 가장 높은 수준을 향해, 의식을 끌어올릴 수 있는 체계적인 길을 사람들에게 제시하는데 전념하는 운동을 시작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 길은 외적인 배경과는 관계없이, 누구나 다 추구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가 했던 구술은 각 개인에게 물질적인 언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각 개인의 영 속에 존재하는 보편성(universality)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 메시지를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자신들의 의식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듣게 된 것입니다.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의식은 모든 공동 창조자들에게 자신의 창조주뿐만 아니라, 서로와도 하나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주도록 되어 있는 한마음(the one mind)입니다. 그리스도 마음은 사람들이 이원성으로 추락했는지, 그리고 이원성 너머로 의식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보편적인 그리스도 마음은 현재의 (의식) 수준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하기 위해, 자신의 대리인을 세상 속으로 보내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목표는 사람들에게 궁극적인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의식수준에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을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갈 수 있는 가르침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러한 가르침을 이용하여, 의식을 끌어올릴 때, 그들은 보다 높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되며, 따라서 지구에서 모든 분리를 초월해 있는 144번째 의식을 향해 사람들을 더 멀리 데려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택한 접근 방식은 이러한 목적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는데 기초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 마음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이러한 접근 방식을 반복적으로 부정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심지어 자신은 예수와 하나가 될 가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고 싶어 할 정도로 이것을 부정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를 대변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래도 기독교 운동의 지도자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톨릭교회가 받아들였던 의식이었으며, 따라서 이것이 가톨릭교회가 예수를 어떠한 인간보다도 더 뛰어난 존재로 높여놓은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슈퍼맨의 상태로 높여놓음으로써, 인간들 사이에서 교회도 우월한 지위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모든 사람들 위에 있는 존재로 올려놓음으로써, 추락한 존재들은 단체(institution: 가톨릭교회)를 개별적인 인간들 위에 있는 것으로 격상시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보편적인 그리스도 마음과 하나가 되는 길을 부정하는 모든 종교들은 그리스도를 부정하는데 그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에 대한 부정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물론, 그러한 부정은 추락한 존재들로부터 시작됩니다. 따라서 어떤 종교든, 보다 높은 의식 상태로 향해 가는 보편적인 길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종교들은 추락한 존재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종교들입니다. 우리가 진화해 있는 유인원에 불과하며, 육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과학적 유물론이라는 종교에도 이것은 똑같이 적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