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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보상에 대해 질문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으니 무엇을 얻게 되느냐고 묻습니다.
"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 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 (마태복음 19:27-30)
예수님은 분명한 보상을 약속하시면서도, 동시에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높여 먼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많은 일을 했다고 여기며 더 큰 보상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에는 교만과 욕심이 자리하기 쉽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못하고, 당연한 대가로 여기게 됩니다.
"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18:14)
반대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자신이 한 일이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그는 높은 자리를 탐하지 않으며, 자신의 수고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욕심이 적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크게 느끼고 진정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진리를 설명하시기 위해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0:1–16). 어떤 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일했고, 어떤 이들은 제십일시에 와서 한 시간만 일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모두에게 한 데나리온씩 동일하게 품삯을 주었습니다. 먼저 온 자들은 더 받을 줄 알았으나 같은 품삯을 받자 원망했습니다.
"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 (마태복음 20:13-16)
이 비유의 핵심 교훈은 보상의 크기가 아니라 교만과 겸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공로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어떠한 마음으로 일했는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포도원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 (이사야 5:7)
주인은 하나님을, 품꾼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람들을 양육하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시간의 차이로 먼저와 나중으로 사람을 구분하였습니다.가장 늦게 온 사람은 가장 겸손한 사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 나라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야고보서 4:6)
교만은 결국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아담의 범죄와도 연결됩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5)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겸손한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겸손한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받은 것이 전적인 은혜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자발적으로 순종합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얼마나 많이 일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섬겼는가’입니다. 겸손한 자만이 은혜를 알고, 은혜를 아는 자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평강 가운데 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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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어떤부분모르는데 난댓글망설이다가달아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