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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장 7–9절은 세례 요한의 강한 외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세례 요한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모욕이 아니라, 형식적인 신앙과 위선을 향한 엄중한 경고였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적 자부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당연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혈통이나 종교적 지위가 아니라, 회개와 삶의 열매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을 증명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동일하게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19-20)
성경은 세상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하나님께 속하여 생명으로 나아가는 사람과, 마귀를 따르며 멸망으로 향하는 사람입니다.
"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한일서 3:10)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표현은 매우 강한 욕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는 증오나 저주가 아니라, 멸망으로 가는 길에서 돌이키라는 절박한 사랑의 경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낭떠러지로 향하고 있다면, 우리는 점잖은 말만 고집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박이나 마약, 범죄의 길로 빠져들어 간다면 단호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멸망을 향해 가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 날카롭지만, 그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증오하거나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로마서 12:19)
마귀에게 속한 삶은 증오, 탐욕, 시기, 마음의 살인으로 드러납니다.
"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 갈라디아서 5:19–21)
반대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삶에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맺히고 있는가?
야고보서 2장 17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십시오.
죄를 회개하고 의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드러내는 길이며, 마지막 날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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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부족한 저를 용서 하소서