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기독교 운동으로 돌아갑시다. 기본적으로 지구에는 상승 마스터들이 추락한 존재들의 통제로부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개념들을 지속적으로 전해주고자 하는 힘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들은 이원성을 벗어난 곳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추락한 존재들은 정확한 사건(事象: event)이나, 개념 그 자체를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추락한 존재들은 상승 마스터들이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개념이 전해지자마자, 이들은 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됩니다.


추락한 존재들은 예수의 사명으로 인해,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추락한 존재들이 예수의 사명이 큰 인기를 끌지 않게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기독교 운동을 왜곡시키는 작업을 지속했으며, 운동이 점점 커지게 되자, 이러한 노력도 커지게 되었습니다. 추락한 존재들의 좌우명은 언제나 “적을 이길 자신이 없으면, 적과 한편이 되라”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운동이 커지게 되자, 정체성 영역에 존재하고 있던 추락한 존재들은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육화해 있던 추락한 존재들을 보내, 운동에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추락한 존재들의 궁극적인 꿈은 (적어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중앙집권화된 기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은 불가능한 꿈입니다. 왜냐하면 추락한 존재들은 언제나 두 개의 파벌로 분열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추락한 존재들이 꿈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세상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갖가지 변형된 형태들이 시도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추락한 존재들이 기독교 운동에 합류하게 되었을 때, 이들은 당연히 기독교 운동이 확고한 교리를 가진, 중앙집권화된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추락한 존재들이 항상 하는 짓이 바로 이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체성 영역에 있던 보다 영리한 추락한 존재들은 특히, 기독교 신비주의 교파(mystical branches)들을 억누를 수 있는 기독교 운동을 펼치기 위해,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육화해 있던 추락한 존재들을 통해, 자신들이 중앙집권화된 운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또한 신비주의 교파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또한 자신들의 통제 하에 있는 중앙집권화된 운동은 그리스도임을 성취할 사람들을 배출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반면에, 신비주의 교파들은 그리스도화된 존재들을 실제로 배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신비주의 교파들을 억누르는데, 중앙집권화된 운동을 펼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주 점진적으로, 추락한 존재들은 기독교 운동을 보다 좀 더 중앙집권화될 수 있도록 움직여 갔으며, 이들은 이 과정에서 로마제국의 지도층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을 박해함으로써, 로마 당국은 기독교를 정의하고, 기독교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본질적으로, 로마 당국은 그들이 박해하고 있는 것으로 기독교를 정의했습니다. 신비주의 교파에 속해 있던 사람들은 로마 당국이나, 로마법에 도전하지 않았으므로, 이들은 로마인들로부터 박해를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박해를 받았던 것은 공식적인 기독교였으며, 기독교 그룹들은 이것을 실제로 즐기기까지 했습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 정의롭다는 인식이 자라났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추락한 존재들의 결정타를 날리기 위한 무대를 마련했습니다, 즉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공식적인 국교(國敎)로 격상시키는 것. 이 때문에, 이들은(정체성 영역에 있는 추락한 존재들) 육화해 있던 추락한 존재들이 필요했으며, 바로 이 시점에서 바로 우리가 오랫동안 알고 있던, 사탄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로 육화했으며, 그의 삶을 조사해 보면, 커다란 힘을 남용했던 추락한 존재의 특징을 쉽게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추락한 존재들이 만든 모든 조직들처럼, 로마제국도 나누어지게 됨에 따라, 콘스탄티누스는 미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제국의 올바른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다른 추락한 존재들의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도 로마제국이 내부에서부터 썩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한 가지 이유는 고대 로마의 신들에 대한 믿음이 차츰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대 로마의 신들은 유대교의 신들과 흡사했었습니다. 다시 말해 희생을 요구하고, 이러한 신들을 믿는 사람들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뭔가를 하도록 강요하는 신들이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구원, 혹은 신의 호의(好意)는 돈을 주고 사야 하는 하나의 상품이라는 개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필연적으로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섬기는 신들이 절대로 구원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삶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참된 방법은 물질을 자유자재로 지배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수가 자신의 마음을 지배했던 것처럼, 여러분의 의식을 그리스도 의식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예수는 구약의 신(god)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God)에 대한 이미지를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신(神)이 우리를 위해 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을, 그리스도 의식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본보기였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지니고 있던 힘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예수가 더 높은 어젠다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중립적인 마음자세로 분석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구약의 신과 예수가 설명했던 사랑스러운 하나님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예수는 자신의 가르침을 받아 적지 못하도록 했으며, 고정된 경전을 고수하지 않는 운동을 펼치고 싶어 했습니다. 추락한 존재들은 영감을 불어넣어, 기독교의 많은 경전들을 쓰도록 했으며, 그런 다음 다른 추락한 존재들은 공식적인 경전들을 편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추락한 존재들은 고대 유대교의 경전들이 기독교의 경전들 속에 편입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대체적으로 예수를 배척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가 기독교 운동이 유대교의 유산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기독교 운동이 보편적인 것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육화해 있던 추락한 존재들은 자신들이 무슨 목적으로 유대교의 경전을 통합하는지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체성 영역에 있던 추락한 존재들은 분명한 의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의도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들이 창조해 놓은 거짓된 신, 즉 희생을 통해 살 수 있는, 소망을 이루게 해주는 야훼(Yahweh)를 기독교의 경전 속에 편입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보다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씨앗을 뿌려놓은 것입니다.


유대교의 경전들이 편입되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이 성지(聖地)라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성지라는 것으로 인해,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으며, 현대 사회에서는 이스라엘을 놓고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로 미국에 살고 있는 아주 많은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의 침공으로부터 소위 성지(Holy Land)를 지켜야 한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그리고 물론,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은 이러한 성지를 놓고, 제3차 세계대전까지도 일으킬 수 있다고 여기고 있으며, 예수가 용인해 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는 예루살렘이라는 무의미한 도시의 무의미한 땅을 놓고, 대규모적인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