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 해석
예수가 모든 비난의 화살을 혼자 감당해서 다른 인원들을 면피하게 해 줬다.
표징을 세우고 기정 희망 분계선에 들어올 사람들을 늘린 운명적으로 예정됐던 공로가 아니라,
여호와를 세태에 타협시키고 면죄의 분계선을 세태 죄인들 눈에 흡족하도록 확장시킨 공로가 있다.
원형 해석
세태 악습을 따라 자기 죄악을 두둔하고 반인륜 신성모독 패악성에 빠지려는 분기점에서,
예수처럼 십자가를 짊어지고 다소 실제로 참회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실한 희망과 길복이 있다.
피로 씻어 옷을 희게 한다는, 창세기부터 있었던, 수수께끼 은유는 이렇게 진실하게 해석된다.
세태 용어로는 빨갱이 중에서도 극빨갱이인 그러한 패악자들 주창 양태만 봐도,
얼마나 간악하면서도 나약한 열망의 흉추한 쓰레기들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저 성실하든 허황되든 동등하게 다수에 비난받는 상황을 두려워하며,
짐승 표 위세에 굴종했고 굴종시키려는 이른바 개새끼들일 뿐입니다.
교회 사이비만 아니라 세태에서 적폐 세력 양태는 어떻습니까.
자기네 먹을 식량도 비축함이 없이 방탕하게 망해 가던 에굽트처럼,
나랏빚을 늘리면서 공기업에 떠넘기고 연금을 시장 교란에 유용하고,
유일한 경쟁력인 자유민주(기독민주) 역사 맥락을 대척하고 훼손합니다.
그러면서 고아의 팔을 꺾고 과부를 버려두며 소외 세력 탓을 합니다.
이재명 습근평 같은 위선자들이 대표적입니다.
미혹을 물리치고 실족을 면합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