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예수는 추락한 존재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이들의 수법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사탄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는 그들을 “악마의 아들들(sons of the devil)”이라고 불렀으며, 성경에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 도다(요한복음 8:44-45)"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추락한 존재들과 그들의 수법들에 대해 많은 가르침들을 전했으나, 공식적인 성경에는 오직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사례로써, 추락한 존재들을 인식하는 방법에 대한 충고로, “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되리니(마태복음 7:20)”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비단 추락한 존재들의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에도 적용이 됩니다.


일부 추락한 존재들은 내가 가톨릭교회에 대해, 철저하게 흑백 논리를 제시하고 있으며, 분명히 보다 많은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아무튼, 교회가 많은 선행(善行)을 하고 있으며, 영감을 받아 동료 인간들을 위해 선을 행하고 있는, 선의(善意)를 지닌 기독교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으로 인해, 가톨릭교회의 지도자들이 오직 추락한 존재들만이 할 수 있는 짓을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사실이 감춰지거나, 용서될 수는 없습니다.


일부 추락한 존재들은 내가 마치 교회가 사탄처럼 보이게 하고, 이것을 참, 아니면 거짓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논리를 내 나름의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와 사실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아시다시피, 논리는 사실에 기반을 둔 수단들(factual means)을 통해 증명될 수 없는 조건들에 적용됩니다. 하지만 추락한 존재들이 가톨릭교회를 이끌어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논리는 필요치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물론, 많은 가톨릭 신자들(그리고 다른 기독교인들)은 가톨릭교회의 과거(the past of the Catholic church)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부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가톨릭교회의 행위들로 인해, 피해 갈 수 없는 딜레마가 생겨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수의 가르침은 완전히 비-폭력적이었으며, 이것은 십자가형에 대해, 예수가 저항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증명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대변한다고, 심지어 지구에서 예수의 유일한 대변자라고 주장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폭력적인 행위들을 저지를 수가 있었을까요? 내가 알기로는, 진실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이것을, 즉 추락한 존재들의 영향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몇 가지 역사적인 사실들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가톨릭교회가 만들어지고 난 이후, 처음 200년간에 일어났었던 일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언제나 옳았었다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교회의 역사가 다시 쓰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어났었던 것은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모든 사람들을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억압했습니다. 로마인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는데 많은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가톨릭교회에 의한 모든 비가톨릭 기독교인들의 박해가 훨씬 더 무자비했다는 사실을 위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정하건대, 방법은 로마 당국자들 만큼 그렇게 폭력적이지는 않았지만, 효과는 더 컸습니다.


200년 사이에, 모든 신비주의 교파들은 사라졌거나, 아니면 비밀리에 존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저서들은 금서(禁書)로 지정되었으며, 이러한 책들의 대다수는 불태워졌습니다. 공식적인 교리와 다른 주장을 했던 모든 신학자들은 억압당했으며, 그들이 저술했던 책들도 이단으로 금서가 되었습니다. 초기 가톨릭교회가 사람들의 마음에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를 오늘날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제국이 오늘날 서구사회에서 성장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움에 기초한 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구(舊) 소련에서 성장했던 사람들은 더 좋은 참조 틀을 갖고 있습니다, 비록 집단의 사고방식이 그 당시에 훨씬 더 큰 두려움에 기초하고 있었지만.


두려움에 기초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그 당시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당국에 거의 철저하게 복종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어떠한 개념을 이단으로 금기시하고, 그러한 개념을 믿거나, 조장하는 사람들은 파문 당한다고 위협했을 때(그 사람은 교회로부터 저주를 받아,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함), 대다수의 사람들은 의심도 하지 않고, 그러한 개념을 받아들였습니다. 따라서 윤회라는 개념이 553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신도 대표 위원회(church council)에서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기록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윤회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저술했던 신학자 오리게네스(Origen)의 저서들에 대한 특별한 반응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윤회라는 개념은 기독교에서 공식적으로 제거되었으며, 기이하게도 현대의 어떤 교회도 그 당시로 돌아가, 이러한 사건이 전적으로 정치적인 이유로 발생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들 가운데 일부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의 부인이었던 테오도라(Theodora)는 이번 생에서 자신이 저지른 행위들에 대해, 미래 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념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또한 평범한 여성으로 환생할 수도 있다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황제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해서, 교회를 지배하고 있던 황제가 그러한 개념을 금지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유의 또 다른 부분은 교회 그 자체도 그러한 개념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로 추락한 존재들이 윤회라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윤회를 인정하게 된다면, 사람들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추락한 존재들이 가톨릭교회와 더불어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일회용(one-shot form) 구원이었습니다. 교회의 규칙을 따른다면, 이번 생이 끝나고 난 후, 구원이 보장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이 말 자체는 윤회라는 개념과 모순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윤회를 믿고 있던 사람들은 교회의 권위에 따를 가능성이 낮았습니다. 아무튼, 이번 생 이외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생이 많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이번 생에서 교회에 전적으로 복종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만약 구원이 의식 상태에 달려 있는 거라면, 교회가 믿으라고 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거나, 아니면 교회가 시키는 대로, 행동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몇 세기 만에, 가톨릭교회는 유럽에서 가장 큰 땅을 소유한 단일의 지주가 되었습니다. 예수가 단 한 조각의 땅도 결코 소유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러니를 알 수 있지 않나요?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땅을 교회에 주었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땅을 주었을까요? 부유한 지주(地主)가 선(善)한 삶을 살았지만,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은 마지막 고해를 하기 위해, 가톨릭의 성직자를 부르게 됩니다. 그는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며, 성직자는 해결책을 제시하게 됩니다. 땅의 일부를 교회에 기부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교회가 그의 죄를 사해주겠다고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